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교통사고 이후 많은 환자가 "몸은 괜찮은데 이상하게 불안하다"거나 "자꾸 긴장되고 잠이 안 온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가볍거나 이미 호전되었음에도 심리적 불편감이 지속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단순한 트라우마나 예민해진 성격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이 불안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채 상호작용하며 나타나는 정당한 생리적 반응이다.
한의학에서 인체는 기혈(氣血)의 흐름과 장부의 조화로 이루어진 유기적 시스템이다. 교통사고라는 급격한 충격은 근육이나 인대만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순환 체계 자체를 순간적으로 뒤흔든다. 특히 갑작스러운 공포와 충격은 정신 활동을 주관하는 심(心)과 기의 흐름 및 긴장 조절을 담당하는 간(肝)의 기능을 교란시킨다. 사고의 물리적 위험은 이미 지나갔지만 신체 내부 시스템은 여전히 ‘비상 긴장 상태’를 해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유 없는 불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현대 의학적으로 이러한 상태는 자율신경계 불균형, 특히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된 상태로 설명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어혈(瘀血)과 긴밀하게 연결한다. 어혈은 단순히 고여 있는 피를 넘어 기혈 순환의 전반적인 장애를 의미한다. 이러한 순환 장애는 신체 감각을 왜곡하고 신경계의 안정성을 해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조용한 상황에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신체 내부에 회복되지 않은 물리적 긴장과 순환 정체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를 심신불교(心身不交) 또는 기혈불화(氣血不和)라 부른다. 몸과 마음의 정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엇박자 상태다. 의식은 "이제 안전하다"고 인지하지만, 몸은 여전히 ‘방어 모드’에 머물러 있는 불일치가 불안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여기에 수면 장애까지 동반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잠은 신경계가 안정되고 기혈이 회복되는 핵심 과정인데, 이 흐름이 끊기면 낮의 피로와 밤의 각성이 반복되며 자율신경의 리듬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사고 후의 불안을 단순히 ‘정신력이 약해진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불안은 결과가 아니라 현재 몸의 회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사고 이후의 불안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며, 특정 자극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몸이 여전히 해당 상황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적극적인 회복 과정이 필요하다.
치료의 핵심은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긴장을 먼저 풀어주는 데 있다. 침 치료는 날 서 있는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경락의 흐름을 조절하여 과도한 각성 상태를 완화한다. 한약 치료는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고 기혈 순환을 개선하여 내부의 물리적 긴장을 직접적으로 낮춘다. 몸이 먼저 안정을 되찾으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평온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교통사고 후 불안은 당신의 의지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아직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는 간절한 신호다.

[프로필] 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現) 대한고금의학회장
•前) 대전한의사회부회장
•前) 대전대 한의예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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