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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통영의 봄맛, 도다리쑥국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봄날, 통영에 가면 최소 하루나 시간 여유가 있으면 이틀은 묵고 와야 한다. 사시사철 볼거리 많고 먹을 것 풍부한 곳이기에 어느 계절에 가도 실망하지 않지만, 특히 봄날에 갈 때는 가급적 숙소도 시내 가까운 곳으로 정하고 미륵산에 올라 흐드러지게 핀 달래 꽃놀이와 사방으로 펼쳐지는 섬섬옥수 봄 바다 풍경에 실컷 취하며 하루를 유유자적 보내도 좋다.

 

해 넘어갈 시간이 되면 시내로 돌아와 꿀빵 한 잎 베어 물고 어슬렁어슬렁 강구안을 걷다가 파장 무렵 중앙시장 한쪽에 있는 노천 활어시장에 들러 횟감도 뜨고 소주도 서너 병 사서 숙소로 돌아간다. 파장 무렵 노천 시장은 말 그대로 털이 판이다.

 

 

몇만 원어치만 사더라도 족히 네댓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이렇듯 시장에서 저렴하게 사다가 직접 차려도 통영의 봄밤 술상은 푸짐하다. 술 한잔 곁들이는 것은 당연지사. 직접 차려 먹기 귀찮다면 다찌집을 들러도 좋다.

 

그날 잡은 싱싱한 해산물이 한 상 가득 차려지는 통영 다찌집은 전주 막걸릿집, 진주 실빗집처럼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딸려 나오는 시스템인데, 나오는 음식의 가짓수도 적지 않지만, 한결같이 술을 부르는 안주들이어서 애주가들에게 통영 다찌집은 그야말로 주유천국(酒遊天國) 이다.

 

전날 과음을 했어도 통영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호시장을 비롯해서 새벽 6시면 문을 여는 해장국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통영에서의 해장국은 졸복국도 좋고 시락국도 속을 풀어내기에 그만이다. 하지만 봄날, 통영에서의 해장은 무조건 도다리쑥국이다.

 

사실은 도다리쑥국을 먹기 위해 전날 주저 없이 과음도 했고, 시내로 숙소를 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도다리쑥국을 먹기 위해 봄 통영을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게있어 도다리쑥국은 해장국으로 진심이다. 도다리쑥국은 통영 앞바다 섬에서 해풍 맞고 자란 쑥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를 넣고 담백하게 끓여내는 계절 별미다.

 

 

 

 

보통 3월에서 5월까지만 맛볼 수 있는데, 이 시기가 되면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인근에 있는 식당들에서는 대부분 도다리쑥국을 내놓는다. 그 가운데 분소식당이 도다리쑥국 잘 끓이기로 유명했는데 팬데믹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분소식당이 아니라도 통영에는 도다리쑥국의 원조 지역답게 잘 끓이는 곳이 많다. 서호시장 인근에서 분소식당과 쌍벽을 이루던 통영식당은 여전히 봄이 되면 도다리쑥국을 메뉴로 올리고 있고, 중앙시장 인근 노포 동광식당과 무전동 팔도식당도 도다리쑥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다리쑥국은 이제 전국적인 봄철 음식이 되어 서울에서도 손쉽게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통영에서 먹는 본연의 맛에 비할 수가 없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도다리와 바다향 가득 머금은 섬 쑥, 그리고 정겨운 풍경과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남다를 수밖에. 통영에서 맛보는 도다리쑥국이 그렇다.

 

특히 한시적으로 두어 달 봄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시기가 지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니 이때가 되면 뇌리에서 그 맛이 되살아나 조바심 내는 까닭이다.

 

도다리쑥국으로 속도 풀고 배도 채웠다면 소화도 시킬 겸 통영 시내를 둘러보자. 서호시장과 중앙전통시장도 둘러보고, 중앙시장 옆 골목 계단 길을 따라 동피랑 마을에 올라 시원스레 펼쳐지는 강구안 전경도 감상하고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해저터널도 걸어서 건너볼 만하다.

 

강구안과 중앙시장, 그리고 서호시장


강구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가운데 한 곳이다. 항구 주변으로는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난전이 활기차며 유유자적 오가는 고깃배들의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구안 뒤쪽에 있는 중앙시장에서는 싱싱한 해산물과 건어물이 풍성하여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서호시장은 오래전부터 통영의 대표적인 새벽시장으로 다도해 많은 섬을 오가는 여객선터미널 뒤쪽에 있다.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은 시락국을 비롯하여 졸복탕, 도다리쑥국, 성게비빔밥, 충무김밥 등 통영을 대표하는 다양한 음식이 탄생한 곳으로 그로 인해 통영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달동네 마을 동피랑


비탈 지역을 일컫는 말이 ‘벼랑’이고 벼랑의 경상도 사투리가 ‘비랑’이다. 동쪽 비탈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곳이 바로 동피랑 마을이다. 강구안이 있는 중앙시장에서부터 비탈진 언덕 위까지 계단 길을 따라 마을이 이어진다.

 

 

오르는 골목길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림을 따라 골목길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이곳은 서민들의 오랜 삶터로서 그들의 애환과 고단함 또한 그대로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 정상 언덕이 나타난다. 이곳에 올라서면 쉴 새 없이 오가는 배들과 그 배들을 맞이하는 강구안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산 시설 해저터널


통영과 미륵도를 육로로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시공된 적산 시설이다. 통영으로 이주해오는 일본 어민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위해 만든 터널로, 그 길이가 483m에 이르며 동양에서 최초로 시공한 해저터널로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다.

 

 

광복 후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해저터널은 미륵도와 통영을 오가는 육로로 이용되어 왔다. 터널 입구에는 한자로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당시 터널 건설을 주도했던 일본인 군수 휘호로서 적산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현)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현)창작집단 '슈가 볼트 크리에이티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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