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오대산 북대 너머 계곡에서 발원한 물은 부연동과 법수치, 어성천 계곡을 지나 남대천을 이뤄 동해로 흘러든다. 워낙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한국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곳이다.
부연동은 오대산 북쪽 깊은 산자락에 숨어 있는 마을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에 속하지만, 강릉이나 주문진의 바닷가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부연천 가운데 가마처럼 생긴 깊은 소(沼)가 있어 ‘가마소’라 불렸고, 여기에서 부연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변에는 가마소를 비롯해 부연약수와 부연동 계곡이 있으며, 지금도 깊은 산골마을 특유의 정취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부연동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쉽게 닿을 수 없음’이다. 소금강 쪽에서 진고개 방향으로 오르다 산길을 타고 들어가거나, 반대편 양양 어성전 쪽에서 산을 넘어야 마을에 닿는다. 지금이야 길이 좋아졌다지만 한 굽이 돌면 또 한 굽이가 기다리는 깊은 산길은 여전하다.
어쩌면 부연동이 지금껏 맑은 물과 깊은 숲, 오지마을 특유의 적막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세상과 한 걸음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오지 중의 오지라는 말만 들었지만, 주문진에서도 한 시간가량을 더 산길로 오르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길과 숲이 깊어질수록 힘들다기보다 목적지가 더 기대되는 그런 곳이다.
산을 넘어서니 비로소 드문드문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깊은 산중이니 가까이 마을을 이뤄 살 법도 한데, 현재 부연동 계곡에 사는 사람들은 큰 목소리 내지 않는 한 들리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 더 적막강산처럼 보일 수밖에. 민가도 있지만 펜션도 여러 채 들어서 있어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름 한철 휴양지로는 최적이다.
낮에는 선풍기 없어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니 책을 읽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냇가에 발을 담가도 좋다. 낚싯대 드리워 산메기 잡아 매운탕 끓여 안주 삼아 소줏잔 기울여도 어지간해서는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아침이면 잡아놓은 다슬기에 된장 풀어 해장하고,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최대한 게으르게 보내기 좋은 곳이 부연동 계곡이다.
밤의 시간은 더 아늑하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은 쏟아지고, 심지어 물고기 푸드덕 뛰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밤이 되면 물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국자별도 보이고, 닻별도 보이고, 이름 모를 잔별들은 검은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다.
이렇듯 도시에서는 좀처럼 올려다볼 일조차 없던 별들을 실컷 볼 수 있다.
부연동, 별 헤는 밤_黃河
등불은 꺼지고 별은 밝아온다
산메기 푸드덕대는 소리
그저 간간할 뿐
물소리조차 잦아드는
부연동, 밤 열두 시
산 너머로 내려앉은 국자별을
하릴없이 우러르다 소주 한잔 비워내고
둥 떠 있는 닻별 보며
애먼 술잔 또 비워낸다
별을 헤며 그리움을 노래한 해환과
별을 헤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나
그리고 시와, 먼 사랑과, 부연동
아득한 옛 기억마저 잔별처럼 흔들려 오면
등불도 꺼지고 별도 꺼져가고
별 하나 별 둘 헤아리다가 마는
아득하여 아늑한
부연동의 밤.
계곡 초입에 있는 부연동 스카이 캐빈 펜션은 너른 숲속 곳곳에 각각의 숙소를 마련하여 옆집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게 잘 꾸며놨다. 유유자적하며 머물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특히 가마솥에서 끓여 내놓는 오골계백숙은 보양식이며 이곳만의 특별한 별미다.
세상은 자꾸만 빠르게 가라 하고, 우리는 그 속도를 따라잡느라 하루를 허겁지겁 살아낸다. 하지만 부연동에서는 굳이 서두를 일이 없다. 해 뜨면 일어나고, 더우면 계곡물에 발 담그고, 배고프면 밥 먹고, 어두워지면 별을 올려다보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잘 쉬는 방법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이다.
산 하나를 넘고 또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으니 돌아 나오는 길도 그만큼 멀다. 그래도 이상하게 다시 오고 싶어진다. 어쩌면 우리가 부연동에서 쉬고 오는 것은 몸이 아니라, 도시에서 잊고 살았던 마음 한쪽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부연동에서는 조금 게을러도 괜찮다. 아득하여 아늑한 곳, 부연동에서는 말이다.
주변 둘러보기 좋은 곳
1. 오대산 상원사
오대산 깊은 산중에 자리한 상원사는 우리나라 문수신앙을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길은 울창한 숲과 계곡이 함께해 사계절 어느 때 걸어도 좋다. 상원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으로 알려진 국보 상원사 동종과 문수동자상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전해진다. 절집 자체도 아름답지만 전나무와 깊은 산이 둘러싼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상원사에서 조금 더 산길을 오르면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으로 길이 이어진다.
2. 중대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힌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상원사를 지나 중대 사자암에서 다시 산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적멸보궁에는 일반 법당과 달리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오르는 길이 만만하지만은 않지만 산길 끝에서 마주하는 적멸보궁의 적막함과 오대산 능선의 풍경은 그 수고를 잊게 한다.
3. 주문진수산시장
부연동에서 산을 내려와 바다 쪽으로 향하면 주문진이다. 주문진항을 끼고 형성된 주문진수산시장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수산시장이다. 새벽부터 항구로 들어온 오징어와 문어, 가자미, 대게를 비롯해 계절마다 다양한 동해안 수산물이 좌판을 채운다.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지만 마음에 드는 생선을 골라 회로 맛보거나 건어물을 장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깊은 산골 부연동에서 내려와 왁자지껄한 항구와 시장 풍경을 만나는 것도 묘하게 대비되는 여행의 맛이다.
4. 경포해수욕장
강릉까지 내려왔다면 경포해수욕장을 빼놓기 어렵다. 길게 펼쳐진 백사장과 시원한 동해 바다가 어우러진 강릉의 대표 해변으로, 여름 피서철이 아니더라도 바닷가를 걷기에 좋다. 해변 뒤편으로는 경포호가 자리하고 있어 바다와 호수를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경포대와 주변 솔숲까지 천천히 이어 걷기도 좋다. 부연동의 깊은 산과 계곡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여행 마지막에는 탁 트인 경포 바다를 바라보며 산골에서 묻혀온 적막을 내려놓아도 좋겠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블로그 | 지구별 여행자 운영자
•스튜디오팝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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