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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돋보기] 사망 1년전 신탁하면 유류분 걱정없이 ‘재산몰아주기’ 가능

유언대용신탁, 유류분 대상서 빠진 첫 사례 나와

국내 신탁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올해 수탁고만 100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일반 대중에게 신탁은 여전히 거리감 있는 자산관리 방법으로 받아들여진다. 수억원 또는 수백억원 이상의 융통 가능한 재산을 소유한 일부 자산가의 ‘전유물’ 같다. 하지만 신탁의 정확한 정의와 구성 방법, 목적을 이해하면 그간의 오해와 억측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자산가는 물론 일반 대중, 나아가 저소득층에게도 ‘미래 먹거리’가 되어 줄 신탁의 제대로 된 이해를 돕고자 지난번 신탁시장에 대한 분석과 전망, 제도 개선이 필요한 지점 진단을 진단했다. 이번에는 실제 다양한 판례를 통해 신탁업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고인이 사망하기 1년 전 ‘유언대용신탁’으로 금융회사에 맡긴 재산은 유류분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1979년 이래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유류분 적용을 피해 피상속인이 자신의 재산을 원하는 상속인에게 물려줄 수 있는 첫 사례가 나온 것.

 

지금껏 국내 상속제도는 크게 상속분과 유류분으로 나뉘었으나, 사법부는 해당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유류분 제도가 무력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류분은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속인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 금융사에 맡긴 유언대용신탁, 유류분서 제외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3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3부(재판장 김수경 부장판사)는 2017년 11월 사망한 고인 박모씨의 직계가족 간 유산 상속을 위한 법정 다툼에서 유언대용신탁으로 묶인 재산에 대한 유류분 반환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박씨는 사망 3여년 전인 2014년 4월 둘째딸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하나은행의 ‘하나 리빙 트러스트(Living Trust)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신탁 대상으로 지정된 것은 현금 3억원과 서울권 부동산 2건, 경기권 부동산 1건이었다.

 

박씨 사망 후 사전에 맡겨졌던 신탁재산이 둘째딸에게 상속되자, 첫째 며느리 윤모씨(남편은 사망)는 박씨가 가입해둔 유언대용신탁 재산에 대해 자신에게 4억7000만원, 자녀 2명에게 각각 3억1000만원 등 총 11여억원 대한 유류분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유언대용신탁에 묶인 재산은 유류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법 제1114조에 따르면 유류분 대상이 되는 재산은 상속개시 전 1년간 이루어진 것에 한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끼칠 것을 알고 증여를 한 때에는 1년 전 이루어진 증여도 포함된다.

 

재판부는 유언대용신탁이 체결되면서 재산의 소유권이 하나은행에 넘어갔으므로 그 시점부터 박씨 소유의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박씨가) 유언대용신탁으로 맡긴 재산의 소유권은 신탁을 받은 금융회사가 갖는다”며 “신탁계약 역시 3여년 전 맺어져 유류분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또한 신탁법상 신탁재산은 수탁자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가 이뤄지면 수탁자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판례를 꾸준히 유지해온 바 있다.

 

이후 원고는 1심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으나, 지난 10월 15일 수원고등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부장판사 최규홍)는 첫째 며느리와 그 자녀들이 제기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2심의 경우 1심 판결과 같이 신탁재산을 유류분에 포함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직접적인 법리해석은 없었다. 하지만 1심 판결에 반대 의견을 내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1심의 결과를 용인했다. 대법원 상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 직계가족 아니라도 몰아주기 가능

 

국내 민법에서 1순위 상속인은 직계비속으로, 피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직계 가족인 배우자와 자녀는 법으로 정해진 유류분(법정상속분의 1/2 또는 1/3)을 상속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국내 상속 관행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해당 재판과 같은 사례가 반복적으로 도출돼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한 뒤 1년이 경과할 경우 자신의 의사대로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류분 걱정 없이 특정 자녀는 물론 직계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고, 전액을 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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