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해외 자회사에 물품 제조를 위탁해 수입하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원천기술 기업에 ‘표준특허’ 사용료(로열티)를 따로 지급했더라도, 수입자가 다른 제조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구조라면 해당 로열티에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판결 결과가 나왔다.
이는 제3자에게 지급하는 권리사용료를 물품 가격에 얹어 관행적으로 과세해온 세관의 처분에 조세심판원이 제동을 건 것이어서 학계와 관세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19일 서울세관 중회의실에서 개최된 제16차 한국 관세법판례연구회에서 이명구 전 관세청장(제34대)은 '표준특허 로열티의 과세가격 가산요소 연구'를 통해 조세심판원 결정례를 심층 분석하고 이 같은 시사점과 해석을 동시에 제시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수입물품과 기술 사용료 사이의 '거래조건성' 성립 여부였다. 현행 관세법상 제3자에게 지급한 로열티가 수입물품 가격에 포함돼 관세가 매겨지려면,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으면 해당 물품을 구매하거나 수입할 수 없다"는 필수적 연계 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당시 처분청(세관)은 국내 수입기업이 해외 자회사(수출자)로부터 물품을 사오면서 원천기술사(제3자)에 표준특허 로열티를 지급한 것을 두고, "로열티 미지급 시 수입이 불가능하므로 물품 가격의 일부"라며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세관의 과세 처분을 취소하며 수입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 이유는 '표준특허(FRAND)'의 특수성…"대체 공급선 선택권 있었다"
조세심판원과 이 전 청장이 '비과세'가 타당하다고 본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해당 기술이 독점 기술이 아닌 '표준특허'였다는 점에 있다. 표준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FRAND,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 공정,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체결된 라이선스 계약에 의한 특허권 실시 허락)으로 누구에게나 라이선스가 제공되는 기술이다.
흔히 말하는 Wi-Fi, 블루투스와 같은 통신 표준, MP3 등과 같은 멀티미디어 등 보편적인 기술이 다양한 나라별로 체계화 돼 실제로 보편적으로 특허가 제공되고 있다.
일반특허의 경우 독점적 배타권에 해당, 특허권자 이익을 극대화하고 기술적 보호를 위해 작용해 왔다.
이 전 청장은 발표논문에서 "청구법인(수입자)은 기술 계약에 따라 전 세계 어느 공장이든 차별 없이 계약을 맺고 물품을 제조할 수 있는 ‘구매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며 "반드시 특정한 해외 자회사로부터만 물품을 사야 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물품 공급 계약과 로열티 계약은 독립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판례를 봤을 때 계약서상 로열티를 내지 않았을 때 물품 공급을 거부하거나 계약을 종료한다는 강제 약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 현장 토론 격론…"글로벌 통신·휴대폰 대기업의 전유물 아닌 중소기업으로도 확산"
이날 발제 이후 이어진 지정 및 자유 토론에서는 현직 관세 조사관과 법조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표준특허의 실질적인 거래 구조와 법리적 한계를 두고 다각도의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조재민 서울세관 디지털무역범죄조사 과장은 과거 처분청을 대리해 유사 사건의 심리를 검토할 당시, 기술 계약서에 명시적 문구가 없더라도 지식재산권의 본질상 대가 지급 없이 특허를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로열티 미지급 시 사실상 물품의 합법적 유통이 불가능해져 구매 자격이 상실되는 만큼, 거래조건성이 당연히 성립할 수 있다는 과세 관청 측의 논리적 고민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석문 전 서울세관장(KCeP 연구원 대표)은 과거 우리 핸드폰 대기업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며 글로벌 기업 퀄컴 등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했던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등이 대표적인 표준특허의 사례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과거에는 이러한 표준특허 계약이 일부 글로벌 통신·휴대폰 대기업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과 IT 대전환 속에서 중소기업이나 일반 제조 기업들까지 표준특허가 체화된 부품을 위탁 제조·수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라면서 “이처럼 표준특허가 여러 기업으로 확산하는 환경에 맞춰 관세평가 규정과 실질적 구매선택권에 대한 현실적인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용태 법무법인 린 관세 전문위원(전 건국대 글로캠 교수)은 "거래 구조상 로열티가 수입 수량이 아닌 국내 판매 순매출액에 연동되어 산정되었다면, 이는 생산 단계의 필수 기술 대가라기보다는 국내 유통과 상행위를 위한 라이선스 성격이 짙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수입 시점의 물품 가격과 관련성이 단절되어 비과세가 타당하다는 논리도 성립 가능하다”라며 또 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전 청장은 이러한 토론자들의 의견에 대해 "실무적으로 실제 로열티 계약이 일체의 행위를 규율하는 경향이 있으나, 세관이 가산 과세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로열티를 주지 않으면 물품 공급이 거부된다'는 구체적인 연계성을 명확한 물증으로 입증해야 한다"며 과세당국의 엄격한 입증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 과거 '과세 인정' 판결과 무엇이 다른가
논문은 이번 판결이 제3자 지급 로열티에 대해 과세를 인정했던 과거의 대표적 결정례(조심 2019관79)와 명확히 구분된다고 짚었다.
