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은행 금융사고의 얼굴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4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사고액은 5500억원에 육박했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유형은 횡령이나 배임이 아닌 ‘사기’였다. 최근 허위 계약서나 분양자료 등을 이용한 외부인 대출사기가 잇따르면서 금융사고를 둘러싼 내부통제의 초점도 임직원 관리에서 여신심사와 사후관리로 넓어지고 있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모두 281건으로 집계됐다. 사고 금액은 5495억2800만원이다.
사고 규모는 최근 들어 가파르게 불어났다. 연도별 사고 금액은 2020년 55억800만원, 2021년 52억9200만원에 머물렀지만 2022년 895억100만원으로 급증했다. 2023년에는 46억6800만원으로 줄었다가 2024년 1211억6900만원으로 다시 네 자릿수 규모로 커졌고, 지난해에는 2319억200만원으로 집계 기간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수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2020년 20건에서 2021년 17건, 2022년 22건, 2023년 15건으로 등락하다 2024년 34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80건까지 뛰었다. 올해도 7월까지 이미 30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금액은 236억8600만원이다.
은행별로 보면 누적 사고 금액이 가장 큰 곳은 우리은행이었다. 우리은행에서 2017년 이후 발생한 금융사고 금액은 2843억500만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웃돌았다. 이어 KB국민은행 1422억500만원, 하나은행 822억3700만원, 신한은행 407억8100만원 순이었다.
사고 건수는 하나은행이 77건으로 가장 많았다. KB국민은행이 73건, 우리은행이 70건, 신한은행이 61건으로 뒤를 이었다. 금액과 건수 순위가 엇갈리는 것은 일부 대형 사고가 전체 규모를 크게 끌어올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 사고액 55%가 ‘사기’…횡령보다 외부 대출사고 커졌다
사고 유형을 뜯어보면 사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10년간 사기 사고는 149건, 3036억700만원으로 전체 금융사고 금액의 약 55.3%에 달했다. 업무상 배임은 30건, 1554억1500만원이었고 횡령·유용은 90건, 900억7600만원으로 집계됐다. 도난·피탈은 12건, 4억3000만원이었다.
과거 은행권 금융사고가 직원의 횡령·유용 등 내부 비위 문제를 중심으로 부각됐다면 최근에는 외부인이 개입한 대출사고가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위·변조된 계약서나 분양자료, 과대평가된 담보가치를 근거로 대출이 실행된 뒤 은행이 사후에 문제를 인지하는 식이다.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든 금융사고는 최근에도 잇따랐다. 지난 12일 KB국민·신한·우리·IBK기업은행은 외부인 사기와 관련한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공시된 사고 금액을 합하면 약 490억원이다. 다만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인 만큼 박 의원이 집계한 4대 시중은행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이 새로 공시한 사고 금액은 35억7790만원이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시행사와 허위 분양자 등이 계약 관련 서류를 조작해 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기존 외부인 사기 사고의 금액을 173억4355만원으로 다시 높였다. 지난해 12월 최초 공시 당시 29억6440만원이었던 사고 금액은 올해 6월 69억6890만원으로 한 차례 늘어난 데 이어 추가 확인 과정에서 다시 확대됐다.
우리은행도 지난 6월 약 40억원으로 공시했던 외부인 사기 사고 금액을 98억7000만원으로 정정했다. 사고 발생 기간은 2024년 8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다.
은행들이 공시하는 ‘사고 금액’은 최종 손실액과는 차이가 있다. 담보 회수나 채권보전 여부, 수사 결과 등에 따라 실제 손실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 기업은행은 두 건만 1000억원 넘어…해외 위탁 뚫렸다
박 의원실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국책은행에서도 대형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12일 상가 분양 관련 대출사기의 사고 금액을 기존 47억8500만원에서 182억21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해 공시했다. 분양대금이나 담보가치와 관련한 허위자료를 제출해 대출을 받은 사건으로, 조사 과정에서 관련 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별도로 기업은행은 지난달 해외 현지법인에서 833억7600만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현지법인이 비대면 소액대출을 위해 계약한 금융사의 하위 대행업체가 고객이 상환한 대출 원리금을 별도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건을 합하면 공시 사고 금액만 1015억9700만원에 달한다. 국내 영업점의 여신심사 문제뿐 아니라 해외법인과 외부 위탁업체 관리까지 금융사고 관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사고 흐름은 은행권 내부통제의 초점도 바꾸고 있다. 직원 개인의 횡령을 막기 위한 직무분리와 장기근무자 관리뿐 아니라 대출 실행 단계에서 제출서류의 진위와 담보가치를 검증하고, 대출 이후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여신 전 과정의 통제가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과거와 비교하면 사고 유형의 변화도 뚜렷하다. 2022년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2017년부터 당시까지 시중은행 금융사고 가운데 횡령·유용이 114건으로 가장 많고 사기는 67건이었다. 당시 집계액도 횡령·유용 1009억원, 사기 869억원 수준이었다.
이번 집계에서는 사기가 149건, 3036억700만원까지 불어났다. 집계 대상과 기간에 차이는 있지만 금융사고의 무게중심이 내부 횡령에서 사기성 여신 사고까지 넓어졌다는 점은 확인된다.
박 의원은 “국민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시중은행에서 횡령과 배임, 사기가 반복되는 것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라며 금융당국에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강화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은행권이 금융사고 때마다 내부통제 강화를 내걸고 있지만 사고 금액과 건수가 최근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한 임직원 통제를 넘어 대출심사, 담보검증, 외부업체 관리까지 포함한 사고 예방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가 향후 감독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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