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전 관세청장) 얼마 전 평일 낮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칸에 앉아 있는 승객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분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반면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체감으로는 20%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젊은 학생들과 직장인이 대부분이었고 어르신들은 드물게 보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비율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학 시절 인류학 수업에서 흥미로운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사회의 모습을 관찰하고 느낀 점을 적어 오라." 처음에는 무엇을 관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매일 이용하던 지하철 2호선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대화, 출퇴근 풍경을 메모하다 보니 사회는 거창한 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도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먼저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식당을 가도, 공원을 걸어도, 대형마트를 둘러보아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평일 낮에는 물론이고 주말에도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우리는 흔히 고령화를 뉴스 속 숫자로 접하지만, 실제로는 거리의 풍경이 가장 먼저 그 변화를 알려 준다.
가끔 강아지와 함께 탄천을 산책한다. 멀리서 보면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기가 아니라 강아지가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오히려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보는 일이 드물다. 체감으로는 백 대 가운데 한 대 정도일까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산책을 하며 느끼는 개인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그 풍경은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반려동물은 이제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다. '반려견'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 집 막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는 따뜻한 문화의 한 모습이다. 다만 반려동물이 아이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어 간다면 한 번쯤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낳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외동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대답은 교육비 부담이다. 사교육비는 물론이고, 대학 등록금과 주거비까지 생각하면 둘째를 계획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우리나라의 양육 문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면 자연스럽게 독립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할 때는 집 마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도 크다. 결혼 후에는 손주를 돌보는 일까지 조부모의 몫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의 역할이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다음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만든다.
대럴 브리커와 존 이빗슨은 『텅 빈 지구』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변화는 인구 증가가 아니라 인구 감소라고 말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경제와 노동시장, 소비, 국가의 경쟁력까지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그 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또한 『호모 헌드레드』는 평균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는 시대에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령화는 반드시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의학의 발전과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더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장수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돌봐야 할 노인은 늘어나고, 연금과 의료비 부담은 커진다. 결국 고령화 자체보다 준비 부족이 더 큰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특별한 비법은 없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주거 부담을 덜어 주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며, 과도한 사교육 경쟁을 완화하고, 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업은 육아휴직과 유연근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국가는 보육과 교육의 부담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동시에 노년층에게도 더 오래 일하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을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회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도 필요하다.
인류학 수업에서 배웠던 것처럼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창한 통계보다 일상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도 지하철 한 칸, 식당 한편, 탄천 산책길의 유모차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말없이 보여 준다. 풍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령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며,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는 구호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기쁨이 되고, 나이 들어가는 삶 또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젊은 세대는 미래를 꿈꾸고, 노년 세대는 경험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세대의 단절이 아니라 세대의 조화를 보여 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제34대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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