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은행권의 성장 공식을 흔들고 있다. 그동안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외형을 키워왔다. 집값 상승기에는 주담대가 잔액을 끌어올렸고, 증시가 강할 때는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이 빠르게 늘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강도를 높이면서 이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가계대출 총량이 묶이면서 은행권의 고민도 달라졌다. 단순히 대출 한도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줄어든 가계대출 성장 여력을 어디에서 보완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당국도 부동산·가계대출에 집중됐던 자금 흐름을 기업과 지역, 중저신용자 금융으로 돌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방은행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지방은행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창구로 부각됐다. 그러나 지방은행을 단순히 대출 우회 창구로만 보기는 어렵다. 수요가 몰릴 경우 곧바로 당국의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지방은행들도 기업금융과 중저신용자 금융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공동대출 확대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 가계대출 총량 묶이자 기존 공식 ‘흔들’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로 잡았다. 지난해(1.7%)보다 낮은 수준이다. 중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관리 방식도 더 촘촘해졌다. 금융회사별 월별·분기별 목표가 적용되면서 은행들은 연말에 한꺼번에 대출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상반기부터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대출을 늘리고 싶어도 연간 목표를 초과하면 다음 해 목표 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관리 기조 속에서 5월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커진 점은 은행권의 부담을 키웠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5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9조3000억원 증가했다. 4월 증가액 3조5000억원보다 증가폭이 5조8000억원 확대됐다. 주택담보대출은 4조원 늘어 전월 5조5000억원보다 증가폭이 줄었지만, 기타대출이 5조3000억원 증가하며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신용대출도 4월 9000억원 감소에서 5월 3조4000억원 증가로 전환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한도대출 증가가 두드러졌다. 은행권 기타대출은 4월 6000억원 감소에서 5월 3조7000억원 증가로 돌아섰다. 이 가운데 신용대출은 4월 9000억원 줄었다가 5월 3조4000억원 늘었고, 마이너스통장 등 한도대출 증가액도 2조6000억원에 달했다.
기타대출 증가에는 증시 호조에 따른 투자자금 수요와 마이너스통장 사용 확대, 가정의 달 자금 수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신용대출이 한 달 만에 큰 폭으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금융당국도 관리 강도를 높였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지난 11일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은행권에 선제적인 자율관리를 주문했다.
5대 시중은행은 이미 신용대출 관리 부담이 커진 상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양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지난 5월까지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관리 목표를 모두 넘어섰다.
KB국민은행은 올해 기타대출을 1조3264억원까지 늘릴 수 있는데, 5월까지 6287억원을 이미 소진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242억원, 364억원을 줄여야 했지만 실제로는 1696억원, 1725억원씩 늘었다. 우리은행은 5월까지 증가 목표가 1216억원이었으나 실제 증가액은 5632억원으로 목표의 4.6배 수준이었다. NH농협은행은 6243억원 감축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감축액은 3757억원에 그쳤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줄이고 있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MCI·MCG 가입 제한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약 5000만원 낮췄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신용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줄였고, 신한은행은 마이너스통장 만기 연장 때 한도를 최대 20% 감액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인터넷전문은행도 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는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였고, 케이뱅크는 신규 마이너스통장 판매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개인신용대출을 앞세워 성장해 온 인터넷은행도 가계대출 총량규제 속에서 대출 속도를 늦추는 모습이다.
◇ 지방은행, 여유 있지만 반사이익 기대 어려워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지방은행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창구로 떠올랐다. 부산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 iM뱅크 등 주요 지방 거점은행은 아직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취급을 일제히 중단하거나 한도를 크게 낮추지 않고 있다.
이는 은행별 총량 목표 차이와 관련이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는 0.59~0.71%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방 거점은행들은 평균 4% 안팎의 목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은행은 시중은행보다 가계대출 잔액이 작아 같은 증가율을 적용해도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이 점이 지방은행에 상대적으로 높은 증가율 목표가 부여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실제 5개 지방 거점은행의 올해 1분기 말 가계대출 잔액은 74조3844억원이다. 지난해 말 72조6953억원보다 1.9% 늘었다. 5개 지방은행 전체 잔액을 합쳐도 KB국민은행 한 곳의 가계대출 잔액인 154조원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대출 수요가 지방은행으로 옮겨붙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한도에 여유가 있더라도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 당국의 관리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최근 카카오뱅크와 지방은행, 상호금융 등을 불러 가계대출 증가 현황을 점검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일부 지방은행은 이미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BNK경남은행은 외부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신용대출 신규 취급과 대환대출을 중단했다. 지방은행 신용대출 신규 취급에서 외부 플랫폼 비중이 큰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 채널을 막는 것만으로도 증가 속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BNK금융 계열인 부산은행도 외부 플랫폼을 통한 신용대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취재진에 “가계대출 증가세를 월별 목표에 맞춰 관리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별도의 한도 축소나 취급 중단 조치를 시행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방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지방은행도 남은 한도만 보고 영업을 확대하기는 어렵다”며 “수요가 몰리면 곧바로 관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증가 속도를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가계대출보다 지역 기업, 개인사업자, 중저신용자 금융에서 성장 여력을 찾는 흐름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은행의 가계대출 여력이 곧바로 성장 여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막힌 수요가 옮겨오면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고, 당국의 생산적 금융 강화 기조 속에서 기업금융과 중저신용자 금융으로 자금 공급 방향을 넓혀야 하는 과제도 커지고 있다.
◇ 은행권 경쟁축, 가계대출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은행권의 성장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더 낮은 금리와 더 큰 한도를 앞세워 가계대출을 늘리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총량규제가 강화된 지금은 가계대출 의존도를 낮추고, 기업금융·중저신용자 금융 등으로 성장 축을 넓히는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의 공동대출 확대는 은행권 성장 전략 변화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은행은 비대면 플랫폼과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에 강점이 있지만, 지역 기업금융과 대면 심사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반대로 지방은행은 지역 기업과 개인사업자 영업 기반을 갖고 있지만, 전국 단위 비대면 고객 접점은 약하다.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강화될수록 양측이 공동대출을 통해 개인사업자·중소기업·중저신용자 금융으로 영역을 넓힐 유인이 커진다.
향후 시중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면서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비이자이익 확대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은행은 개인신용대출 의존도를 낮추고 개인사업자, 중소기업, 중저신용자 시장에서 새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 지방은행은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관리하는 동시에 개인사업자, 중소기업 대출 등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를 넓혀야 한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중심의 성장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은행권은 개인사업자·중소기업 대출, 중저신용자 금융, 공동대출 등으로 여신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집중된 자금 흐름을 생산적 금융으로 돌리려는 당국의 기조와도 맞물린다.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은행권의 성장 공식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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