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목록

국가기관 소비자 보호인식의 변화 보여야

크기변환_크기변환_조남희 회장.jpg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조세금융신문)1980년대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가 실버타운(노후생활의 집) 입주 우선권을 보장한다고 국민들에게 홍보해서 이를 믿고 가입한 우체국 연금보험 가입자들이 실버타운 건립계획 무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2월 13일 대법원이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홍보안내문 등을 통한 광고는 청약 유인으로서의 성질을 갖는 데 불과하다”며 “당사자 사이에 묵시적으로라도 광고 내용을 연금보험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경우라면 광고내용이 계약의 내용에 포함되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
다.


참으로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 가는 어처구니 없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외면한 채 국가의 입장만을 비호하는 편향적인 판결로 매우 실망스럽다며, 앞으로는 소비자들이 허위광고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갖게 된다.


1984년 체신부는 보험과장, 체신금융국장, 오명차관, 장관의 결재로 ‘노후 생활의 집’ 추진계획 입안했고 1984.12월에는 체신연금보험 상품을 기획하여 장관결재를 받았다.


1985.1월 ‘체신보험 가입자를 위한 노후생활의 집 추진’이라는 오명장관 결재서류에서 이천과 여주의 후보지를 선정했고, 1986.8월 ‘체신보험동산 설계 안 확정’이라는 서류에서는 설계를 현상 공모하여 건물 설계를 조치하는 등 국가가 토지매입과 설계 및 건설추진 등을 확정하였으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행이 미뤄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대한 진행이나 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계약의 내용이 아니었다는 비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일개 개인도 하지 않을 약속 불이행을 국가가 버젓이 했는데도 ‘국가의 책임’은 없다고 한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고 어느 국민이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통탄할 판결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공공기관과 금융사들의 허위광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 소비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가속될 전망이다.


체신부는 1985년 5월부터 1991년 3월까지 약 5년 11개월 동안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했는데, 문제가 된 ‘노후생활의 집’은 1984년 우정사업본부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를 위해 “연금보험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실버타운을 전국 9개소에 건립하고, 가입자들이 실비만 내면 노후에 입주하여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체신부는 ‘노후생활의 집 추진 계획’을 수립하여 1984년 9월 27일 국무회의를 통과를 거쳐 10월 2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이를 근거로 체신부는 보장내용에 연금지급연령 도달 후 생존시 생존연금 지급 및 ‘노후생활의 집’ 입주자격 부여가 명시된 ‘행복한 노후보장연금보험’을 판매하면서 가입자들에게 ‘노후생활의 집 입주우선권 부여’를 제시 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당초와 달리 무산되면서 ‘노후생활의 집’은 한 곳도 건립되지 못했고, 결국 체신부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어, 이를 믿고 가입한 가입자들만 허공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 동안 우정사업본부는 연금보험 가입자들에게 ‘노후생활의 집’ 계획 무산에 따른 중간 안내를 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노후가 도래되면서 연금보험 가입자들의 입주 요구가 있었지만 ‘약관에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 아무런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자, 2011년 12월에 감사원은 ‘우체국 연금보험상품 판매 부적정’으로 우정사업본부장을 주의 조치하였고, 2012년 9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광고내용은 소비자와 체신부간에 보험혜택 이행을 위한 약정으로 볼 수 있고, 광고내용의 불이행은 계약 불이행의 문제’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나 몰라라 하면서 보상을 차일피일 미뤘고, 관련부처장관은 우정사업본부로 떠넘기며 방치해 왔다.


그래서 일부 가입자는 2011년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계약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1심 소송에서 화해권고(위로금 500만원) 후 기각됐다. 그러나 2013년 1월 2심에서 원고 주장이 일부 수용되어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다.


이에 원고들은 보상금액이 너무 적다고 판결에 불복했는데, 이번에 대법원은 “계약체결 당시 묵시적으로라도 노후생활의 집 입주권과 관련한 내용을 계약의 내용으로 하기로 하는 합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계약내용에 입주권 보장 의무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가입한 후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가입자들은 약 3300명(2011년 5월 기준)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충분한 준비없이 보험을 졸속 판매하면서 문제가 발생되었고, 불완전판매와 책임회피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우체국을 비호하는 법원의 편향적 판결로 경제적 약자인 금융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일보 후퇴했다.


만일 민영보험사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법원이 동일한 내용으로 판결했겠는가? 라 는 의문과 함께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개인, 기업, 국가라는 경제 주체들은 본의 아니게 판단이나 정책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간에 분쟁 발생시 조정되지 않는 경우 부득이 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분쟁의 대상이 국가인 경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나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경험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상급심으로 갈수록 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법부가 국가의 손을 더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인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국가가 공익 가치를 어느 주체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국가라고 해서 반드시 책임이 없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사법부의 판결이 수십 년 후가 지난 현재 나온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아가 이러한 판결의 우려가 현 시점에서도 발생하고있다면 상식적으로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1985년에 체신부(국가)가 우체국 연금보험 판매 시 전문 인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판매하면서 가입자에게 향후 실버타운 입주 우선권을 주겠다고 대대적으로 신문 등에 마케팅을 하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 약속은 아무런 해명도 없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현재의 우정사업본부의 무조건 책임을 면피하려는 모습은 국가기관으로서 옳지 않다고 본다.


과거의 정책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야 말로 국가의 신뢰를 더 얻을 수 있는 것인데도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재 일반 기업에서는 전혀 용납되지 않는 것이고 소비자를 너무 경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법부가 약자인 소비자들에게 법적인 형식논리나 공익성을 지나치게 내세워 편향된 관점으로 법의 잣대만을 적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편향적인 판결로 인하여 사회의 갈등이 증폭되거나 불만들이 누적될 때, 사법부의 신뢰는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우체국 연금보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나 우정사업본부의 태도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 금융소비자연맹 이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