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7월 말 2024년 정부 세법개정안이 발표된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에 주력하겠다고 한 가운데 재계에서는 상속세 감세를 1순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도 가업상속공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재계에선 명목세율 자체를 내리거나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에선 상속세 감세를 하되 5~10억원 등 상속세 하단에 대한 감세를 고민 중이며, 일각에선 자산 감세 대신에 투자세액공제를 늘려서 투자 촉진으로 세제 혜택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2022‧2023년 세법개정으로 큰 폭의 법인세 감세가 이어진 가운데, 정부여당의 상속세 감세, 야당의 법인세 감세가 이어지면 빈 나라 곳간은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주세와 담뱃세 인상이 부상하고 있다.
◇ 한국 국민 71%는 부유세를 원한다
세금은 그 경제적 작동원리가 무엇이든 국민적 동의와 필요성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핵심 의제는 부유세다.
국제기구 로마클럽이 주도하는 지속가능 성장 프로젝트 ‘어스포올’(Earth4All)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는 7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2024 G20국가 정상회의 주 의제인 부유세 도입과 관련 각국 국민의 찬반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G20국가 중 17개국 국민의 68%가 부유세 도입에 찬성했으며, 한국은 71%가 찬성의사를 밝혔다.
극심한 양극화는 저출생‧고령화 나아가 정치적 극단화를 야기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각국 국민들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부유세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사 결과는 G20 국가들에 부의 재분배라는 명확한 의무를 내리고 있다.”
(어스포올 이니셔티브 공동 책임자 오웬 개프니(Owen Gaffney))
“이 조사는 G20 국가 시민들이 더 나은 복지, 더욱 덜 불평등한 경제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는 점을 재차 보여주고 있다.” (어스포올 회장 겸 로마클럽 공동대표 샌드린 딕슨-데클레브(Sandrine Dixson Declèv))
◇ 재계는 상속세 감세가 투자‧고용을 확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부와 여당 재계는 부자 감세를 하면 투자와 고용, 소비 등이 늘어날 것이라는 감세 만능론을 제시하고 있다.
감세가 투자나 고용을 확대한다는 주장에 대한 연구가 여럿 있긴 하지만, 반대 연구에 비하면 소수이며, 어느 경제학 교과서, 주류 경제 이론에서도 감세가 경제 활성의 만능약이라고 보지 않는다.
다만, 연구의 엄밀성을 떠나 권력이나 정치적 이익에 따라 행동은 달라지는데 미국 내에서도 바이든은 법인세‧부유세 증세, 트럼프는 법인세‧부유세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4년 세법개정안은 상속세 감세를 마지막 기차라고 여겨지고 있다. 자산가‧대기업에 친화적인 정권 3년 차, 선거가 막 종료되어 아직 표심의 그림자가 남아 있을 때 단번에 상속세 감세를 뚫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부 내에서는 이번 세법개정안이 현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재부도 앉아서 경제단체들로부터 세법건의안을 접수받지만은 않았고, 민원해결사처럼 경제 주요 단체를 돌아다니며 재계의 건의를 접수받았다.
그런데 대기업 재계에서는 최상위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에 대한 시원한 답이 나오길 원하는 모양새였는데 정부 입장에선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최대주주 할증폐지를 하자는 방안이 있을 수 있고, 가업상속 공제대상 한도를 확대하자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5월 2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에선 상속세 과세 체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큰 틀에서의 빅딜을 제시하면서 단기적인 상속세 감세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재계가 요구하는 것처럼 파격적 상속세 감세를 하면 야당이 받아줄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렇다고 야당에 던져줄 것도 많지 않은 데 지난 4월 내년도 예산편성지침을 하달할 때 윤석열 대통령은 건전재정을 지키라고 지시했고, 최상목 부총리도 있는 예산도 보장할 수 없고 새 예산을 만들려면 있는 예산을 자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아오른 재계의 목소리는 6월 16일 성태윤 정책실장, 6월 24일 조세재정연구원 공청회에서 상속세율 50→30%,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의 형태로 튀어나왔다.
