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을 앞두고 국내 증시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로봇과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이른바 피지컬 인공지능(AI)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LG그룹주와 네이버, 두산로보틱스 등 엔비디아와의 접점이 거론된 종목들이 급등했고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그러나 이번 랠리를 단순히 ‘로봇주 장세’로만 보는 것은 절반의 해석에 그친다. 피지컬 AI가 주가를 먼저 움직였지만, 실적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축은 메모리와 인프라다. 로봇과 자율주행이 AI 확산의 얼굴이라면, 이를 실제 투자와 수주로 떠받치는 것은 HBM과 고용량 D램, 전력·냉각·네트워크·데이터센터 인프라다. 젠슨 황 방한 랠리의 핵심을 로봇주 급등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12.23포인트(3.68%) 오른 8788.38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다. 코스피는 8485.67에 개장한 뒤 장중 8874.16까지 올랐고, 급등세 속에 코스피200선물 가격 급등에 따른 매수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상승세는 엔비디아와의 협력 기대가 부각된 종목에 집중됐다. LG전자는 젠슨 황이 방한 기간 중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만나 피지컬AI와 로봇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소식에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날 LG CNS는 26.27%, LG이노텍은 10.97%, LG는 21.01% 올랐다. 네이버도 전일 대비 16.03% 오른 27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두산로보틱스 역시 상한가를 기록했다.
시장 반응만 놓고 보면 젠슨 황 방한의 최대 수혜 업종은 로봇처럼 보인다. 엔비디아가 최근 로보틱스,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가 관련주 전반으로 확산된 영향이다. 피지컬 AI는 AI가 데이터센터 안의 연산 기술에 머물지 않고 로봇, 자동차, 공장, 물류 설비처럼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 영역이다.
LG그룹은 가전과 로봇, 전장, 기업용 AI 전환 사업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LG전자의 로봇·AI 가전, LG이노텍의 센싱·부품, LG CNS의 기업용 AI 전환 사업은 엔비디아의 피지컬AI 전략과 맞닿아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와 클라우드, 소버린AI, AI 데이터센터를 앞세워 엔비디아 생태계와의 접점을 넓힐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스마트팩토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한 로봇 사업이 모두 피지컬AI와 연결된다.
두산그룹도 로봇 분야에서 엔비디아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젠슨 황의 딸이자 엔비디아 글로벌 프로덕트 마케팅 매니저인 매디슨 황이 경기 성남시 두산타워를 찾아 김민표 두산로보틱스 대표 등 경영진과 회동하고 피지컬AI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자체 개발 중인 에이전틱 로봇 OS(Agentic Robot O/S)와 엔비디아의 AI·로보틱스 시뮬레이션 및 학습 인프라를 연계하는 협력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로봇과 피지컬AI 기대감이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로봇 플랫폼 도입과 공동 개발 논의는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있으나, 실제 매출로 연결되기까지는 양산성 확보, 고객 확보, 반복 판매 구조가 필요하다. 협력 가능성만으로 오른 종목일수록 회동 이후 차익실현과 기대 조정에 노출될 수 있다.
◇ 피지컬 AI 확산, 본류는 로봇보다 인프라
증권가는 젠슨 황과의 회동 여부보다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각 기업이 어떤 역할을 맡고, 그 역할이 얼마나 반복적인 매출로 연결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1일 ‘Doo It Now’ 보고서에서 “젠슨 황 이벤트는 사되 사진이 아니라 주문서를 사야 한다”며 “시장은 이벤트를 좋아하지만 추세는 이벤트가 아니라 주문서가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1차 깐부회동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전기, 삼성SDS, 현대차, 로봇 관련주가 차례로 움직였다”면서 “시장이 산 것은 치맥 사진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고객이자 공급자,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짚었다.
나아가 하나증권은 이번 2차 회동을 1차 때보다 확장된 이벤트로 해석했다. 1차 회동이 AI 팩토리와 반도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피지컬 AI와 플랫폼으로 무게중심이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누가 젠슨 황을 만나는지가 아니라, 누가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반복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양해각서(MOU), 공동 개발, GPU 구매, 데이터센터 구축, 로봇 플랫폼 도입, 스마트팩토리 확산은 추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나증권은 AI 수혜가 전력기기, 변압기, 전력망, 냉각, 광통신, 네트워크, 서버, 로봇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수혜주가 넓어지는 흐름과 실제 돈이 몰리는 지점은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투자가 커질수록 가장 먼저 수요가 붙고 가격이 오르는 쪽은 메모리라는 설명이다.
