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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ESG 국제기준 나왔는데 국내 공시의무는 늑장…회계법인 검증은 겨우 3%

국제기준 까다로워지는데 국내 ESG 보고서 태반이 ‘홍보식’ 자기보고
정부 로드맵 늑장 대응…2030년 돼서야 코스피 적용
주요국 인증 주류는 국제기준 ISAE3000
감사전문가인 회계법인이 인증 수행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해 기업들이 작성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 가운데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검증된 보고서’는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공시에 대한 국제적 눈높이가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당국은 2030년이 돼서야 코스피 상장사 전체 적용을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31일 한국감사인연합회(회장 김광윤)가 주최한 ‘제14회 감사인 포럼’.

 

이진규 파트너(삼일회계법인 ESG 총괄 회계사)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한국공인회계사회 국내 ESG 보고서 인증 현황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이하 코스피) 상장사 824곳 중 ESG 보고서를 발행한 기업은 179곳으로 21.7%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ESG 보고서를 발행한 기업 중 144곳(80.4%)은 ‘AA1000AS’ 기준을 이용해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AA1000AS’은 영국의 비영리기업인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사에서 제정한 기준으로 몇 가지 작성 기준이 있긴 하지만, 현재 ESG 공시기준 추세에 비하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제감사인증기준위원회(IAASB)에서 제정한 ISAE3000 기준을 통해 작성된 비율은 6%(12건)이었으며, 감사전문가인 회계법인의 검증을 거친 보고서는 3%(7건)에 불과했다.

 

 

‘ISAE3000’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인증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요 기준으로 한국 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회계법인과 ‘ISAE3000’ 기준 활용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회계사회 국내 ESG 보고서 인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회계법인 인증비율은 프랑스 98.1%, 이탈리아 97.3%, 독일 93.8%에 달하며 이웃국가인 일본 62.8%이나 산유국인 영국 53.5%도 한국(3%)보다 월등히 높다. 게다가 해외 회계법인 90% 정도는 ESG인증을 ISAE3000을 사용한다.

 

 

국제기준 펄쩍 뛰는데 당국은 낮잠

 

문제는 ESG 보고서에 대한 국제적 눈높이가 점차 높아질 전망이란 점이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3월 31일 발표한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따르면, 앞으로 기업들은 온실가스의 경우 ‘직접 배출원(스코프 1)’, 외부 전기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원(스코프 2)’까지 측정해 공시해야 한다. 스코프 3에서는 기업이 협력사나 거래사 등의 배출량까지 공시할 것을 요구한다.

 

ESG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중립적(외부 검증)인 인증이 필요하면서 사실상 회계감사에 준하는 ‘ISAE3000’ 사용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IAASB가 지속가능성보고서 공시 제정에 따라 인증기준을 추가로 제정할 경우에도 ISAE3000가 기초가 되며, 현재보다 더 강화될 가능성이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의 경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3월 21일 기후 공시 규정 제안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 기준년도(스코프 1‧2)는 2023년, 스코프 3는 2024년으로 잡고 있고, 2026년부터는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합리적 확신이 들 정도의 기준과 인증을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금융당국은 환경정보 공개의 경우 현재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대해 적용하고 있고, 2025년부터야 5000억원 이상, 2030년이 돼서야 전체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할 방침이다.

 

국내 발전량 상당수는 화력발전이라서 제 때 준비를 맞추지 못할 경우 기업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2015~2020년 전 세계 평균 가운데 한국은 석탄발전 온실가스 세계 2위 국가로 석탄발전 부문 1인당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려 3.18톤에 달한다.

 

전 세계 평균 1.06톤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국(3.06톤), 미국(2.23톤)보다도 높다.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발전을 늘려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존하는 원전을 최대한 오래 써보겠다는 입장이어서 재생에너지 전환속도가 어느 정도 올라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제적 눈높이에 맞추기엔 국내 대응이 너무 부족하거나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14회 감사인 포럼’ 토론 패널로 나온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금융위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기업규모에 따라 ESG 공시 의무화 대상을 점진적으로 넓혀나가고 있기는 하나, 그것도 코스피 상장기업만 대상하고 있고, 스코프 2 비상장종속기업과 스코프 3인 거래처 중소기업까지 포괄하는 글로벌 추세에 너무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인증 수준을 높이거나, 정밀한 검증 수단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혜성 김앤장 변호사(ESG경영연구소)는 “중요 ESG 사항의 공시와 관련해 합리적인 보고 및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필요성이 높다”며 “최근 대법원도 회사의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와 관련해 이사 모두에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관련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박성환 한밭대 교수는 “ESG 공시 정보 신뢰성을 높이고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 아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는 지배구조의 역할강화가 가장 주요할 수 있다”며 “현행 지배구조보고서라도 잘 작성, 공시되도록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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