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방영석 기자) 보험업계 보험금 지급 분쟁의 ‘뜨거운 감자’였던 고지의무 이행 여부 판단에 대해 보험사의 책임이 대폭 강화된다.
금융당국이 고지의무 위반 입증책임을 보험사에게 부여한데 이어 정치권에서 보험사의 서면질문에 답변한 것으로 고지의무를 준수한 것으로 간주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사기의 핵심이자 보험사가 의도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두 얼굴’을 지닌 고지의무 이슈에서 소비자의 권한이 확대되는 만큼, 향후 이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업계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소비자정책위원회(공동위원장 정세균 국무총리, 여정성 서울대 교수)는 최근 보험계약자 고지 의무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계약자의 '자발적 고지의무'를 '응답적 고지의무'로 바꾸는 방식이다. 법무부 역시 정책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보험계약자가 보험사의 서면 질문에 모두 답변했을 경우에는 별도의 '자진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고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서면 질문에 답변하면서 고의로 중요 사항을 알리지 않는 경우에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정한다.
보험사의 서면 질문에 답변했더라도 보험금 수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거 병력 등을 고지하지 않을 경우 보험계약이 무효가 되는 현재와 비교해, 소비자에게 대폭 힘이 실리게 되는 셈이다.
위원회는 "보험상품이 복잡·다양하고 보험사가 보험 관련 전문성이 높은데도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정운천 의원이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를 줄이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된 바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나선 배경은 고지의무 문제로 매년 막대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쟁 건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생명보험은 2017년 5719건이었던 고지 의무 위반 관련 민원이 2019년 6681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손해보험은 8888건에서 1만4750건으로 증가했다.
보험 상품이 점점 복잡해져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현행법은 여전히 보험계약자에게 중요한 사항을 스스로 판단해 알리도록 '적극적 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소비자단체의 문제 제기가 호소력을 지녔던 것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미 ‘소비자 우선’ 보험 정책을 공식화, 이를 추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내년부터 보험소비자의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보험사가 입증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법무부의 상법 개정까지 동반될 경우 보험사 입장에선 고지의무 위반을 스스로 입증하는데 나아가 사전 질의서만의 답변으로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고지의무가 ‘부당이익’을 노리고 보험에 가입하는 보험사기의 근본적인 시발점이 된다는데 있다.
보험금 수령과 인과관계가 뚜렷한 질병 이력 등을 숨긴 채 가입심사의 문턱을 넘는 경우 이를 사후에 인지하더라도 대응할 방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장경쟁이 격화되며 간편심사 가입 등 심사 문턱을 낮춰 신규 가입자를 유치했던 보험사 입장에선 향후 ‘발등을 찍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공포’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업계는 고지 질병 이력을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확대하는 한편, 보험사가 청약 단계에서 소비자의 요양급여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제도를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사전 심사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양급여서에는 소비자의 최근 5년간 진료내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소비자는 청약서상 명시된 보험금 부지급사유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지의무는 기본적으로 역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보험산업의 ‘안전핀’ 역할을 했지만 이와 관련해 소비자와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보험사의 책임이 강화되는 만큼 보험사 입장에선 사전 고지의 기간과 범위를 확대하고 세분화하는 작업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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