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연말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5대 금융그룹에서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계열사 CEO만 54명에 달하는 가운데 5대 은행장도 모두 연임 여부를 심사받는다.
여기에 KB금융이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 대신 새 인물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한 데 이어 금융감독원까지 금융그룹 자회사 CEO 승계절차에 대한 점검 강화를 예고하면서 인사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연말 금융권 인사의 관전 포인트가 주로 개별 CEO의 실적과 연임 가능성에 맞춰졌다면 올해는 후보군을 어떻게 구성하고 압축했는지,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까지 주요 평가 대상으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당국이 특정 CEO의 교체 여부를 직접 주문한 것은 아니지만 연임과 교체 모두 그 결정 과정의 객관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커진 상황이다.
◇ 5대 금융 CEO 54명 인사 대상…금감원은 ‘절차’ 정조준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는 5대 금융그룹 계열사 CEO는 총 54명이다. 그룹별로 KB금융 10명, 신한금융 12명, 하나금융 13명, 우리금융 12명, NH농협금융 7명이다. 하나금융의 인사 대상이 가장 많고 KB금융이 가장 적다.
이 가운데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의 임기도 오는 12월31일 일제히 끝난다. 정상혁 행장은 추가 연임 여부를, 나머지 4명은 첫 연임 여부를 평가받게 된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금융당국도 이들 CEO 선임 과정에 칼끝을 겨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지주회사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역할도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문제로 본 부분은 CEO 자격요건의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후보 압축 단계별 최소 검증기간을 두지 않는 사례, 형식적인 상시후보군 관리, 불투명한 후보 압축·검증 절차 등이다.
자회사 CEO 후보군 관리 권한이 지주에 치우친 점도 지적됐다. 자회사 임추위가 후보군을 공유받거나 직접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곳은 일부에 불과했다.
이 원장은 “향후 후보군 선정, 검증 및 평가, 기록 등 일련의 CEO 승계절차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CEO 승계가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지 점검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지난 1월부터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제도 개편보다 연말 인사가 먼저 돌아가는 만큼, 당장 각 금융지주가 기존 틀 안에서 승계절차의 신뢰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 최대 실적도 연임 보장 못했다…KB가 흔든 인사 공식
연말 인사 공식을 먼저 깬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양종희 현 회장이 아닌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양 회장 재임 기간 KB금융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해 금융권에서는 연임 전망이 우세했지만 회추위는 현재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본원적 경쟁력과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후보는 오는 11월20일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KB금융의 선택은 연말 금융권 인사에서 ‘실적=연임’이라는 공식을 흔드는 신호가 됐다. 특히 KB금융은 연말 10명의 계열사 CEO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새 회장 체제의 첫 인사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이환주 국민은행장도 그 대상이다. 이 행장은 첫 임기를 마치는 데다 올해 상반기 국민은행이 2조225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실적 측면에서는 연임을 검토할 기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새 회장이 취임한 직후 단행되는 주요 계열사 인사라는 점은 변수다.
◇ 5대 은행장 모두 12월31일 임기 끝…실적만으론 답 안 나온다
다른 은행장들도 상황은 서로 다르다.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신한은행이 2조4585억원으로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많았고 국민은행 2조2254억원, 하나은행 2조1211억원, 우리은행 1조3730억원, 농협은행 1조1629억원 순이었다. 신한·국민·하나은행은 전년 동기보다 순이익이 증가한 반면 우리은행은 11.9%, 농협은행은 2.1% 감소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이미 한 차례 연임한 만큼 이번에 다시 선임될 경우 세 번째 임기에 들어간다. 상반기 순이익이 2조458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5% 증가해 실적은 뒷받침되고 있지만, 신한금융이 다시 경영 연속성을 택할지가 관건이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첫 임기 동안 하나은행이 상반기 2조1211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1.7% 성장한 점이 강점이다. 다만 함영주 현 하나금융 회장이 은행장에서 물러난 이후 하나은행장의 연임 사례가 없다는 점은 인사 관행 측면에서 함께 지켜볼 부분이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이 임종룡 회장의 연임을 결정한 만큼 경영 연속성 측면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이다. 다만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373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9% 줄었다. 그룹 전체 순이익은 비은행 부문 확대로 증가했지만 은행 자체 실적은 감소해 첫 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강태영 농협은행장 역시 첫 연임에 도전한다. 농협은행은 상반기 1조162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2.1% 감소했다. 여기에 농협은행은 이대훈 전 행장을 제외하면 행장 연임 사례가 드물어 다른 시중은행보다 지배구조와 인사 관행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
결국 올해 연말 금융권 인사는 단순히 ‘실적이 좋으면 연임한다’는 공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KB금융은 최대 실적에도 회장을 바꾸며 변화와 세대교체를 선택했고, 금융당국은 CEO를 교체하느냐보다 후보군을 어떤 기준으로 만들고 검증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고 예고했다.
54명의 임기가 한꺼번에 끝나는 이번 인사에서 각 금융지주가 안정과 쇄신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못지않게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가 연말 인사의 또 다른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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