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은행을 통해 상장지수펀드(ETF) 신탁으로 이동한 50·60대 자금이 금융소비자 보호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올해 1분기에만 두 연령대가 매수한 ETF 신탁이 18조원에 육박했고, 상반기 은행 신탁 판매액의 98%가 위험등급 1·2등급에 집중됐다.
문제는 단기 거래가 대부분인데도 가입 단계에서 수수료를 먼저 떼는 방식이 압도적으로 적용됐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평균 보유기간은 42일에 불과했지만 계약의 91.7%가 선취수수료 방식으로 체결됐다.
금융감독원은 고객의 투자기간에 맞는 수수료 방식을 적용했다면 545억원 수준이었을 비용이 실제로는 3948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은행이 고객에게 유리한 수수료 구조를 제대로 안내했는지, 고위험 상품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지켰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감원은 오는 10일부터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현장검사에 착수한다. 수수료 체계와 목표수익률 설정, 고령층 대상 상품 권유, 내부통제 전반이 점검 대상이다.
◇ 1분기 매수액 80%가 50·60대
은행 ETF 신탁의 판매액은 올해 들어 급격히 불어났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올해 상반기 판매한 ETF 신탁은 63조54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조2149억원과 비교하면 12배가 넘는다.
특히 주가 상승세가 가팔랐던 5월과 6월 판매액은 각각 15조3114억원과 14조1395억원에 달했다. 두 달간 판매된 금액만 총 29조4509억원으로 상반기 전체 판매액의 절반에 육박한다.
신탁 판매 증가세를 이끈 것은 50·60대였다.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대 은행의 ETF 신탁 판매액 22조4803억원 가운데 50대 매수액은 6조1736억원, 60대는 11조8167억원이었다. 두 연령대의 매수액은 총 17조9903억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60대가 매수한 금액만 전체 판매액의 52.6%에 달한다.
다만 이 수치는 해당 기간 체결된 계약을 합산한 판매액이다. 고객이 ETF를 매도한 뒤 다른 상품에 재가입했다면 같은 자금이 여러 차례 포함될 수 있어 현재 투자잔액과는 구분해야 한다.
◇ 은행 판매 ETF 98%가 고위험 상품
중장년층의 자금이 유입되는 동안 은행이 판매한 ETF의 고위험 상품 쏠림도 심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이 판매한 ETF 가운데 투자위험등급 1등급인 상품의 비중은 평균 57%였다. 1등급과 2등급을 합친 비중은 2024년 76%에서 지난해 87%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 98%까지 높아졌다. 은행을 통해 판매된 ETF 신탁의 대부분이 ‘매우 높은 위험’ 또는 ‘높은 위험’ 등급으로 분류됐다는 의미다.
이는 주식시장 상승을 주도했던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테마형 ETF에 수요가 집중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들 상품은 일반적인 시장지수형 ETF보다 편입 종목과 업종이 제한돼 특정 종목의 주가가 흔들릴 경우 손실 폭이 커질 수 있다.
다만 위험등급이 높은 ETF를 판매한 사실만으로 불완전판매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상품 구조와 손실 가능성을 이해했고 투자 경험과 재산 상황, 위험 감수 능력에 맞춰 가입했다면 고위험 상품도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도가 높을수록 은행이 부담해야 할 판매 절차와 설명 책임도 무거워진다. 은행은 위험등급 1~3등급 비예금상품을 판매하기 전 내부 비예금상품위원회에서 판매 적정성을 심의해야 한다. 실제 판매 과정에서도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인지 확인하고 원금 손실 가능성과 가격 변동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 42일 보유하는데 수수료 가입 때 선납
금감원이 이번 현장검사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항목 가운데 하나는 고객의 투자기간에 비춰 수수료 부과 방식이 적정했는지다.
금감원이 KB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NH농협 등 6개 은행의 ETF 신탁 거래를 분석한 결과 투자자의 평균 보유기간은 42일에 그쳤다. 전체 매도 거래의 94.6%가 가입 후 6개월 이내에 이뤄졌고, 10일 안에 매도된 거래도 37.9%를 차지했다.
반면 가입과 동시에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떼는 선취 방식의 적용 비중은 91.7%에 달했다. 가입 후 10일 안에 해지한 고객의 98%, 1개월 안에 해지한 고객의 96.4%에도 선취수수료가 적용됐다.
선취 방식은 ETF 신탁에 가입할 때 투자금의 약 1%를 한꺼번에 내는 구조다. 5000만원을 투자하면서 선취수수료율 1%를 적용받으면 실제 ETF 매입에 투입되는 금액은 수수료 50만원을 뺀 4950만원이다.
