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복의 세계경제 Story] 조선-대마도 간 무역과 관세⓷

2026.09.14 12:03:53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조선과 쓰시마 번 사이의 거래는 사대교린이라는 외교적 틀 속에서 운영되었기 때문에, 수출입 물품의 가액에 일률적인 비율을 적용해 국가가 징수하는 근대적 의미의 관세는 없었다.

 

오늘날처럼 수입·수출 가액에 비례해 국가가 일괄 과세하는 체계가 아니라, 공무역의 하사·교환, 사무역의 개시 운영, 물품별 현물 징수, 관행적 부담금·수수료·뇌물이 뒤섞인 구조였다.

 

그러나 사무역(개시)에서는 왜관 무역을 관리하는 조선 관리들, 즉 훈도(*일본어 통역관 겸 실무책임자)나 별차(*훈도의 보좌역)들이 거래를 중개하며 일부 사례에서 구전·편의 제공·비공식 상납(*인정)이 발생했다.

 

또한 조선의 일부 상인 집단은 무역상의 특권을 누리는 대신, 공납·조달 의무·역 부담을 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조선의 대외무역은 단순한 상업 행위라기 보다 외교적 접대, 구휼, 질서 유지의 성격이 강했고, 국가가 상업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를 이유로 경제적 실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대마도에 대한 통제와 무역 이익의 조정은 실제로 함께 작동했다.

 

일본 상인이 조선에 들어올 때 오늘날 의미의 관세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역 과정에서 수수료·상납·편의 제공 등 실무적 비용이 발생했다.

 

반면 사무역에서는 번·상인·왜관 운영 주체와 조선 측 관청이 거래 허가, 입출항, 창고 사용 등을 둘러싸고 각종 비용과 부담을 부과했다. 이를 오늘날의 입회료·허가료·통관세로 단순 대응시키기 보다는, 관행적 부담금·현물 징수·관리 비용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조선-대마도 무역의 관세 등 세금 체계를 보면, 공무역에서는 조선이 세사미두(* 쌀·콩)와 세견선·회답서계 체제를 통해 교환 조건을 정했다.

 

조선과 대마도 간 공무역 교환 비율은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국가가 정한(* 관정 官定) 고정 비율을 적용하여, 은(銀) 1냥 = 면포 몇 필 등으로 고정되어 운영되었고, 품목·시기·품질에 따라 실질 환산은 달라졌다. 

 

일본 사절이 조선 조정에 바치는 예물(진상품)은 형식은 선물이나, 사실상 무역 허가를 위한 비용으로 예단(禮單) / 공작미(公作米)라 하였고, 조선은 이에 대해 회사품(回賜品)으로 답례하였으며, 이 차액이 실질 이익이 된다.

 

이를 곧바로 “무역 허가 비용”이나 “실질 이익”으로 환원하기보다, 외교 의례와 무역 질서가 결합된 교환 구조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사무역(私貿易)의 세금 구조는, 개시(정기시장)에서 거래할 때 부과되는 거래세로 조선 측 관리(훈도·별차)가 징수한 개시세(開市稅) / 장세(場稅)가 있었다. 세율은 시기마다 달랐으나 일반적으로 거래액의 일정 비율로 현물을 징수하였다.

 

복세(卜稅) / 짐세는 왜관으로 들어오는 화물량(짐)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짐의 단위(卜)당 일정량의 현물(쌀, 포목 등)로 납부하였고, 물품 통제와 현물 징수 성격이 결합된 세목으로 대마도 상인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 수입 관세 성격이 있었다고 본다.

 

거래 성사 시 중간에서 통역·중개를 담당한 훈도·통사(通事)에게 지불하는 것은 구문세(口文稅) / 구전(口錢)이라 하여 공식 세금이라기보다 실무상 상납·수수료 성격으로 거래액의 일정 비율을 현물 또는 은으로 지불하였다.

 

잠상(潛商)들의 밀무역이 적발되면 화물 몰수와 처벌이 뒤따랐고, 몰수품은 대체로 관청이나 국가 재정에 귀속되었다.

