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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9 (화)

[이대복의 세계경제 Story] 초대 조선해관 총세무사 묄렌도르프⓷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묄렌도르프의 조선 해관은 세금·무역 관리를 체계화하는 등 조선 근대화의 출발점이었지만, 동시에 조선이 강대국들 경쟁의 무대에 홀로 서서 자국 이익을 우선에 둔 경쟁적인 열강들 속에서 자립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조선을 “속국”처럼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청나라, 임오군란 이후 근대화된 군사력으로 압박하여 조선을 자국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 한 일본, 일본을 견제하고 부동항 확보를 위하여 남하 정책으로 조선에 접근한 러시아, 통상 확대와 이권 확보에 혈안이 된 미국·영국 등, 열강의 자국 이익 각축과 격동의 시대에 조선 정부는 자국을 둘러싼 이러한 열강 구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한 치의 오차나 허술함이 없는 판단력과 행동을 보여 주어야만 했었다.

 

묄렌도르프는 중국이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며,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중국·일본·러시아의 삼각 균형 구도에서 러시아가 효과적인 견제 세력으로 필요하고, 조선이 우선, 열강들과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부인 로잘리가 쓴 묄렌도르프의 자서전에 의하면 1884년 12월 일어난 갑신정변 10일 후부터, 묄렌도르프는 국방 문제에 대하여도 고종의 고문 역할을 한 것 같다.

 

1885년 2월, 고종은 묄렌도르프를 사절단과 함께 일본으로 파견했다. 사절단은 조선 정부를 대표하여 쿠데타 시도 이후 일본 국민과 일본 공관에 입힌 피해에 대해 사과했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묄렌도르프는 조선 국왕을 대신하여 러시아 외교관들과 비밀리에 만나 조선과 러시아의 동맹 가능성을 논의했다. 청국의 추천으로 파견된 본분을 잊고 청국을 배반한 셈이었다.

 

6월 초 중국, 일본, 조선의 외교가에 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특히 러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위대한 게임(The Great Game)으로 충돌하던 영국은 묄렌도르프를 몰아내려 했다.

 

그는 영국이 4월에 불법적으로 점령한 섬 거문도를 둘러싼 분쟁에서 한국의 수석 협상가였으며, 영국 외교관들의 규칙을 꿰뚫어 보고 조선의 이익을 끈질기게 옹호했기에 영국 외교관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거문도 점령은 원래 묄렌도르프가 러시아에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1885년 4월 24일 중국 정부의 서신을 통해 섬 점령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885년 5월 4일, 리홍장은 조선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 국경 분쟁으로 러시아와 전쟁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었고, 러시아의 동아시아 남진 확장을 저지하려 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항에 군함을 집결시켰다.

 

홍콩 공격을 우려한 영국은 거문도를 함대 기지로 삼으려 했다. 묄렌도르프는 그의 일기에서, “따라서 조선 정부는 상황을 고려하여 영국이 거문도를 일시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영국이 거문도를 장기적으로 사용하거나 매입 또는 임대하려 한다면 조선 정부는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홍장은 조선 정부가 영국에 장기 사용권을 부여할 경우 일본과 러시아 또한 조선의 섬들을 점령하려 들 것이라고 경고하며, 정루창 제독을 조선에 보내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묄렌도르프는 영국과의 거문도 점령 문제로 일본을 다녀오는 등 외교적으로 활약하였으며, 서양 각국과의 외교 통상교섭과 해관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였다.

 

조·독, 조·영, 조·러 등의 조약 체결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조·러에 있어서는 그의 적극적 추진이 거의 주동 역할을 했다.

 

조선이 대외교섭에 지식과 경험을 못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또 그는 동양 각국어와 역사에 대한 깊은 학식도 가졌기 때문에, 그의 경험과 어학력은 그로 하여금 종횡무진의 활약을 하게 했고 일본으로 사행도 여러 번 갔다.

 

조선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관계, 특히 중국 일본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의 세력 갈등이 묄렌도르프의 활동 속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으며, 조선 외교에 중요역할을 했던 그에게 가지가지의 요구와 기대와 음모와 비판이 각국으로부터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일본과 조일 통상 장정과 해관 세칙을 협상하는 과정에서는 (*조선의 일본에 대한 관세 부과권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유리한 결정도 내렸는데, 일본에 관세 설정 협상에서 상당한 경제적 특권을 부여하고, 소규모 차관 도입 대가로 관세 징수권을 일본 측에 부여하였다.

 

영국과 맺은 조·영 조약의 경우 조·미 조약보다 훨씬 불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치외법권이 크게 강화되었고 조·미조약에서 금지한 국내 영업의 허용, 영국 군함의 조선 항구 출입 허용 등과 무엇보다도 관세율이 조·미조약의 절반 정도 낮게 책정되어 최혜국 조관에 따라 미국, 독일, 러시아 등에 균점되었다.

 

묄렌도르프가 조선의 자주를 위해 힘썼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와 같이 비판받고 있는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개화파 김옥균과는 당오전 발행과 일본 국채 도입을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을 보였다. 미국 공사 푸트는 조·일 관세 협정을 두고 “일본 공사 다케조에의 맥주 한 잔에 취해 이권을 넘겼다”라고 비난하며 그가 ‘조선 왕이나 조선 정부’처럼 행동한다고 불평했다.

 

또한 묄렌도르프는 조선의 근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국인 독일계 기업인 세창양행에 각종 이권과 혜택을 주기도 했다.

 

특히 그가 고용한 외국인 해관원 총 32명 중 10명이 독일인이었고 전환국(*조폐공사)과 다른 분야에서도 독일인들이 눈에 띄게 많이 진출했다.

 

미국 공사 서리 포크도 그가 모국인 독일을 위해 일한다고 했다. 윤치호는 그의 일기 곳곳에서 그를 공뇌(빈머리), 잡인이라고까지 혐오했으며 개화파 홍형식이나 김옥균 등도 묄렌도르프의 정책을 비난하였다.

 

또한 여러 개혁 사업과 조·러 비밀 협정 추진 과정에서 독단적인 일 처리로 김윤식 등 조정 대신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묄렌도르프는 1885년 여름 사방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결국 고종은 1885년 7월 27일(음력 6월 16일) 묄렌도르프를 외무대신 직에서 해임할 수밖에 없었다.

 

묄렌도르프는 해관 총세무사 직은 유지했지만, 중국과 일본의 압력이 너무 거세지자, 국왕은 1885년 10월 17일(음력으로는 9월 10일)에 그를 이 직책에서도 해임할 수밖에 없었다. 음력 10월에는 전환국 총판직에서도 해임되었다.

 

그의 부인 로잘리는 국왕 부부가 묄렌도르프가 한국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를 설득하여 자신들 곁에 머물도록 하려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홍장의 압력이 너무 심했기에 묄렌도르프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겨우 3년간의 활동으로 자리를 내놓고, 1885년 12월 중국으로 떠났다.

 

이홍장은 묄렌도르프를 천진으로 소환하고, 그 자리(*외교 고문)에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미국인 데니(O.N. Denny)를 보냈다.

 

그의 후임으로 조선에 온 데니가 청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부인하는 청한론(China And Korea)이란 글을 쓰자, 1887년 묄렌도르프는 이를 반박하는 반청한론(데니씨의 청한론에 대한 답변)이란 글로 조선이 청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프로필 ] 이대복 한국세관역사연구회 회장

• 경영학 박사

• 2021.1. 15 ∼ 관세법판례연구회 고문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 본부세관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 로펌(Sandler, Travis &Rosenberg, P.A.) 고문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세계관세기구(WCO) 사무총장상 수상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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