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정부가 지난 3일 세제개편안을 통해 ‘주가 누르기에 해당하는 상장주식 평가방법 개선 방안(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공개하자 시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개인투자자들과 여당 일각에서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정부안이 원안격이었던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비교해 상당 부분 후퇴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소영 의원이 발의한 상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상장주식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8배 미만이면 비상장주식과 유사하게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반영해 평가하고 평가액이 순자산가치의 80%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한을 두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에 반해 정부안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 적용 대상을 선별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 13개 반기 중 12개 반기 동안 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업종별 하위 10%에 해당하는 장기 저PBR 기업이거나 ▲최근 1년간 중복상장·교환사채 발행 등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있었고 시가평가액이 최근 6개월·1년·2년·3년 평균주가 중 가장 높은 금액에 비해 주가가 30% 이상 낮은 기업을 ‘주가 누르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두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하면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가 누르기’ 여부를 판단한다.
즉 이소영 의원안은 PBR 0.8배라는 절대적 평가 하한을 설정했다면 정부안의 경우 특정 저PBR·주가급락 기업을 선별한 뒤 과거 주가를 활용해 재평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평가 방식의 차이로 인해 정부안의 ‘주가 누르기 방지법’ 적용 대상 기업이 이소영 의원안의 약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정부안은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하위권에 속한 기업만 ‘주가 누르기’ 대상으로 추정하기에 기업들은 일부 기간에만 PBR 순위를 끌어올리면 해당 요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소영 의원은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법안의 최초 고안자인 저도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면서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정부안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아이디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주가 누르기 방지법’ 정부안, ‘주가를 영원히 누르는 법’으로 변질돼
앞서 정부의 ISA 개선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곽상준 매트릭스 투자자문 대표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 관련 정부안에도 많은 문제점이 내포됐다고 우려했다.
곽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아닌 ‘주가를 영원히 누르는 법’으로 바꿨다는 점”이라며 “이소영 의원안은 ‘기업의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80%보다 낮은 경우(PBR 0.8배 미만)’로 대상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데 반해 정부안은 적용 요건이 복잡하고 심의를 통한 구제방안까지 추가됐다”고 꼬집었다.
또 “이소영 의원안 기준으로는 1300여개 상장사가 ‘주가 누르기 방지법’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정부안 기준으로는 대략 100개 안팎에 그친다”며 “적용효과 또한 이소영 의원안은 현행 비상장주식 평가방식과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합리적인 방안인 반면 정부안은 적용요건에 따라 주가 기반으로 각각 다른 계산법이 사용된다.
게다가 상장사 최대주주 20% 할증과세 폐지, 물납 허용 같은 기업 유인책은 정부안에서 아예 제거됐다. 정부안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아예 장기간 주가를 억누르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현행 제도상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 누르기’ 행위가 합리적
곽상준 대표는 현행 제도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의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 행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대주주가 주가를 낮출 유인은 분명히 존재하고 제도가 그렇게 설계돼 있으니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 누르기’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며 “상장주식은 상속·증여일 전후 2개월의 평균 시가로 평가되고 거기에 최대주주는 상속세 최고세율 50%에 최대주주 보유주식 20% 할증평가까지 적용돼 실질적으로 최고 60% 수준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주식의 평가가액을 1000억원 가량 낮춘다면 수백억원을 절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면 비상장주식은 순자산가치의 80%가 평가액의 하한으로 작용한다. 오랫동안 비상장 상태였던 기업이 승계를 앞두고 상장한 뒤 주가가 순자산가치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 경우 비상장 상태로 승계할 때보다 세법상 주식 평가액이 낮아질 수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도 배당을 하지 않는 행위, 자사주를 매수해 소각하지 않고 쌓아두는 행위, 승계 전후 갑작스러운 물적분할·중복상장·교환사채 발행 등의 패턴을 보고 대주주의 고의적인 ‘주가 누르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 효율적인 자본배치 자신 없는 기업, 과감히 상장철회해야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국내 증시에서 화두로 떠오르자 재계 등 일각에서는 저PBR은 기업의 낮은 ROE(자기자본이익률)와 성장성, 업황 부진, 지배구조, 자본효율성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단순히 장기간 저PBR 상태라는 이유로 ‘주가 누르기 기업’이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정상적인 저평가 기업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곽상준 대표는 “이러한 우려를 고려 해야하나 ‘주가 누르기 방지법’과 관련된 방법·적용 대상 등을 축소해서는 안된다”며 “이소영 의원안은 저PBR 기업의 상증세 평가액의 하한을 제한할 뿐, 패널티를 부여하자는 법안이 아니다. 