과거 사건의 경우 특허권자가 지정하거나 인증한 '특정 공급자'에게서만 물품을 사야 했고, 로열티를 안 내면 물품 구매 자격 자체가 박탈되는 등 '외통수' 구조였기 때문에 과세가 성립했다.
반면 이번 사건은 ▲FRAND 조건에 따라 수입자가 국내외 제조사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던 점 ▲로열티 미지급이 물품 공급 거부로 이어진다는 직접적 페널티 조항이 없었다는 점에서 거래조건성이 부정됐다.
◇ 이명구 전 청장 "관행적 과세에 경종…당국과 기업 모두 패러다임 바꿔야"
이 전 청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세관당국이 제3자 지급 권리사용료를 관행적으로 과세가격에 가산하던 처분 형태에 조세심판원이 경종을 울린 선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IT·AI 대전환 등으로 첨단 표준기술이 녹아든 제품 수입이 급증할 것"이라며 "과세관청은 앞으로 무조건적인 과세를 지양하고, 대체 공급선 유무나 계약 간 연계성을 정밀하게 확인해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됐다"고 부언했다.
다만 수입기업들을 향한 주의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 전 청장은 "본 결정이 표준특허 로열티에 대해 무조건 비과세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실제 거래 관계와 다르게 과세를 피할 목적으로 고의로 계약서에서 공급 거부 조항을 빼는 등의 편법을 쓸 경우,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철퇴를 맞을 수 있으므로 계약 체결 시점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후 두 번째 세션에서는 조재웅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前 관세청 공익법무관)가 관세조사와 외환검사 대상기간 중첩을 중심으로 중복조사금지 원칙에 대한 발제를 이어갔다.
조재웅 변호사는 선행 외환검사를 받은 기업에 대해 5년 이내에 다시 관세조사가 실시될 경우 발생하는 중복조사 위법성 논란에 대해 "두 제도의 법적 근거와 목적이 달라 독자성이 인정된다는 견해와, 이미 외국환거래 내역을 검토했다면 사실상 중복조사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변호사는 "두 조사의 대상 기간을 아예 중첩시키지 않는 방안은 관세행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기업의 불확실성을 장기간 누적시킬 수 있어 실무적인 타개책이 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최근 서울세관이 후행 관세조사를 착수하면서 통지서에 '기존 외환검사 관련 부분은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중첩되지 않는 기간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사례가 현행 법제상 가장 타당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은 될 수 있으나,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잠재적인 조사 공백(회색지대)이나 세관의 자료검토 누락 가능성을 보완하는 제도적 노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이명구 전 관세청장이 한국 관세법판례연구회 회장으로, 박헌 인천공항세관장이 고문으로 추대 되었다.
이명구 관세청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관세 뿐만 아니라 지방세, 국세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판례등을 논의 한다면, 우리나라 세법 발전방향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연구회에는 이대복 전 관세청 차장, 김용태 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이석문 KCeP 연구원 대표(CRO), 장호중 법무법인 화현 변호사(전 검사장), 이병화·설미현 법무법인 린 변호사, 박규훈 법무법인 광화문 변호사, 이훈재 부산세관 심사국장, 유성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이상욱 김앤장 변호사, 조재민 서울세관 디지털무역범죄조사 과장은 등 유관 기관 및 법조계 전문가들이 토론자로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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