결국 피지컬AI가 확산될수록 필요한 것은 로봇 완성품만이 아니다. 로봇이 학습하고, 판단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연산 인프라와 데이터 이동, 메모리 대역폭,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발열 관리가 필요하다. AI가 공장과 자동차, 로봇으로 옮겨갈수록 이를 받쳐줄 인프라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 주가는 로봇이 띄웠지만, 실적 변수는 메모리
NH투자증권도 같은 방향의 분석을 내놨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반도체 업종 보고서’에서 AI 투자 단계에서 병목으로 지목되는 핵심 요소가 메모리라고 봤다. 이 보고서에서 NH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각각 310만원, 49만원으로 제시하고 반도체 업종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류 연구원은 AI 투자가 학습 중심의 1단계를 지나 추론과 에이전틱AI로 확산되는 구간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HBM뿐 아니라 서버 D램, LPDDR, 기업용 SSD 등 메모리 전반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류 연구원은 “AI 추론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메모리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제한된 공간으로 투자 확대에도 공급 부족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메모리 산업은 선주문 후판매의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했으며, 메모리가 AI 기술 발전의 병목이 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NH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에 대해 2026년 매출액 333조6000억원, 영업이익 261조원을 예상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2026년 매출액 684조2000억원, 영업이익 345조원을 전망했다. 이는 이번 랠리가 로봇주에서만 끝나지 않는 이유다. 피지컬AI가 로봇과 자동차, 공장으로 확산될수록 더 많은 AI 서버와 메모리가 필요해지고,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공급망 지위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전망은 젠슨 황 방한 랠리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장에서는 로봇주와 플랫폼주가 먼저 반응했지만, AI 인프라 투자의 병목이 메모리에 있다면 중기 주도권은 HBM과 고용량 D램 공급 능력을 가진 기업으로 다시 이동할 수 있다.
◇ HBM 쏠림에 D램까지 부족…커지는 메모리 몸값
대신증권도 올해 메모리 시장의 확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대신증권은 지난 1월 2일 발간한 ‘2026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85% 성장한 402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D램은 전년 대비 101%, 낸드는 58% 성장할 것으로 봤다.
대신증권은 AI 수요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봤다. 지난 2년간 업체들이 증설에 신중했던 데다, HBM 생산이 늘수록 일반 D램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HBM은 일반 D램보다 더 많은 웨이퍼와 공정 시간이 필요해 같은 생산라인 안에서도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한다. 결국 AI 수요가 HBM에 몰릴수록 서버용 D램과 고용량 메모리 시장에서도 공급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HBM뿐 아니라 서버용 D램과 고용량 메모리 가격도 쉽게 내려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메리츠증권도 올해 반도체 전망에서 AI 수요 흡수와 메모리 공급 여력 제한을 주요 변수로 제시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2026 Outlook #18 반도체·디스플레이·IT소재장비’ 보고서에서 2026년 SK하이닉스 M15X와 삼성전자 P4 일부 가동이 예정돼 있지만, AI 수요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공급 부담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봤다. 고성능 메모리 수요 확대는 전공정뿐 아니라 후공정 장비, 패키징, 소재 밸류체인 전반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고객인가 공급자인가…시장 평가의 새 기준
이번 젠슨 황 방한은 국내 기업들이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지를 보여주는 이벤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취재진에 “지난해 회동이 엔비디아와 국내 반도체 기업 간 협력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AI가 로봇·자동차·데이터센터·플랫폼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어떤 기업이 실제 매출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라며 “시장은 단순히 누가 참석했는지보다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공급망이나 고객 기반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GPU 공급사를 넘어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로봇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사업자로 자리 잡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일회성 협력 발표보다 향후 데이터센터 투자, HBM 공급, 로봇·자율주행 플랫폼 연계가 얼마나 구체적인 수주와 실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젠슨 황 CEO가 누구를 만나는지에서, 어떤 기업이 돈을 벌 구조를 갖췄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로봇과 피지컬 AI가 전면에 등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전력·냉각·네트워크 인프라다. 이번 방한 이후에는 한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고객·공급자·파트너 중 어떤 위치에 서는지가 시장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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