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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규·판례] 대법 "피담보채무 변경, 후순위 채권자 동의 필요 없어"

"피담보채무 범위와 채무자 변경은 등기사항 아냐…당사자 합의만으로 효력"

 

(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부동산을 담보로 한 선순위 저당권자는 후순위 저당권자 등 다른 이해관계인들의 승낙이나 등기 없이도 채무자와의 별도 합의만으로 담보 채무의 범위를 변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기업은행으로부터 대출채권과 근저당권을 넘겨받은 한 유동화전문회사(SPC)를 상대로 농협은행이 낸 배당이의 소송에서 농협은행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중소기업 A 업체는 소유 토지에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1순위 근저당권자(채권자)는 2013년 온렌딩(중개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지원) 시설 대출을 비롯, 수년간 22건의 대출을 한 기업은행이 됐다. 2순위는 농협은행으로, 3·4순위는 다시 기업은행으로 등기됐다.

이 토지 위에 올라간 건물에도 근저당권이 설정됐는데 1∼3순위는 기업은행, 4순위는 농협은행에 돌아갔다. 그러던 중 A 업체의 대출금 변제에 문제가 생기면서 기업은행은 2018년 토지와 건물 경매를 신청했다.

1년여가 지난 뒤 A 업체의 토지, 건물, 기계 등 매각이 끝나자 경매법원은 배당금 73억여원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74억3천만원가량의 채권을 가진 기업은행은 약 59억4천만원을, 합계 24억2천여만원을 A 업체에 빌려준 농협은행은 13억5천여만원을 각각 돌려받게 됐다.

그런데 농협은행은 기업은행에 간 배당금 가운데 4억4천여만원이 자신들의 몫이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분쟁은 결국 이번 소송으로 이어졌다.

원고 농협은행 측은 2014년 A 업체와 대출 약정을 체결하면서 토지에 2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향후 완공될 건물에도 2순위 등기를 하기로 했으나 A 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의 근저당권이 2013년 온렌딩 대출 채무에 한정되는데도 경매법원이 중소기업자금 대출을 포함해 기업은행에 채권최고액(저당권자가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을 모두 배당했으며, 이 때문에 농협은행은 채권최고액 중 4억4천여만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채권을 넘겨받아 소송 피고가 된 SPC 측은 근저당권 설정 계약이 2015년 변경됐다고 맞섰다. A 업체와 기업은행이 2013년 최초로 근저당권을 설정할 때는 담보된 채무가 온렌딩 시설자금뿐이었지만 2년 뒤 합의로 피담보채무의 범위에 중소기업자금 대출도 들어가게 됐다는 주장이다.

1심은 농협은행의 주장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기업은행 측이 근저당권 설정 계약서를 분실해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으나 통상적인 채권최고액 설정 방식 등을 볼 때 근저당권은 온렌딩 대출에만 잡힌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 몫의 배당금은 4억4천여만원이 늘어난 18억원이 됐고, 2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유지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뒤집었다.

기업은행과 A 업체 사이의 근저당권 변경 계약서 등을 살핀 재판부는 "피담보채무의 범위를 변경할 때 후순위 저당권자인 원고의 승낙을 받을 필요가 없고 피담보채무의 범위는 근저당권 등기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당사자 합의만으로 변경의 효력이 있다"고 판시했다.

근저당권은 담보되는 채무의 최고액만을 정하고 실제 채무는 장래에 확정하는 저당권이므로 2013년 기업은행과 A 업체가 최초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뒤 나중에 채무의 범위를 조정한 합의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후순위 저당권자 등 이해관계인은 채권최고액에 해당하는 담보 가치가 근저당권에 의해 이미 파악된 것을 알고 이해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이런 변경으로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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