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정지은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일 1시간 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가 될 뻔한 파업 사태의 극적 봉합을 눈앞에 두게 됐다. 파국을 우려하던 투자자들도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최대 100조원대 손실과 반도체 생태계 및 공급망 훼손 등 국가적 경제 피해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자 노사도 한발씩 물러서 해결책을 찾았다. 잠정 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에서 통과되면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넘게 이어진 노사갈등도 최종 마무리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오는 21일부터 예고했던 총파업을 유보하고 2026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간다.
이날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공지를 통해 "투쟁지침 2호로 선포한 5월 21일~6월 7일 총파업은 추후 별도 지침 시까지 유보한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이하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저희 내부 갈등으로 심려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 끝까지 노력해주신 정부와 관계자, 조합원께 감사드린다"면서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를 저희의 성적표로 (삼아) 더 나은 초기업노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 여명구 부사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임직원분들께 죄송하고 노력해주신 노조와 도움 주신 정부 관계자들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면서 "잠정 합의가 상생의 노사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겠다. 회사는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노사 상생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을 주재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노사 자율교섭으로 잠정 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깊이 감사한다"며 "무엇보다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 가슴 졸이고 지켜보고 계셨을 국민들 덕분"이라고 치하했다.
이번 합의 이후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대상 투쟁지침을 통해 "5월 21일~6월 7일 총파업은 추후 별도 지침 시까지 유보한다"고 공지했다.
또한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부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잠성합의안은 투표를 통과해야 합의안 자격을 갖게 된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18~20일 진행된 중노위 사후조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끝에 이날 오전 조정이 결렬됐다.
노조는 성과급 재원의 70%를 반도체(DS) 부문 전체가 똑같이 나누고 나머지 30%를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사측은 이런 요구대로면 적자 사업부 임직원도 연간 수억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며, 성과주의 인사 원칙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파업을 막기 위해 노사를 설득, 이날 오후 경기도 수원의 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노사 교섭이 재개됐다.
이번 노조 찬반투표가 최종 가결되면 지난 5개월여간 이어진 삼성전자 노사갈등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한편, 삼성전자 노사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종일 널뛰기를 반복한 끝에 전장보다 0.18% 오른 27만6천원에 마감했다.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3차 사후 조정 회의가 시작된지 한시간여만인 오전 11시 23분께엔 타결 기대감에 주가가 28만2천5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초기업노조가 합의가 불발돼 21일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하자 급락해 한때 4.36% 내린 26만3천500원까지 추락했고, 이후 정부가 유감을 표하며 중재에 나선 뒤에야 완만히 낙폭을 되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반도체 대장주인 SK하이닉스는 전날 종가와 동일한 174만5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주가가 파업 리스크로 인해 경쟁사 대비 눌려 있었던 점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파업 이슈를 제외하면 업황 펀더멘털은 견고하게 공급자 우위 시장을 지지하고 있다"며 "파업 리스크로 경쟁사 대비 주가가 눌려 있는 점을 고려하면 리스크가 해소될 때 주가의 상승 탄력은 오히려 경쟁사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날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37만원에서 57만원으로,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는 기존 205만원에서 380만원으로 상향했다. 다만 일각에선 사측과 노조, 주주단체 등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보인 모습들에 비춰볼 때 잠정합의 타결에도 불구, 상당한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과급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과다해 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이나 신규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깊어진 노사 갈등의 골이 단기간에 회복될 걸로 보이지 않는데다 직원들 사기도 저하되고, 빠져나가는 인재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소액주주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번 합의의 핵심인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제도'의 위법성을 주장하는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주주총회 없이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합의는 상법상 무효라는 주장이다.
앞서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자 보상 재원과 산정 방식은 회사 재무 건전성과 모든 주주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합리적 틀 안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일률 지급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필요한 모든 적법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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