한편, 야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아닌 상속재산 기준 5~10억원 쪽 상속세 감세 정도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며, 상속세 최대주주까지는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 중진 쪽에서는 대기업 상속세 감세를 받지 않는 대신, 대기업에 대한 파격적 투자세액공제를 보장해주고, 여론 비판에 대비해 법인세 최고세율 찔끔 인상을 변명거리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어느 방향이든 부유세(자산가‧대기업) 증세가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과 상반된 모양새인데, 명분이 무엇이든 감세는 필연적으로 재정 손실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정학회에서는 세법개정안이 나오기 전인 7월 17일 담뱃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토론회를 개최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상속세 감세로 빈 곳간을 담뱃세로 채우는 형국이 되는데 이는 부유세에 대한 한국 국민 다수의 민의와 부합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세법은 국민 다수 민의와 다르게 움직이려는 형국인 셈이다.
정부는 7월 중 상속세 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본적으로 유산취득세 전환+알파 형태가 될 전망이며, 알파에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또는 완화, 상속세 명목세율 인하, 가업상속공제 확대, 대주주 주식 저가 상속 합법화 등이 담길 전망이다.
◇ 그 밖의 개정안들
상속세 감세가 워낙 강하게 부딪히긴 했지만, 2024 세법개정안에는 여러 감세안들이 나올 예정이다.
최상목 부총리가 직접 말한 ▲중소기업으로 인정되는 기간 3→5년으로 연장 ▲장기 민간 임대 확대는 물론 ▲자사주 증가분에 대한 법인세 공제 ▲배당소득세 저율 분리과세 대상 설정 등이 제시될 전망이다.
여당이 제기한 1주택 종부세‧금투세 폐지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현재 정부 내에선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세 폐지가 가장 유력하다.
맞벌이 가구의 근로장려금 소득요건을 홑벌이 가구(2200만원)의 두 배로 상향 조정하는 건 확실시 됐다. 기존에는 3800만원이라서 저소득 맞벌이가 결혼하면 장려금에서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 있었다.
서민에 대한 감세가 전무하다는 비판을 면피하기 위한 작업인데, 들어가는 예상 예산은 600억원 정도인데(기재부 추산) 한 번 조정할 때마다 수조원이 깎이는 상속세, 법인세, 종부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전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했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확대가 재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세무사회는 ▲소득세 기본공제액 확대(물가연동감세)와 공제액 적용 시 소득요건 완화 ▲상속세 동거주택공제 조정 ▲중소기업 결손금소급공제 대상기간 확대 등을 제안했다.
세무행정 관련해서는 ▲세무조사 사전통지 시 수임 세무사도 포함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세율 2% 인하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및 취업자 소득세 감면조정 ▲공익법인 사후관리와 기부금단체 재지정 요건에 성실신고확인서(세무사가 작성한) 제출도 포함 ▲상속세‧증여세 신고수수료 공제 등도 건의했다.
◇ 혼인도 양극화…결혼‧자녀공제 확대
지난해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에서도 양극화가 나오고 있다. 2017~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분석 결과 모든 연령대에서 소득 상위 10% 남성의 혼인 비율이 하위 10% 남성보다 월등히 높았다.
양 구간의 연령별 혼인율 격차는 20대 후반은 21%p, 30대 초반은 45%p, 30대 후반은 44%p, 40대 초반은 38%p, 40대 후반은 25%p 차이다. 즉, 혼인자녀 공제도 더 여유로운 사람들이 받게 된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혼인율을 끌어 올리는 게 아니라 혼인할 여유가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가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혼인 시 특별세액공제 ▲혼인으로 일시적 2주택자가 된 경우 1세대 1주택자로 간주하는 기간을 5→10년 확대 ▲자녀세액공제 각 10만원 인상 ▲자동차 취득세 감면 혜택 2자녀까지 확대 등을 발표했으며, 이는 2024 세법개정안에 담길 예정이다.
저소득 혼인 가구도 혜택을 받으니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혼인율을 올리지 못하면 출생률에서 큰 반향을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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