 

대마도 측이 부담한 비용을 보면, 도해료(渡海料)라 하여 왜관 왕래 시 선박 운항비를 자체 부담하였고, 왜관 상주 인원 유지비인 관수·재판 체재비는 번(藩)이 부담하였다. 조선 관리에게 바치는 선물인 예단·진상품은 사실상 허가세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조선 측 세입 귀속 구조를 보면, 거래가 발생하면, 복세(화물세)를 동래부(東萊府)에서 수입(收入)하고, 개시세(거래세)는 동래부에서 중앙에 상납한다. 구전(수수료)은 관행으로 훈도·별차의 개인 수입이었다. 예단·진상품은 중앙 조정(호조)에 귀속되었다.

 

이렇게 운영되다 보니, 명문화된 세율보다 관행·협상에 의존하고, 훈도·통사의 부패가 발생하여 구전 명목으로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고, 환율 조작 시비가 있었고, 공정 교환 비율을 둘러싼 조선-대마도 간 갈등 및 밀무역 성행, 공식 세금 부담을 피하려는 잠상(潛商) 횡행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주요 품목별 무역 동향 및 관세 징수 등을 보면, 인삼은 조선-대마도 무역에서 가장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세금 및 규제가 가장 복잡했다. 15~16세기 초 공무역 품목으로 국가가 수량 통제와 민간 거래를 제한하였다.

 

기유약조(1609) 이후 왜관 개시에서 인삼 사무역을 허용하자 거래량이 급증하였다. 17세기 중반 인삼 1근당 은 6~8냥 수준으로 거래되었다. 18세기에는 홍삼(紅蔘)이 등장하여, 가공 인삼 수출로 부가가치가 증대되었고, 19세기 대원군 이후에는 인삼 전매제가 강화되었다.

 

세금·비용 구조를 보면, 포삼세(包蔘稅)라 하여 인삼을 포장 단위(包)로 반출할 때 부과하였는데, 1포(약 1근 단위)당 일정량의 은 또는 포목을 납부토록 하였다.

 

18세기에는 기준 1포당 은 1~2냥 수준이었다. 인삼 전문 상인(삼상)이 내는 허가세로 삼상세(蔘商稅)가 있었고, 개성 삼상이 동래까지 운반 시 각 지역 관문마다 통과세를 납부하였고, 동래부에 도착 후 훈도에게 구전을 별도 납부하였다. 밀수 인삼은 적발 시 전량 몰수하였고, 상인을 처벌하였다.

 

은은 일본 측이 조선에 지불하는 주요 결제수단이자 수출품이었다. 16세기 일본은 수입이 본격화되었고, 조선 내 은 유통이 증가하였다. 

 

17세기 전반 기유약조 이후에 왜은(倭銀)이 대량 유입되어 인삼 대가로 지불되었다, 그러나, 일본 내 은 생산이 감소하여 조선 유입 은이 감소하자 18세기에는 은 대신 동(銅)으로 결제 방식이 전환되어 19세기에 은 유통은 크게 축소되었다.

 

왜관으로 은을 들여올 때 복세를 부과하였는데, 은 반입세라 하여 은 100냥당 일정량 현물을 납부하였고, 환산세(換算稅)라 하여 은을 조선 화폐·물품으로 교환 시 교환 수수료를 냈고, 훈도·별차가 교환 과정에 개입하여 수수료를 수취하였다.

 

왜은의 순도(品位)를 조선 측이 검사하여 순도 미달 시 감액을 적용하였는데 사실상 추가 비용이 된다. 조선이 설정한 공정 교환 비율을 강제 적용하여 은 1냥 = 면포 약 4~5필로 하였고, 시장 환율과 괴리 발생 시에는 대마도 측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17세기 말에 왜은 순도 저하 문제로 조선-대마도 간 반복적 마찰과 교섭 갈등이 발생하였었고, 대마도 측이 품질 낮은 은을 대량 반입 시도하자, 조선이 무역 중단으로 압박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조선이 대마도에 무상 지급하던 세사미두(歲賜米豆)는 세금 개념과는 반대로, 대마도 입장에서는 수입(收入)이고, 조선 입장에서는 외교 비용이었다. 공무역 외 쌀 거래 시에는 개시세를 부과하였는데 미곡 무역세로 쌀 10석당 약 1석 수준의 세금을 현물로 납부하였다.

