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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차량 번호판 색깔 바꾸면 탈세 막을 수 있을까?

윤 당선인 공약…“세파라치 말고 사적운행 검증 수단 없어” 회의론
국세청 “운행기록 앱 개발” 국회 제안에 “전례・현실성 없다” 시큰둥
리스 vs 렌트…3월말 법인세신고때 관련 법규, 바뀐내용 확인필수

(조세금융신문=구재회 기자)   대기업 대주주들이 ‘고급 외산 승용차(일명 수퍼카)’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개인적으로 이용하면서 관련 비용은 죄다 법인 비용으로 처리, 사실상 탈세를 해온 데 대해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편법 탈세를 막겠다”고 공약하자 해당 대기업 대주주들은 물론 수입차 업계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약 내용이 “법인 차량의 번호판 색깔을 연두색으로 바꿔 일반 차량과 구분하겠다”는 내용이라서,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집중 세무사는 28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법인차량 주유비를 개인 카드로 결재하면 해당 주유비는 당연히 법인 경비로 인정이 안되고, 법인 업무임을 일일이 검증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법인차량 번호판 색깔을 바꾸는 게 법인 수퍼카 사적 이용 탈세를 근절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지 의문”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김 세무사는 “법인카드와 해당 차량 운행 기록 등이 자동으로 연결된다고 해도 검증이 쉽지 않은데다, 렌트나 리스를 이용하면 법인 번호판을 안 달아도 되는데 법인차량 번호판만 구별한다고 해서 무슨 규제 실익이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법인 명의 차량은 연간 최대 800만 원의 차량 감가상각비와 최대 1500만 원을 경비 처리를 할 수 있다. 유류비와 보험료 공제도 가능하다. 여기에 차량운행기록부를 작성하면 추가로 경비인정(손금산입)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차를 개인이 몰고 다니면 회사 돈으로 좋은 차도 사고 세금도 아끼고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윤 당선인 공약인 법인 차량 번호판 색상 교체에 대한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개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국토교통부가 '자동차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만 바꿔 공지하면 된다.

 

그런데 법인 차량 색깔의 번호판을 부착한법인 차량을 업무에 상관없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거나, 가족이 운전하면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속칭 세파라치를 통해 해당 사실이 국세청 등에 제보되거나, 언론을 통해 망신주기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내국법인이 업무용 승용차 관련 비용을 비용 처리하면서 관련 비용 등에 대한 명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가산세를 물리는 조항이 법인세법에 신설 반영됐지만, 과세당국이 해당 명세서를 검증할 행정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김집중 세무사는 “수퍼카를 탈 정도 되는 대기업 대주주들은 일단 최대한 그럴듯하게 차량운행명세서를 작성, 과세당국에 제출하고 문제가 되면 그냥 가산세를 내고 해당 대주주나 임원에게 상여금 처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주주 등이 사적으로 이용했는지를 시스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 없이 그저 과세당국이 ‘언제든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 뿐이라는 설명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기업 대주주들이 수퍼카를 법인 명의로 구매해 개인이 유용하는 경우가 늘자 번호판 색을 달리해 편법 탈세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의 공약을 내놨었다. 하지만 당선인 인수위원인 이용호 국회의원이 발의했던 법인 소유 고가승용차 관련 비용 부인 법안은 지난해 정기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주주 마음대로 기업을 운영하는 법인이 대부분인 한국에서는 법인 대주주나 법인 사주가 법인 명의로 수퍼카를 구입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 돼 있다.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람보르기니·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소위 수퍼카 판매가 재작년보다 무려 10~30%가량 늘었다. 게다가 작년에 팔린 차량의 80% 이상이 법인 명의로 차를 산 것으로 확인됐다.

 

법으로 의무화 된 차량운앵 관련 증빙을 허위로 작성해도 잡아낼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회에서 법인차량에 대한 사적 이용을 가려낼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국세청은 제도 개선이 더 중요하고, 그런 시스템을 의무화 한 나라는 없다며 난색을 표했던 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당시 국세청에 “해외 주요국의 정책사례 등을 참고해 업무용승용차량 운행 자동기록 집계 애플리케이션 시스템 도입 등을 검토할 의향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국세청은 당시 “미국에서 일부 관련 신고용 참고자료로 앱을 활용하는 것을 파악했지만, 해당 시스템이 의무화 된 것은 아니었고 다른 나라 사례도 없다”고 답변했었다.

 

업무용 승용차 관련 법률 개정 이후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일부가 바뀌어 4일 남은 3월말 법인세 신고 마감 전에 한번 더 체크 해 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상술 세무사(법무법인 평안)는 “법인이 리스 또는 렌트로 차량을 빌려 사용할 경우 각각 감가상각비 상당금액을 계산하는 방식이 다르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김 세무사에 따르면, 우선 리스차량은 임차료에서 보험료와 자동차세, 수선유지비를 차례로 뺀 금액이 감가상각비 상당액이 된다. 수선유지비 구분이 어려우면, 임차료에서 보험료와 자동차세를 뺀 금액에 7%를 곱한 금액을 수선유지비로 계상할 수 있다.

 

렌트차량은 차량 임차료에 70%를 곱한 금액을 감가상각비 상당액으로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업무용 승용차를 처분하면서 본 손실을 비용으로 보지 않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지난 2020년 2월11일 관련 규정이 바뀌었는데, 종전에 있었던 ‘사후관리기간 10년 규정’이 삭제된 것. 이에 따라 비용부인(손금불산입) 금액은 해당 사업연도의 다음 사업연도부터 800만원을 균등하게 손금에 산입하고 ‘기타’로 소득처분 해야 한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경향신문 기자 출신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지난해부터 줄곧 수퍼카 탈세 근절을 주창하면서 관련 법안까지 마련, 입법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용호 의원은 지난해 업무용 승용차 취득 당시의 가액 또는 시가표준액이 1억원을 초과하거나 같은 법 시행령에서 정하는 리스나 렌트 임차료를 초과하는 경우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손금불산입) 내용의 법안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법인세법 시행령’에 따라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이 업무용승용차의 관리·감독을 위해 운행실태를 점검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국회를 최종 통과한 법인세법에는 올해부터 내국법인이 업무용 승용차 관련비용을 비용처리(손금산입) 하면서 관련비용 등에 관한 명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가산세를 물리는 조항만 새로 반영됐다.

 

공정과 상식을 모토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법인 명의 고가승용차에 대한 비용 인정 제한(국회)도, 차량운행기록 자동수집방식(국세청)도 모두 빠뜨린채 ‘법인차량 번호판 색깔 바꾸기’만으로 법인차량 사적이용에 따른 탈세를 막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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