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으로 읽다_조경희
찌든 이불을 빤다
무거운 이불 한 채, 물에 불린다
모란 잎, 때 절은 이파리
고무통에 담그니 발바닥에 풋물이 든다
모란꽃이 쿨럭쿨럭 거품을 토해낸다
고무통 수북히 거품이 솟는다
맥을 짚듯 두 발로 더듬는다
삶에 찌든 내가 밟힌다
먼 기억 속 부드러운 섬모의 숲을 거슬러 오르자
작은 파문 일렁인다
나비 한 마리 날지 않는 행간
지난 날 부끄런 얼굴, 밟히며 밟히며
자백을 한다
좀체 읽히지 않던 젖은 문장들
발로 꾹꾹 짚어가며
또박또박 나를 읽는다
눈부신 햇살 아래 모란꽃 젖은 물기를 털어 낸다
어디선가 날아든 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꽃을 읽고 날아간다
詩 감상
이불 한 채 발바닥으로 읽는다
고무통 안에서 징겅징겅 읽는다
마음안에 풋물이 들도록 읽고 또 읽는다
여기에서 발바닥은 닫힌 세상과의 교감을 위한 수단이자
자의식에 갇힌 화자와의 통로이기도 하다
멀고 먼 기억 속에
팔랑, 나비 한 마리 날았던가
날지 않았던가
나를 자백하던 나비 한 마리
어느 날 꽃이 되기를 꿈꾸던
마음 속의 노랑나비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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