 

동래 인근에서 왜관까지 쌀 운반 과정의 통과세가 있었으며, 쌀의 등급(上·中·下)에 따라 교환 비율을 차등 적용하였다.

 

면포는 조선의 대표적 수출품이자 사실상 화폐 기능을 했다. 15~16세기에는 주요 결제수단으로 은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17세기에는 은 유입 증가로 상대적 비중이 감소하였고, 18세기에는 목면의 품질 저하 문제가 발생하였다.

 

17세기 이후에는 은의 비중이 커지면서 면포의 상대적 위상이 조정되었고, 18세기에는 면포의 품질과 규격 문제가 중요해졌다.

 

면포 반출 시 필(疋) 단위로 필수(疋數) 과세하였으며, 면포 10필당 1필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였고, 품질 검사하여 폭·길이·밀도 기준 미달 시 감액 적용하였다. 면포 1필 = 은 약 0.2~0.3냥으로 공정가가 고정되었다.

 

구리(銅) / 유황(硫黃) / 후추(胡椒)는 일본 측 주요 수출품으로, 17세기 이후 은 대체재로 부상했다. 구리(銅) 는 중량(斤)당 복세 부과 과세 방식으로 18세기 은 감소 후 주요 결제 수단이었다.

 

유황은 반입량 제한 + 복세를 부과하였고, 화약 원료이므로 전략물자로 취급하였다. 후추는 중량당 개시세를 부과하였고, 조선 귀족층의 수요가 높았다. 납(鉛)은 중량당 복세를 부과하였고, 군사용 원료로 엄격히 관리하였다.

 

시기별로 보면, 15~16세기에는 공무역 중심의 질서 속에서 대마도 측이 비교적 유리한 교환 조건을 누린 측면이 있다. 17세기 전반 기유약조 이후에는 무역 질서가 재편되면서 복세·개시 관련 부담·구전 같은 비용 구조가 더 뚜렷해졌고, 인삼과 은을 중심으로 거래 규모가 커졌다.

 

17세기 후반~18세기에는, 왜은이 감소해 동(銅)으로 전환하였고, 인삼 전매화 강화로 삼세가 증가하였으며, 훈도·통사 부패로 실질 세 부담이 증가하였다. 19세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등으로 통상 제한이 강화되고, 전통적 왜관 무역 체계가 붕괴되었으며,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새 체제로 전환되게 된다.

 

18세기 기준으로 실질 세부담률을 추정하여 보면, 인삼은 공식 세율 약 5~10%, 비공식 수수료(훈도 구전, 통사 수수료 등) 약 5~8%, 실질 총부담은 약 10~18%, 은은 공식 세율 약 3~5%, 비공식 수수료 약 3~5%, 실질 총부담 약 6~10%, 쌀 공식세율 약 10%, 비공식 수수료 약 2~3%, 실질 총부담 약 12~13%, 면포 공식 세율 약 10%, 비공식 수수료 약 3~5%, 실질 총부담 약 13~15%, 구리 공식 세율 약 5%, 비공식 수수료 약 3%, 실질 총부담 약 8% 로 추정된다.

 

수입품 대금은 조선은 초기에는 무명(목면)으로 대금을 지불했으나, 쌀이 부족했던 대마도의 요청에 따라 쌀(공작미)을 지급하기도 했고, 물물교환 시 부정행위를 막고 시세를 고정하기 위해 물건의 가격과 교환될 포목의 양을 정한 규격표인 '가목(價木)'을 엄격히 적용하여 가격을 통제한 점이 눈에 띈다.

 

 

[프로필 ] 이대복 한국세관역사연구회 회장

• 2021.1. 15 ∼ 관세법판례연구회 고문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 로펌(Sandler, Travis &Rosenberg, P.A.) 고문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세계관세기구(WCO) 사무총장상 수상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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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tf@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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