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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수의 경제+] APEC 정상회의와 보내는 2025년, 맞이하는 2026년

 

(조세금융신문=서기수 서경대학교 금융정보공학과 교수) 20년 만에 열린 한국 APEC, 그 상징성과 전략적 의미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단순히 ‘큰 국제행사’가 아니다. 이번 회의는 2025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개최됐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21개 회원국 정상과 기업인, 관료 등 약 6천 명을 한 자리에 모은 자리였다.

 

이는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의 국내 개최이자,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본격적으로 ‘중견국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리는 무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번 APEC의 공식 주제는 “지속가능한 내일을 함께 만들자: 연결‧혁신‧번영(Connect, Innovate, Prosper)”으로, 공급망 안정과 디지털 무역 규범(연결), AI‧빅데이터‧에너지 전환과 같은 기술혁신(혁신), 그리고 포용적 성장과 녹색 금융(번영)을 축으로 삼는다.

 

한국은 이번 APEC에서 단순히 개최국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특히 미‧중 간의 전략 경쟁을 ‘충돌’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경쟁’의 틀로 유도하려는 외교적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불안, 보호무역주의, 기술패권 갈등이 격화된 2025년의 국제경제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주라는 도시 자체도 의미가 있다. 경주는 한국 고대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자, 압축된 역사‧문화 자산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세계가 모인다”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APEC이 강조하는 포용성‧균형발전의 메시지를 국내 지역균형 의제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려 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우리 내부의 숙제를,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지속가능성 이슈’와 같은 선상에 올린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경주 APEC은 외교 행사이자 산업 전시장이며, 동시에 한국 경제모델의 방향성 “기술, 문화, 그리고 지속가능 성장의 결합”을 국제 무대에서 선언하는 무대다.

 

2025년을 규정한 다섯 가지 경제‧금융 트렌드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드러난 2025년 경제‧금융‧투자 시장의 핵심 트렌드 다섯 가지를 짚어보고, 2026년 투자자에게 특히 중요한 체크포인트 세 가지를 정리해 본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논의의 주인공으로 ‘젊은 공격적 투자자’보다는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시니어 투자자라는 것이다. 즉, 변동성 그 자체보다 “지속 가능한 현금흐름”과 “안정적 구매력 유지”가 더 중요한 세대에게 어떤 시그널이 보이는가, 이것을 중심에 둔다.

 

첫 번째 트렌드는 금리 체제의 전환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 9월에 이어 10월 29일에도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해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3.75~4.00%로 낮췄다. 이는 고용 둔화 신호와 경기 둔화를 의식한 ‘완만한 인하’이며, 동시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해 급격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금리 인하가 시작됐다는 것은 채권 가격과 배당형 자산의 상대적 매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특히 은퇴 세대에게는 월급이 아니라 자산에서 생활비가 나오는 만큼, 예금 금리만 바라보는 방어적 전략에서 벗어나 안정적 현금흐름을 주는 우량 회사채, 인프라‧에너지‧통신 등 필수 서비스 기업의 배당, 일부 공모 리츠 같은 인컴형 자산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이 다시 열리고 있다.

 

다만 중요한 점은 “금리 하락 = 무조건적 위험자산 랠리”라는 공식은 더 이상 단순하게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준 내부에서도 추가 인하 속도와 폭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잡혔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금리는 내려가지만 변동성은 남아 있는 시장—안정적으로 꾸준히 이자를 주는 자산의 상대가치가 과거보다 커진 시장이 2025년의 현실이다.

 

두 번째 트렌드는 공급망 재편과 신(新)보호주의의 제도화다. 경주 APEC의 메시지 중 하나는 “연결(Connect)”이다. 이 ‘연결’은 단순한 인적 왕래가 아니라, 핵심 부품‧원자재‧에너지‧데이터가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공급망을 다시 짜겠다는 약속이다.

 

실제로 이번 정상‧CEO 라운드에서는 ‘공급망 복원력(resilience)’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고, 많은 기업과 정상들이 국가 안보 이슈와 산업정책을 사실상 같은 문장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은 여전히 구조적으로 남아 있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협의에서 일시적으로라도 관세 인하(대중국 관세율 일부를 57%에서 47%로 조정)와 희토류 수출 제한 완화 같은 ‘휴전성 조치’가 등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갈등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 가능한 프레임’으로 옮겨 공급망을 재배열하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한국 기업에게는 배터리, 반도체, 핵심 소재 등에서 “어느 나라의 규제와 공급을 따라갈 것인가”가 곧 사업전략이 된다.

 

은퇴세대 투자자에게 이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이런 공급망 핵심 업종(에너지 운송, 2차전지 소재, 희토류 대체소재 등)이 중장기 현금흐름을 가진 인프라형 비즈니스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급등락만 쫓는 테마가 아니라, 국가가 직접 ‘전략 산업’이라 불러주는 캐시플로우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세 번째 트렌드는 인공지능(AI)의 본격적 산업화다. 2025년 APEC CEO 서밋에 모인 글로벌 CEO들의 상당수가 “AI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답했고, AI‧데이터‧자동화가 기업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새로운 안보 자산이 되고 있다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OECD와 주요 국제기구는 AI가 향후 노동생산성 연간 증가율을 0.2~0.4%포인트가량 추가로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 말은 곧,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마진을 지켜줄 기술 투자 방향이 이미 정해졌다는 뜻이다. AI는 이제 ‘과연 될까?’의 영역을 넘어 ‘누가 더 빨리, 더 많이’의 경쟁이 되었고, 그 속도전에서 뒤처진 기업은 산업 내 지위를 지키기조차 어려워진다.

