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기존 검사의 수사지휘 체제가 사라지고 관세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대등한 수사기관으로 재편되면서 마약 밀수 단속 최전선에서 절차적 혼선과 수사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약 밀수 수사는 국경에서 적발된 마약을 단서로 국내 최종 수령인과 유통조직까지 추적하는 '시간 싸움'이다. 기관 간 사건 통보와 이첩 절차가 길어질 경우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관세청이 마약 밀수 사건을 먼저 인지해 수사에 착수한 뒤 중수청이 사건 이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양 기관의 판단이 엇갈릴 경우 수사 지연은 물론 관할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중 현장 수사관들과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초동수사 지연과 골든타임 상실'이다.
마약 밀수는 국경 화물 통과 직후 최종 수령인을 신속하게 추적·검거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중수청 출범 이후 사건 통보와 이첩 요청·검토 등의 절차가 추가될 경우 즉각적인 추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다.
오는 10월 시행되는 중수청법 제43조 제3항은 중수청의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사건에 대해 중수청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수청 출범 이후에는 관세청이 수사 중인 마약 사건에 대해 중수청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중수청의 이첩요구권을 어느 시점부터 행사할 수 있는지, 관세청이 이미 인지·수사 중인 사건에 중수청이 어느 단계에서 개입할지를 놓고 현장에서 판단이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검찰이라는 단일 지휘체계 아래 세관과 검찰 간 수직적 공조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양 기관이 별도의 수사권을 가진 대등한 기관으로 움직이게 된다.
기관별 수사 성과를 둘러싼 경쟁이 심해질 경우 핵심 첩보나 수사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경에서 적발된 마약을 단서로 국내 유통조직까지 추적해야 하는 마약 수사의 특성상 정보 공유가 끊기면 수사의 연속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사 개시를 둘러싼 '입건·통보 시점'도 쟁점이다.
관세청이 첩보를 입수한 뒤 어느 단계에서 정식 사건으로 입건하고 중수청에 통보할지, 중수청이 언제 이첩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양 기관의 판단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관이 현장 판단에 따라 자체 추적수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중수청이 사건 이첩을 요구할 경우 관할권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마약류가 최종 유통지까지 전달되도록 감시하면서 주범을 검거하는 '통제배달'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도 문제다.
과거에는 지휘 검사를 중심으로 수사 책임 체계가 비교적 명확했지만 앞으로 관세청과 중수청이 공동으로 수사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마약류가 유출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느 기관이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 중수청, 부산 공항·항만에 '마약수사 분실' 추진
이런 가운데 중수청은 국경 거점의 마약 수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1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오는 10월 출범하는 중수청은 부산지방중수청 산하에 공항과 항만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마약수사과(가칭) 분실'을 별도로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항과 김해공항 등 주요 밀수 거점에 수사 인력을 배치해 마약 밀수 첩보를 직접 수집하고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과거 검찰이 항만과 공항 등에 마약수사 인력을 배치해 관세청과 공조하던 방식을 중수청 체제에서도 이어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입법예고가 마감된 중수청법 시행령에 따르면 중수청은 부패·경제범죄 등 중대범죄와 함께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주요 마약범죄를 수사 대상으로 한다. 중수청 수사관은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으로 수사를 수행하게 된다.
다만 중수청이 항만·공항에 별도의 수사 거점을 마련하더라도 통관 단계에서는 관세청과의 역할 분담이 불가피하다.
◇ '통제배달 반입요청권' 법적 공백 우려…중수청은 통관검사 권한 없어
중수청의 공항·항만 수사거점 설치와 함께 기존 통제배달 수사의 법적 근거를 어떻게 정비할지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제배달(Controlled Delivery)은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마약류를 세관 통관 단계에서 곧바로 적발·폐기하지 않고 수사기관의 감시 아래 국내로 이동하도록 한 뒤 최종 수령인과 배후 유통조직을 추적하는 수사 기법이다.
현행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은 검사가 세관장에게 마약류 등의 반입 또는 반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관장이 이를 수용하면 해당 마약류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국내 유통조직을 검거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중수청 출범과 공소청 체제로의 전환 이후 이 권한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느냐다.
검사의 직접수사 기능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공소청 검사가 수사 개시 성격의 반입요청권을 계속 행사하는 것이 새로운 수사·기소 분리 체계와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 특례법 정비가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통제배달 수사의 개시 절차와 기관별 역할을 둘러싼 혼선도 우려된다.
중수청에 통관검사 권한이 없다는 점도 관세청과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이유다.
관세법상 통관 단계에서 수출입 물품을 검사하는 권한은 세관공무원에게 부여돼 있다. 일반적인 통관검사 과정에서 화물을 개봉하거나 물품을 확인하는 것은 적정한 통관을 위한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중수청 수사관이 공항이나 항만에 상주하더라도 세관공무원의 통관검사 권한을 대신할 수 없다.
범죄 혐의가 구체화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단계로 넘어가기 전까지 중수청이 통관 화물에 어떻게 접근하고 관세청과 수사정보를 공유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 학계 "권한 벗어난 수사 개입 땐 공소기각·증거배제 위험"
형사법 전문가들은 중수청과 관세청의 권한과 수사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에 나설 경우 재판 단계에서 적법절차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사법부도 수사기관이 법에서 정한 수사 범위를 벗어난 사건에 대해 엄격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3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의사 이 모 씨와 이른바 '명문대 마약동아리' 회원 대학생 배 모 씨 사건에서 검찰의 수사 개시 절차가 법률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은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검찰이 송치된 사건과 관련성이 없는 범죄를 직접 인지해 수사·기소한 것은 당시 검찰청법이 허용한 직접수사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기관이 법에서 정한 수사 범위를 벗어날 경우 범죄 혐의에 대한 실체 판단에 앞서 수사 절차의 적법성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성일 건국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중수청법 제43조에 따른 사건 통보와 이첩 절차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가 중요하다"며 "중수청과 관세청이 서로의 법적 권한을 넘어 수사에 관여할 경우 향후 재판 과정에서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수청이 전국 단위의 마약 수사권을 갖더라도 통관 단계의 물품 검사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세법상 행정조사 성격의 통관검사와 형사소송법상 수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양 기관이 어떤 단계에서 수사를 연계할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통관검사가 형사상 압수·수색 단계로 넘어갈 경우에는 영장주의 등 형사소송법상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절차를 위반해 수집한 증거는 재판 과정에서 위법수집증거로 판단돼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고, 개정 형소법상 중대한 위법수사에 기한 공소제기로 공소기각 사유가 될 위험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 관세청 "대등기관 실무협의 개시…수사 지연 막는 게 최대 과제"
관세청도 중수청 및 법무부와 실무 협의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조세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마약 범죄가 중수청의 수사 범위에 포함된 만큼 중수청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첩요구권 역시 법률에 규정된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와 같은 상하 지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수사기관 관계가 되는 만큼 이첩 과정에서 수사가 지연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시행령 입법예고 마감에 맞춰 중수청·법무부와 본격적인 실무 협의를 시작했고, 10월 2일 시행 전까지 통제배달 반입요청권 보완을 포함한 세부 공조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 현장에서는 긴급한 마약 밀수 사건의 경우 관세청이 즉각 현장 추적에 착수한 뒤 중수청에 신속 통보하는 방식의 '패스트트랙'과 양 기관이 첩보와 수사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조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약 밀수 수사는 국경 단계에서의 적발 이후 국내 수령인과 유통책, 배후 조직까지 추적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오는 10월 새로운 수사체계가 가동되기 전 사건 통보와 이첩, 통제배달, 통관검사, 긴급수사 등 단계별로 관세청과 중수청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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