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온라인 쇼핑의 시작은 늘 검색창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을 입력하면 홍삼부터 유산균, 루테인까지 수백 개의 상품 목록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소비자는 스크롤을 내리며 가격을 비교하고 후기를 읽었다. 번거로워도 선택의 주도권은 소비자에게 있었다.
대화형 AI(인공지능) 쇼핑 시대에는 이 익숙한 풍경이 완전히 뒤바뀐다. 대화창에 “부모님 선물용으로 5만 원대 제품을 찾아줘”라고 치면, AI는 조건에 맞는 단 3~4개의 ‘최적 후보’만을 핀셋처럼 추려내 보여준다.
이러한 편리함 이면에는 상거래 생태계를 뒤흔들 근본적인 변화가 숨어 있다. 바로 ‘선택지의 압축’이다. 과거 검색 쇼핑의 경쟁력이 소비자의 눈에 띄는 것이라면, AI 쇼핑 시대의 핵심은 AI가 사전에 솎아내는 거대한 ‘필터’를 통과해 최종 후보군에 진입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 챗GPT·구글·네이버의 ‘AI의 상품 선별법’
그렇다면 AI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수많은 상품 중 단 몇 개만을 골라내는 것일까. 빅테크 기업들이 공개한 공식 문서와 선별 자료를 살펴보면, 추천의 핵심은 ‘구조화된 데이터’와 ‘교집합 도출’에 있다.
오픈AI가 2025년 11월 공개한 ‘챗GPT 쇼핑 리서치’와 공식 도움말은 AI 쇼핑의 작동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챗GPT는 상품을 선별할 때 ▲사용자의 질문 맥락 ▲가격 ▲리뷰 및 평점 ▲사용 편의성 ▲구조화된 상품 메타데이터 ▲제3자 콘텐츠 ▲안전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추천 결과가 특정 브랜드의 광고나 파트너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AI가 걸러내는 필터도 정교해진다.
구글 역시 압도적인 규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별 작업에 나선다. 구글은 2025년 5월 ‘AI 모드 쇼핑’ 업데이트를 발표하며, 자사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와 ‘쇼핑 그래프’를 결합했다.
구글의 쇼핑 그래프에는 500억 개 이상의 상품 목록이 등록돼 있으며, 각 상품에는 리뷰·가격·색상·재고 정보가 붙어 있다. 구글은 이 중 20억 개 이상의 상품 목록을 매시간 갱신한다. 소비자가 질문을 던지면, 제미나이는 이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필터링해 조건에 부합하는 교집합만 띄워주는 식이다.
최근 네이버의 행보도 궤를 같이한다. 네이버는 2026년 2월 커머스 특화 거대언어모델(LLM)인 ‘쇼핑 인텔리전스’를 기반으로 한 ‘쇼핑 AI 에이전트’를 출시했다.
네이버 측 설명에 따르면, 사용자가 “강아지와 함께 사는 신혼집 소파를 추천해 줘”라고 입력할 경우, AI는 사전에 학습한 가격, 배송 정보, 상품 속성 데이터에 더해 수많은 구매 후기와 상품 스펙을 자체적으로 요약·분석한다. 이후 소비자의 상황에 가장 최적화된 소수 정예의 상품군만 제안하는 방식이다.

◆ 검색광고 지고 데이터 피드 뜬다…“AI가 읽기 쉬운 논리 짜야”
플랫폼들의 이러한 선별 방식은 판매자들에게 치명적인 숙제를 던진다. 기존 이커머스 생태계의 성공 공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쿠팡, G마켓, 11번가, SSG(신세계)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이른바 ‘자본력’이 노출 순위를 결정했다. 광고 단가를 높게 부를수록 검색 결과 최상단에 상품이 꽂히는 구조였다. 판매자들은 상단 노출을 위해 막대한 키워드 광고비를 집행하고,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화려한 이미지 위주의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AI 쇼핑 시대에는 상품 진열대가 AI 대화창 안으로 이동했다. 즉, AI 알고리즘이 우리 상품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느냐가 판매를 좌우한다.
오픈AI가 최근 발표한 정책을 보면 판매자가 상품 피드를 제공하면 챗GPT 안에서 상품이 더 정확하고 최신 정보로 표현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이 개념은 쉽게 말해 ‘AI를 위한 맞춤형 디지털 명세서’다.
과거에는 상세페이지에 화려한 디자인의 이미지를 통째로 올려 소비자를 설득했다. 하지만 AI는 그림에 적힌 글씨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가격: 5만 원], [대상: 부모님], [특징: 선물포장 가능], [공식 판매처: 있음]처럼 AI가 즉각 분류하고 연산할 수 있도록 상품의 모든 속성(데이터)을 엑셀 표처럼 태그를 달아 깔끔하게 나눠 입력해 둬야 한다.
아무리 광고비를 쏟아부어도 이 ‘데이터 명세서’가 부실하면 AI의 비교 필터링을 통과할 수 없다. 반대로, 데이터를 꼼꼼하게 정돈한 중소 브랜드는 AI의 추천 후보군에 올라 대형 브랜드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무기를 얻게 된다. ‘잘 보이는’ 마케팅에서 ‘잘 읽히는’ 데이터 관리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 베일에 싸인 AI 필터링…“추천 기준 투명성 확보해야”
문제는 AI의 구체적인 필터링 과정이 철저한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AI가 특정 상품을 띄울 때 가격에 더 큰 가중치를 뒀는지, 공식 판매처 여부를 우선했는지, 아니면 리뷰 수를 중시했는지 외부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처럼 건강에 직결되는 민감한 카테고리에서는 위험성이 더 커진다. AI가 웹상의 파편화된 리뷰를 단순 요약해 추천할 경우, 자칫 효능을 과장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정답처럼 포장될 위험이 존재한다. 오픈AI 역시 “리뷰와 평점은 직접 검증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학계와 정책 기관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인공지능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데이터 출처 점검과 내부 거버넌스 위험 평가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AI 기반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 적용 시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명확한 사전 고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알고리즘의 내부 수식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소비자가 “어떤 기준과 가중치를 통해 이 상품들이 최종 후보로 압축됐는지” 알 수 있는 설명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AI 쇼핑은 소비자의 손품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지만, 판단의 책임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소비자가 수백 개의 상품을 직접 비교했다면, 미래의 소비자는 AI가 내민 결과물의 ‘추천 이유’를 날카롭게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온라인을 총괄하는 한 상품기획자(MD)의 말은 이러한 현장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광고비가 곧 매출 전환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AI가 어떤 데이터에 가중치를 두는지 알 수 없어 현장의 고민이 깊습니다. 우리 브랜드 역시 AI가 상품 로직을 제대로 읽어내도록 데이터를 정제하는 작업을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플랫폼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는 결국 ‘AI 입맛 맞추기’에 불과합니다. 건전한 데이터 경쟁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추천 알고리즘 룰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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