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왕피천을 중심으로 천태령, 통고산, 천축산 등 아찔한 아름다움의 험령준곡에 둘러싸여 약 300명의 주민들이 10개의 자연부락에 옹기종기 살고 있는 마을.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 얘기다.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적잖은 피해를 본 경상북도 지역이지만 이 마을은 그다지 큰 수해를 입지 않았다. 적은 인구가 넓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공공기관 직원들이 모든 지역의 안전사고를 돌보는 게 여간 버겁지 않기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을 꾸려 지역사회를 돌보는, 이른 바 ‘왕피 자율방범대’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피리는 울진군 전체 면적의 약 8%를 차지하는 지역. 우리나라 최대 규모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금강송(소나무)과 산양, 수달, 참매 등 각종 멸종위기종들과 천연기념물 동식물이 살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다.
그런데 이런 천혜자원의 왕피리에서 매년 장마철이면 집중호우로 물이 불면 하천둑과 산허리가 무너지는 자연재해가 심심찮게 발생했다. 태풍과 집중호우로 왕피천이 범람하면 외딴 지역 부락에 사는 주민들도 왕래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겼다.
왕피리 사람들이 ‘왕피 자율방범대’를 조직한 이유다. 이런 자연재해로부터 인명을 보호하고 멸종위기종 구조 등 동식물의 안전을 위한 도로와 교량의 보강, 교통통제 등 재난예방 활동이 주된 동기였다.
왕피 자율방범대원들은 모두 돌나라한농복구회 소속이다. 땅과 물, 공기를 위협하는 농약과 비료 대신 순수 유기농법으로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숲과 냇물, 동식물이 바로 농사의 밑천인 셈이다.
자연재해 예방활동과 자연보호 활동 속에서 자연스레 산불과 같은 사람이 일으키는 재난을 예방하는 캠페인과 인명구조에도 나서게 된다.
주기적인 순찰을 돌면서 교통사고 예방과 등산객・탐방객 안내,실종・조난자 수색구조 활동, 하천불법행위 단속, 불법 임산물 채취 단속, 여름철 피서객들에 대한 안전관리, 마을의 유일한 교통로인 박달재 도로에 발생한 낙석과 나뭇가지 제거 등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재해 예방과 자연보호, 각종 범죄예방을 위한 방범순찰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도 한다. 택배가 들어오지 않아 불편한 주민들을 위한 택배봉사를 포함, 몸이 불편한 어르신 농가에 잔심부름까지, 주민들을 위한 ‘왕피 자율방범대’의 활동은 끝이 없다.
일손이 부족한 지역에서 부족한 공권력에 적잖은 보탬을 주는 ‘왕피 자율방범대’에게 지역사회는 상을 줘 감사를 표했다. 지난 2022년 울진군수 표창 2회와 울진경찰서장 감사장 1회를 수상한 데 이어 2023년 들어선 ‘78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경북경찰청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왕피 자율방범대를 창설한 김동현 대장(49세)은 “자율방범대원들은 건축업, 유통업, 요양사 등 각자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땅을 살리기 위해 100%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라고 소개했다.
각종 홍보 캠페인을 위한 현수막 제작 비용은 대원들이 객출한 돈으로 만든다. 자기 돈을 들여 방범조끼 등 방범용품을 맞춰 입고 순찰도 개인차량으로 한다. 당연히 무보수로 일한다. 다만 지난 4월27일부터 시’자율방범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그나마 순찰차량 운행 유류비가 일부 지원된다.
김동현 대장은 “처음 자율방범대 제안에 마을사람들이 ‘이런 오지에 무슨…’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이 적쟎았는데, 방문객도 많고 경찰 도착시간도 무려 1시간30분 걸리는 지역 현실에 공감하면서 창설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1년 창설 당시 21명이던 자율방범대는 2023년 10월 현재 수습대원 포함 26명으로 늘었다. 특전사 3개 중대 규모가 임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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