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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국산 진단기기 수출 협조…英재무장관 컨퍼런스 콜

원활한 기업인 이동, G20서 국제협력방안 논의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리시 서낙(Rishi Sunak) 영국 재무장관의 요청으로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코로나19 대응 정책경험을 공유하고 공조방안을 논의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8일 오후 4시 진행된 회의에서 영국의 코로나19 검사역량 증대를 위한 한국산 진단기기 구매확대 계획에 대해 민간업체 소개 등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우선 코로나19로 입원한 보리스 존슨 총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며, 지난 5일 영국 여왕의 특별 대국민 성명처럼 양국 정부와 국민이 긴밀히 협력하여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낙 장관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방역정책이 효과를 거두게 된 주요 요소에 대하여 문의했다.

 

홍 부총리는 빠른 검진, 철저한 역학조사, 정보의 투명한 공개, 확진자·접촉자의 강력한 격리를 주요인으로 꼽았다.

 

세부 사항으로는 진단키트 조기 개발,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운영, 자가격리 및 진단 앱 운영과 같이 ICT 기술을 활용한 창의적 시스템 조기도입 등을 소개했다.

 

서낙 장관은 아직 백신개발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인프라 구축,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향후 정책방향 등에 대해 물었다.

 

홍 부총리는 다음 유사사태에 대비한 백신·항체 검사 개발 등 방역 인프라 확충을 꼽았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한 각종 대책의 신속한 추진과 코로나 사태 종식 후에도 비대면산업(non-contact industry)을 새로운 산업 발전 계기로 만들기 위한 정책개발을 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양국은 코로나19 관련 정책공조에 나선다.

 

한국 측은 국내 진단기기 제조업체를 영국 측에 연결하는 등 협조를 강화하고, 국가 간 인적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필수기업인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국제협력방안 등을 G20차원에서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서낙 장관은 홍 부총리의 진단기기 협조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오는 15일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G20 재무장관회의 등에서 정책공조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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