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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슬기로운 와인한잔] 애별리고(愛別離苦), 슬픔이여 안녕…

 

 

(조세금융신문=이진우 소믈리에) <지난 호에 이어> 

 

세상에는 별별(별의별)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힘들고 아픈 별(別)은 이별(離別), 작별(作別), 결별(訣別), 고별(告別), 사별(死別), 석별(惜別), 송별(送別), 상별(相別), 한별(恨別), 월별(遠別), 원별(遠別), 애별(哀別), 구별(久別), 야별(夜別), 영별(永別) 등 무수히 많은 헤어짐과 관련된 별일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모든 헤어짐을 중생이 겪는 여덟 가지 괴로움 팔고(八苦) 중 하나로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23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업에서 저의 20대~30대를 함께한 사랑하는 형님 한 분이 운명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40대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보자며 와인 한잔 기울인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큰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통한 이별의 경험이 없었던 저에게는 충격을 넘어 그 이상의 찢어지는 아픔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있었고 있어야 되며 앞으로도 있을 당연함 속에서 던져진 비보는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에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동반하며 심장을 찌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당연히 함께할 인연의 부재가 전하는 아픔이 있는 분들께 위 내용과 연계될 수 있는 한병의 와인을 추천합니다.

 

평소에 가장 사랑하는 이도 ‘당연히 내 옆에’라는 일상적인 안도의 반복을 진행하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아픔을 겪은 경우처럼, 와인 중에서도 너무도 뜻깊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와인이다 보니 주류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에게 눈으로만 보고 스쳐 지나가는 와인들이 많습니다. 이 부분은 이별하게 된 사람이 바쁜 일상 속에서 기억에서 잠시 사라지는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샤또 샤스 스플린’

 

위 내용에 부합되면서도 이별과 슬픔에 가장 연관된 와인 하나로 꼽자면 CHATEAU CHASSE SPLEEN(샤또 샤스 스플린)을 우선적으로 추천합니다.

 

불어로 되어 있는 Chasse(샤스)-내쫓다, Spleen(스플린)-우울이란 뜻으로 1820년 George Gordon Byron(조지 고든 바이런)이 프랑스 지방 도로를 누비며 혁명을 지원하다 지금의 와이너리에 방문하여 성대하게 환영 받은 후 한병의 와인을 마시며 “Quel remede pour chasser le spleen(우울함을 쫓아버릴 굉장한 약)” 즉, “우울증(Spleen)을 쫒는(Chasser)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라는 극찬에서 착안해 샤또 오너가 지금의 상품 명칭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됩니다.

 

또한 상징파 시인으로 알려진 Charles-Pierre Baudelaire(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고질적인 정신장애의 속에서 이 와인을 마시며 고통을 해결해 갔고 ‘슬픔이여 안녕’이란 뜻으로 재해석하였으며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인 프랑스 화가 Odilon Redon(오디롱르동)도 너무 사랑한 한병의 와인으로 꼽으며 더욱더 유명해졌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The Drops of GOD)’ 만화 7권에 등장하며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주문처럼 마시는 와인으로 국내 와인 애호가에게 인기와인으로 식음 매장에서 코딩이 되면서 더욱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샤또 샤스 스플린의 원산지를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레드품종으로 까베르네쇼비뇽, 메를로, 쁘띠베르도, 까베르네 프랑의 절묘한 조화로 블랜딩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보르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르도 내에서도 그랑 크뤼 클라세(GCC) 1등급~5등급의 마고, 뽀이약, 쌩쥴리앙, 쌩떼스테프 사이에서 강을 벗어나 좀 더 내륙 쪽으로 들어간 지역 물리-장-메독(Moulis-en-Medoc)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중에서 만나실 수 있는 2017 빈티지의 포도품종 비율은 까베르네쇼비뇽 50%, 메를로 41%, 쁘띠 베르도 6%, 까베르네 프랑 3%입니다.

 

샤또 샤스 스플린의 묘한 매력에 빠진 이들 중 대부분이 아티스트가 많아서인지 매년 빈티지마다 각기 다른 아티스트의 유명 싯구를 기재하고 있다는 것도 마시는 와인의 풍미를 넘어 눈으로 보는 레이블에서는 2차 감동을 선사합니다. 물론 빈티지별로 불어, 영어로 되어 있어 즉흥적인 해석이 힘들 수 있다는 점은 참고 해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인상 깊었던 빈티지별 싯구절을 들자면 2000년 빈티지(이 와인을 마시는 것은 천년의 추억을 가지는 것과 같다), 2001년 빈티지(오 육체는 슬프지만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다), 2002년 빈티지(슬픔이 나를 고향을 떠나게끔 방랑케 하였고, 슬픔은 모든 곳으로부터 내게 다가왔지만 난 그래도 좋다), 2003년 빈티지(행복하여라, 멋진 항해를 한 사람 율리시스처럼), 2004년 빈티지(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이 서글픔은 무엇 때문인가?), 2015년 빈티지(예술과 와인은 자유인의 가장 큰 기쁨이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샤또 샤스 스플린의 레이블이 전하는 숨겨진 재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레이블 정면 이미지(샤또 이미지) 위에 사자형상을 한 이미지가 2005년까지 있다가 2006년부터 CHS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9년 빈티지부터 정면 와인 레이블 하단에 ‘CELINE VILLARS FOUBET’라고 기재가 되기 시작했는데 부인(Celine Villars)과 남편(Jean-Pierre Foubet)의 ‘빌라스’ 가문이 2009년부터 소유하며 추가 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샤또 샤스 스플린을 빈티지별로 수집하는 수집가분들께는 2003년을 꼭 추천해드립니다. 빈티지 자체가 보르도 그레이트 빈티지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2003 빈티지가 레이블 상에서 Moulis en Medoc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빈티지입니다. 또한 다른 2004년 이후부터 표기되는 빈티지의 컬러가 빨간색으로 바뀌는데 2003이 검은색상 빈티지로 표기되는 마지막 빈티지이기도 합니다.

 

위 언급된 정보와 함께 다시 언급하고 싶은 저의 소중한 이의 떠나간 슬픔을 다시 샤또 샤스 스플린과 연결하고 싶습니다. 나와 우리를 떠난 사랑하는 형님은 흔들림 없는 외유내강, 이름 석자를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주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임하였던 탐구인, 또 대중적임을 벗어나 본인만의 취향이 확고했던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추천해드린 샤또 샤스 스플린과 더 없이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상황에 따른 슬픔과 아픔이 있을 때 보내기 위함, 잊기 위함, 회상하기 위함의 한잔!

매 빈티지마다 표현되는 싯구의 의미 해석으로 마음의 한잔!으로 곁들임에 샤또 샤스 스플림을 더욱 더 추천드려 봅니다.

 

 

 

[프로필] 이진우

• ShinsegaeL&B 재직중(Hotel/Fine Dinning 전문 세일즈 및 교육)
• 건국대학교 산업대학원(생물공학과 와인양조학 석사)
• 한국 소믈리에 협회 홍보실장 역임
• Germany Berlin Wein Trophy 심사위원 역임
• 한국직업방송 ‘소믈리에 가치를 선사하다’ 출연
• 전) The Classic 500 Pentaz Hotel Sommlier 근무
• 전) Grand Hyatt Seoul Hotel 근무
• 전) Swiss Kirhoffer Hotel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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