즉 정상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의 대주주도 주식가치가 최소 순자산가치의 80% 수준으로 평가될 뿐이다. 이는 이미 비상장기업에 적용 중인 기준이기에 오히려 형평성을 맞추는 쪽에 가깝다. 차라리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이나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 등 명백한 예외사유를 지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더불어 기업들이 자본의 효율적 배치에 실패한다면 해당 기업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일본은 이토 리포트를 통해 거래소가 기업들의 ‘ROE 8% 초과 달성’을 적극 독려해 오고 있다”면서 “자본의 효율적 배치에 자신이 없는 회사는 상장을 철회하면 된다. 수 많은 주주들과 국민경제를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한국 자본시장은 청년층으로부터 한 차례 버림 받은 바 있다. 현재 자본시장의 구조를 고착화한다면 한국은 자본시장의 후진성으로 인한 산업 자본 활성화에 치명적 약점을 드러낼 것”이라며 “이소영 의원안의 개선된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시행된다면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본격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저평가 기업에 대한 투자만으로도 손쉽게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자본시장 선진화 위한 밑거름
‘조세금융신문’은 곽상준 대표에게 ISA 개편과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 두 정책이 향후 적절하게 수정·시행된다면 실제 코스피·코스닥의 밸류에이션 상승과 장기자금 유입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문의했다.
그는 “두 제도는 성격이 다르다. ISA는 자금의 공급을 끌어오는 장치이고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자본시장의 구조를 개선해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국내 증시에서는 후자의 효과가 훨씬 크다”며 “이재명 정부 취임 이후 연달아 상법 개정을 진행한 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지목한 것도 거버넌스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이같은 정책 방향성을 유지한다면 K-자본시장의 할인율이 내려갈 여지가 생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저는 어떤 극단적인 단기적 부양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정책과 제도는 시장이 개선될 유인을 만들어줄 뿐, 실제 변화는 기업들의 대응에 달려있다. 시장 자체가 건전한 구조로 변모하고 지수가 안정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다면 장기자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불안정한 그릇에 물을 부어봤자 쏟아질 뿐이니 지금은 자본시장 선진화가 최우선인 때”라고 전했다.
◇ 정부, 세제 정책 통해 ‘주가 누르기’ 등 국내 증시 내 왜곡된 요소 제거해야
정부가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세제상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동시에 강화하는 방식을 추진하자 재계 내에서는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 형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곽상준 대표는 세제를 통해 기존에 왜곡된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제는 새로운 왜곡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왜곡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며 “주식을 상장해 주가를 누르는 것이 상증세법상 유리한 현행 구조는 세법이 만들어낸 왜곡이므로 이를 바로잡는 것은 개입이 아닌 정상화”라고 지적했다.
뒤이어 “그러나 특정 자산군을 세제혜택 대상에서 배제해 포트폴리오 구성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투자자의 자금 배분에 직접 간섭하는 것”이라며 “일부 자산에 세제혜택를 부여함으로써 유인을 생성하는 것과 기존 세제혜택의 수혜대상에서 갑자기 제외시키는 것은 정부 개입의 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끝으로 곽상준 대표는 ISA 관련 제도와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곽상준 대표는 “개인 입장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내 절세계좌의 규칙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은 정부안 단계이고 지금 성급하게 계좌를 해지하기보다 최종안을 확인한 뒤 움직이는 편이 낫다”면서도 “하지만 향후 정부 정책에 기초한 자산형성계획을 세울 때에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인플레로 인한 돈의 가치 하락이 매우 큰 만큼 정부는 ISA 제도 수정 과정에서 자산형성에 의미가 있을 수준으로 가입 한도를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 금융을 바란다면 비과세 적용기한을 일본처럼 무제한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며 “여기에 정부는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핵심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자본시장 선진화냐 후진적 자본시장 유지냐를 가를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때문에 현 정부안의 전면적인 개편은 불가피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25일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은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현재 ISA 및 ‘주가 누르기 방지법’ 관련 정부안을 수정 작업 중이라고 시사했다.
허장 차관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 당국 및 국회 등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이달말 세제개편안 수정 작업을 마무리 한 뒤 내달 초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2
3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