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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목)

[시론] 국가재정은 왜 예산 밖으로 이동하는가

(조세금융신문=안경봉 국민대 명예교수,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 세금 다음에는 재정을 볼 때다

 

우리 사회는 세금에는 민감하다. 세율이 얼마나 오르는지, 어떤 공제가 없어지는지에는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걷은 돈을 어디에 쓰고, 남은 돈은 어디에 두며, 그 과정에서 나라의 빚과 위험은 얼마나 늘어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최근 정책을 함께 놓고 보면 큰 흐름이 보인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과 국민성장펀드로 미래 산업 투자를 늘리고, 공공기관 개혁과 재정준칙도 추진한다. 정부가 돈을 쓰고 관리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장점과 약점, 새로운 기회와 위험을 함께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일반회계 밖에서 움직이는 재정도 매우 크다. 2026년 중앙정부 총지출 가운데 특별회계와 기금의 비중은 약 47%다. 여기에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민간자본까지 끌어들이는 국민성장펀드 같은 방식이 더해지고 있다.

 

장기투자가 필요한 반도체·AI 등에는 단년도 예산보다 유연한 자금이 필요하다. 국민성장펀드는 올해 30조원 이상 지원을 목표로 하고, 국민참여형 펀드도 1차 완판에 이어 6000억원 규모의 2차 판매를 앞두고 있다. 민간자본과 전문성을 끌어들이면서 금융·회계·세무·법률 시장에도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문제는 새로운 수단 자체가 아니다. 정부가 돈을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그만큼 감시와 책임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 세금을 걷는 정부가 투자자도 된다

 

미래대응기금은 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약 96조 9000억원의 여유재원을 전문기관에 맡겨 운용하는 방안에 이어, 최근에는 4조 7000억원을 활용해 산업은행이 ‘프런티어 AI’ 개발 회사의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구상도 나왔다.

 

민간자금을 합치면 투자규모는 10조원 안팎이 될 수 있다. 국가는 이제 보조금을 주는 데서 나아가 투자수익까지 추구하는 투자자로 변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성공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손실 위험도 따른다. 더구나 미래대응기금은 경기침체 때 사용할 재정 안전판의 성격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국회는 “어디에 얼마를 쓸 것인가”뿐 아니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고, 얼마의 위험을 부담하며, 손실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까지 물어야 한다.

 

◇ 세금은 늘었는데 왜 빚도 늘어나는가

 

내년도 예산안은 820조 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93조원 늘어난다. 국가채무도 약 1413조원에서 1520조원으로 107조원 증가할 전망이다. 그런데 국세수입 역시 올해보다 약 194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세금이 크게 늘어나는데도 왜 나라 빚은 100조원 넘게 늘어나는가

 

핵심은 늘어난 세금을 어디에 배분하느냐에 있다. 정부는 세수 증가분을 기존 빚을 갚는 데 집중하기보다 지출을 늘리고 상당 부분을 미래대응기금에 남겨두는 길을 택했다. 일시적인 세수 증가에 대비하고 미래산업에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약 100조원의 여유자금을 보유하면서도 국채를 계속 발행한다. 빚과 금융자산을 함께 갖는 선택인 만큼, 확실한 이자절감과 불확실한 투자수익을 비교해야 한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진다는 설명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는 100조원 넘게 늘지만 경제 규모가 더 크게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GDP 대비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빚의 비율이 낮아지는 것과 빚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다르다.

 

최근 정부가 “외환위기의 마지막 빚을 갚는다”고 설명한 것도 비슷하다. 정확히는 IMF 구제금융 자체가 아니라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 구조조정에 투입한 공적자금의 정부 부담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같은 시기에 국가채무 전체는 15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 종류의 빚을 갚는 것과 나라 전체의 빚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숫자 하나가 아니라 나라의 자산과 부채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이다.

 

◇ 새로운 기회는 살리고 위험은 관리해야 한다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정책이다. 그러나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도 미래정책이다. 오늘 갚지 않은 원금과 이자는 결국 미래세대가 부담한다.

 

최근 국민성장펀드가 국민참여형 펀드로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고, 미래대응기금은 AI 개발회사에 전환사채 방식으로 투자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면서 재정의 역할도 단순한 지출에서 투자로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세수가 크게 늘어난 때에는 미래산업에 투자할 돈, 경기침체에 대비해 남겨둘 돈, 기존 빚을 갚을 돈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공공기관 개혁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한전 산하 발전회사 통합처럼 중복기능을 줄이는 개편은 효율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석유공사·가스공사 통합이나 LH 기능분리가 구조적 부채와 손실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부채를 줄인 것과 부채의 위치를 옮긴 것은 다르다.

 

정부가 마련하려는 재정준칙도 중앙정부 채무만 봐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후순위 출자나 전환사채·보증·손실분담 같은 방식을 활용하면 당장 국가채무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재정위험은 생길 수 있다. 재정수단과 위험은 일반회계를 넘어 기금·정책펀드·공기업으로 넓어지는데, 재정준칙이 중앙정부 채무만 관리해서는 곤란하다.

 

결국 새로운 재정수단의 기회는 살리되 투자위험과 재정부담은 더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최근의 재정정책은 한마디로 “더 투자하면서도 덜 빚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이제는 세금을 얼마나 걷을 것인가뿐 아니라, 더 걷힌 돈을 어디에 쓰고 얼마를 남기며 얼마의 빚을 갚을지도 물어야 한다.

 

재정수단은 유연해지되 투자위험과 재정책임, 재정정보까지 흐려져서는 안 된다. 세금 다음에는 국가재정을 볼 때다.

 

 

[프로필] 안경봉 국민대 법대 명예 교수

•(현)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현)금융조세포럼 수석부회장

•(전)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

•(전)한국세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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