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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1 (목)

[기자수첩] 상록수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2003년 카드대란은 금융권에선 이미 지나간 역사처럼 취급됐다. 카드사들은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았고, 금융시장은 정상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당시 연체자가 된 일부 사람들에게 카드대란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장기연체, 반복된 시효 연장, 원금을 넘어선 연체이자. 그리고 그 한가운데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상록수)’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국무회의에서 “몇천만원이 몇억원이 됐다더라”, “사람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언급하면서 상록수 문제가 다시 공론화됐다. 대통령 발언 직후 신한카드,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카드 등이 상록수 보유 채권을 새도약기금으로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방치됐던 장기연체채권 정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상록수는 카드대란 당시 금융회사들이 장기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SPC)다. 은행과 카드사들이 연체채권을 넘기고, 상록수가 이를 관리·추심하는 구조다. 현재도 주요 금융회사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금융권 입장에서는 당시 상록수 같은 구조가 필요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카드대란 당시 연체채권이 한꺼번에 불어나면서 카드사들이 직접 이를 떠안을 경우 카드사 부실이 금융권 전반으로 번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빠르게 커졌다.

 

채권은 금융회사 재무제표에서 사라졌지만, 채무자의 빚은 끝나지 않았다. 일부 장기연체채권은 20년 넘게 추심과 시효 연장을 반복했고, 원금보다 이자가 훨씬 커진 사례도 있었다.

 

금융권은 현재 은행이나 카드사가 직접 추심에 나서는 구조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연체채권은 이미 상록수로 넘어갔고 금융회사들은 현재 지분을 보유한 주주 역할에 가깝다는 것. 하지만 상록수 지분을 통해 배당과 자산 회수 구조를 함께 유지해온 만큼, 금융회사들이 책임에서도 완전히 분리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특히 논란이 커지는 지점은 상록수 채권이 오랫동안 새도약기금 밖에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을 정리해 추심을 중단하고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런데 상록수 채권은 민간 SPC 구조라는 이유로 제외돼 왔다. 결과적으로 가장 오래된 장기연체자들이 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장기연체채권 정리 문제로 보기 어렵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이후 금융권은 부실채권을 별도 회사로 넘기며 재무 건전성을 회복해왔다. 금융회사들에겐 위기를 정리하는 과정이었지만, 장기연체자들에겐 추심과 연체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카드대란은 금융시장에선 오래전에 끝난 사건이다. 그러나 일부 장기연체자들에겐 지금까지 이어진 생존의 문제였다. 추심은 멈추지 않았고 빚은 줄지 않았다. 상록수라는 이름 아래 남겨진 20년의 시간은 금융권이 처리했다고 믿었던 부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삶을 계속 잠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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