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정부가 또 새로운 주택 공급 숫자를 꺼냈다. 수도권 23만호+α다.
신규 공공택지를 발굴하고 도심 유휴부지와 정비사업, 민간 공급까지 가능한 수단을 끌어모으겠다는 계획이다.
공급을 늘리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수도권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몇 년 뒤 또다시 공급절벽을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 대책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새로운 공급계획부터 봐야 하는가.
2018년 발표된 3기 신도시는 아직 진행형이다. 정부 자료를 보더라도 후보지 발표부터 주택 착공까지 평균 68개월이 걸렸다. 최초 입주단지인 인천계양은 후보지 발표부터 입주까지 약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한다. 정부는 앞으로 발표할 신규 공공택지의 착공기간을 최단 37개월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37개월이라는 목표에도 관련 법 개정 등 전제조건이 붙는다.
더 중요한 것은 37개월 뒤에도 집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 비로소 착공이다.
그렇다면 지금 집을 기다리는 무주택자에게 어느 쪽이 더 절실할까.
새로운 택지를 찾아 몇 년 뒤 첫 삽을 뜨겠다는 약속일까. 아니면 이미 지구지정과 보상, 착공과 분양 절차를 밟고 있는 3기 신도시와 기존 공공택지를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내놓는 것일까.
답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됐다. 서리풀 등 추가 택지는 이전 정부에서 발표됐다. 하지만 집을 기다리는 국민에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무주택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재인표 주택'도, '윤석열표 주택'도, '이재명표 주택'도 아니다. 그냥 집이다.
언제 청약할 수 있는지, 분양가는 얼마인지, 언제 입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통령 이름이 바뀐다고 아파트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전 정부가 지정한 택지라고 공급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취재 과정에서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어느 정부에서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당장 분양받고 기다릴 수 있는 물량을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기존 사업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이번 대책에는 3기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기존 공공택지 8만9000호의 착공을 최대 1~2년 앞당기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래서 오히려 묻고 싶다.
왜 이런 물량이 공급정책의 전면에 서지 못하는가.
이미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물량을 얼마나 당길 것인지, 3기 신도시에서 어디를 언제 분양할 것인지, 국민이 실제 열쇠를 받아드는 시점을 얼마나 앞당길 것인지가 지금 시장에는 더 구체적인 공급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선은 새로운 숫자로 향한다. 새로운 택지를 찾고, 새로운 공급 목표를 만들고, 새로운 정책 이름을 붙인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현 정부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역대 정부에서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공급대책이 등장했고, 그때마다 수십만호라는 숫자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문제는 정권의 시간과 주택 공급의 시간이 애초에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신도시는 그보다 오래 걸린다. 한 정부가 후보지를 발표하면 다음 정부가 보상하고, 그다음 정부에서 입주하는 일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런 사업에 정권의 브랜드를 붙이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정권마다 새로운 숫자와 사업을 앞세우다 보면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사업을 끝까지 완성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렵다. 하지만 주택정책의 성과는 보도자료에 적힌 공급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에게 전달된 집의 열쇠로 평가받아야 한다.
23만호+α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신규택지도 필요하다. 정부가 약속한 공급기간 단축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박수칠 일이다.
다만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것과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일의 우선순위를 뒤바꿔서는 안 된다.
김 소장은 "5년, 10년 뒤를 위해 새로운 공급의 씨를 뿌리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지금은 이전 정부부터 뿌린 씨를 빨리 키워 열매를 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공급정책에 자기만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했든, 이전 정부가 발표했든, 현 정부가 새로 찾았든 약속된 주택이라면 끝까지 이어받아 최대한 빨리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주택 공급에는 정권의 임기가 있어도, 국민의 기다림에는 정권의 경계가 없다.
새 정부의 성과는 새로운 공급계획을 몇 만호 더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이미 약속된 집을 얼마나 빨리 실제 집으로 만들었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집이 필요한 거지, '이재명표 공급'이 필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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