 

시니어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AI 관련주는 단기 급등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 인프라(데이터센터 전력, 냉각, 광통신 인프라), 반도체‧소재 밸류체인, 그리고 AI를 실제로 써서 공정 효율을 높이는 제조‧물류 기업까지, 폭이 매우 넓다. 즉 ‘AI=IT 소프트웨어 회사 몇 개’라는 과거의 좁은 그림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에 직결되는 구조적 투자 주제로 바뀌었다는 점이 2025년의 특징이다.

 

네 번째 트렌드는 ‘실버 이코노미’, 즉 고령화 자체가 거대한 경제부문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IMF는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구 고령화가 단순히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와 산업 수요를 만들어낸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대수명이 늘고 건강한 고령층의 노동‧소비 참여가 확대되면, 의료‧헬스케어, 재활‧돌봄, 주거서비스, 금융‧자산관리 등 전 영역에서 고령층 맞춤형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층은 이미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단순한 의료비 지출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 소비(건강관리, 주거 안전성, 생활 편의, 장기 돌봄 설계)로 이동한다. 이 시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제도‧산업화되고 있으며, 특히 동북아‧유럽‧북미에서는 고령 친화형 주거, 재활‧간병 서비스, 노후자산 관리형 금융상품이 중장기 성장 산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시니어 투자자에게 이 흐름은 곧 “나 자신이 시장의 핵심 소비자이자 투자자”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뜨는 산업은 젊은 세대를 위한 플랫폼 비즈니스만이 아니며, 바로 우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트렌드는 ‘지속가능성의 사업화’다. 올해 경주 APEC CEO 서밋의 슬로건 중 하나가 “Bridge, Business, Beyond”였다. 이것은 기후 전환, 탄소중립, 공급망 안정성 같은 과제를 더 이상 도덕적 구호나 CSR로만 다루지 않고, ‘사업 모델’로 구체화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2026년 투자자가 집중해야 할 세 가지 포인트

 

2026년 투자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꼭 챙겨야 할 세 가지는 무엇일까.

 

첫째, 금리의 “속도”다. 연준은 이미 금리 인하 국면으로 돌아섰지만, 그 속도와 폭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만약 경기 둔화가 심해져 추가 인하가 빨라진다면 장기채권, 고배당 인프라 자산, 리츠 등 인컴형 자산이 재평가될 수 있다. 반대로 물가가 다시 들썩이거나 임금, 물가 악순환이 재점화되면, 중앙은행은 다시 매파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은퇴자에게 이 문제는 매우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생활비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월 현금흐름, 즉 배당‧이자소득의 안정성이 금리 경로에 직접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2026년은 “고금리의 끝”이 아니라 “완만한 저금리로의 회귀 과정에서 생기는 자산 간 재평가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 과정에서 인컴형 자산의 가치 변동을 민감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둘째, 공급망 리스크 관리 여부다. 경주 APEC은 보호무역주의와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음을 분명히 말해주었다. 한국 대통령 역시 ‘보호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치솟는 시대일수록 APEC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경고하면서, 공급망 협력이 곧 경제안보라고 못 박았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은 관세, 희토류, 데이터 규제, 기술 통제 등에서 서로를 압박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 수준의 타협과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6년 투자자는 단순히 ‘수출 잘 되는 기업’을 고르는 것을 넘어, “이 회사의 밸류체인이 어느 나라 규제에 걸려 있는가, 희토류나 배터리 소재는 어느 루트로 조달되는가, 그 과정에서 정치적 리스크가 얼마나 분산돼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는 한국 개인 투자자에게 다소 낯선 체크포인트지만, 앞으로는 기업의 실적 전망만큼이나 중요한 투자 판단 요소가 될 것이다.

 

셋째, 인구구조와 고령화에서 오는 정책 변화다. IMF와 OECD는 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한 국가는 잠재성장률 둔화와 재정 압박, 세대 간 갈등 심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이 ‘실버 이코노미’는 의료, 돌봄, 주거, 자산관리, 장기요양 서비스 등에서 거대한 신규 수요를 창출예정이다. 2026년 이후 각국 정부는 연금 제도 조정, 고령자 노동시장 참여 확대, 돌봄 인프라 민간 위탁 등 구조개편을 가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고령층의 생활 인프라, 예컨대 시니어 주거단지, 방문의료/방문재활 서비스, 장기 요양 관련 보험‧금융상품 등이 정책적 ‘필요 산업’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이는 곧 정책이 밀어주는 장기 성장 섹터라는 뜻이고, 시니어 투자자에게는 “내 삶에 꼭 필요한 서비스 = 장기적으로 꾸준히 매출이 나오는 산업”이라는 직관적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정리하자면,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의 조정자’이자 ‘기술‧공급망 의제의 설계자’로 올라서겠다는 선언적 장면이다.

 

거시적 변화가 개인의 현금흐름을 좌우하는 시대

 

이 무대에서 드러난 2025년의 핵심 흐름은 금리 전환, 공급망과 안보경제, 인공지능의 산업화, 고령화 경제의 부상,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 모델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었다. 2026년을 바라보는 투자자는 이 다섯 가지 축 위에서, 특히 (1) 금리의 속도, (2) 공급망의 정치성, (3) 고령화 정책의 방향,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은퇴 이후의 투자는 더 이상 “부동산 하나 사놓고 배당주 조금 사면 끝”이 아니다. 이제는 국가 간 협상, 기술 표준, 인구구조 같은 거시적인 힘이 내 노후 현금흐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포지셔닝하는 것, 그것이 2026년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자산관리 전략이다.

 

 

[프로필] 서기수 서경대학교 금융정보공학과 교수

(현)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현)서울시민대학 사회경제분야 자문교수

(전)한미은행, 한국씨티은행 재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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