반대로 후취수수료는 실제 보유기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해 계약을 종료할 때 낸다. 짧게 투자하고 매도하는 고객에게는 일반적으로 후취 방식이 유리하지만, 실제 판매에서는 단기 투자자 대부분이 선취 방식을 선택했다.
금감원은 분석 대상 거래에 투자기간에 맞는 수수료 방식을 적용했다면 은행이 받을 수수료가 545억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실제 수취한 수수료는 3948억원으로 추정 적정액의 7.2배에 달했다. 이는 금감원이 6개 은행의 특정 기간 거래를 분석한 수치로, 5대 은행의 상반기 전체 수수료 수입(5488억원)과는 조사 대상과 산정 기간이 다르다.
ETF 신탁의 목표수익률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계약이 많았다는 점도 수수료 부담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목표수익률이 5% 이하인 계좌는 58.1%, 3% 이하인 계좌도 20.8%였다.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ETF를 자동으로 매도하도록 계약한 경우 주가 상승기에 매도와 재가입이 반복될 수 있다. 이때 계약을 새로 맺을 때마다 선취수수료가 부과되면 거래 횟수가 늘수록 수수료 부담이 커질 수 있다.
◇ 고위험 상품 팔수록 커지는 수수료
5대 은행이 올해 상반기 ETF 신탁 판매로 거둔 수수료 수입은 548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수수료 수입 1814억원의 세 배를 넘어선 규모다.
일부 은행은 투자위험등급이 높은 ETF에 더 높은 선취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비대면 가입을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은 위험등급 1·2등급 상품에 0.7%, 4등급 상품에 0.5%의 선취수수료를 부과한다. 신한은행은 각각 0.8%와 0.5%, 하나은행은 0.8%와 0.3%를 적용하고 있다.
고위험 상품의 판매 비중과 거래 횟수가 늘어날수록 은행의 수수료 수입도 함께 확대될 수 있는 구조다.
고객의 손실 현황은 별도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상반기 판매액 63조546억원은 매도와 재가입을 합산한 누적 거래액으로, 현재 투자잔액과는 다르다. 고객이 실제 보유 중인 상품과 평균 매입가격, 평가손익을 확인해야 증시 급락에 따른 위험 노출을 가늠할 수 있다.
판매된 ETF의 유형도 함께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내 지수형과 반도체 등 테마형, 해외주식형, 채권형은 가격 흐름과 손실 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증시 상승세가 가팔랐던 5~6월 국내 주식형 ETF를 매수한 뒤 보유 중인 50·60대 고객의 잔액과 손익을 별도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퇴직연금 포함 규모는 확인 불가
50·60대 매수 자금 가운데 퇴직연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도 현재 자료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ETF 투자액은 48조7000억원이었다. 신한·하나·KB국민·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퇴직연금 ETF 잔액도 2024년 말 3조2994억원에서 지난해 말 10조7363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ETF 투자 비중이 빠르게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 수치만으로 올해 1분기 50·60대 ETF 신탁 매수액 17조9903억원 중 퇴직연금의 비중을 계산할 수는 없다. 일반 특정금전신탁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 개인형퇴직연금(IRP)의 판매액과 잔액이 구분돼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의 일반 여유자금과 노후생활의 기반인 퇴직연금이 각각 어떤 상품에 투자됐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금감원 검사가 개별 계약의 설명의무 준수 여부를 넘어 계좌 유형별 자금 흐름과 위험 노출까지 점검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배경이다.
◇ 은행권은 ‘고객 선택’ 강조…판매 과정이 쟁점
금감원은 오는 10일부터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을 대상으로 ETF 신탁 현장검사에 착수한다. 신한·하나·SC제일은행도 이달 중 순차적으로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검사에서는 수수료 방식과 목표수익률이 고객의 투자기간과 거래 목적에 맞게 설정됐는지, 은행이 신탁 거래의 비용과 주문 체결 방식 등을 충분히 설명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입 서류상 고객이 직접 선택한 것으로 기재됐더라도 실제 상담에서 직원이 특정 상품이나 거래 조건을 사실상 제안했는지도 확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권은 ETF 신탁이 고객의 운용 지시에 따라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선취·후취수수료 역시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만큼 특정 방식을 일괄 제한하기보다 판매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는지를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본지에 “ETF 신탁은 은행이 임의로 종목을 골라 운용하는 상품이 아니라 고객이 투자 대상과 매매 시점 등을 지정하고 은행이 주문을 집행하는 구조”라며 “상품 선택에 따른 손익과 수수료 부담을 모두 판매사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취와 후취 방식은 예상 보유기간과 거래 횟수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며 “고객이 비용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 절차를 보완하되 투자 목적에 맞는 선택권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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