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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팔꿈치 절단 딛고 '요식업계 큰손 등극' 백세장어마을 윤명환 대표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몸에 좋다는 여러 보양식을 찾게 된다. 장어도 그중 하나다. 부천에서 꽤 많은 손님이 찾는 ‘백세장어마을’은 상동 웅진플레이도시 워터파크 앞에 자리하고 있다. 평일 점심에도 꽤 많은 손님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사업가 윤명환 대표 이야기

 

백세장어마을 윤명환 대표는 현재 7년째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전 창업자가 5년간 운영한 것을 이어받았으니 합치면 12년째다.

 

이곳뿐 아니다. 같은 웅진플레이도시 내에 자리한 중식집 ‘The 차이나’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삼산동에는 고깃집 ‘백세미소가’를 창업해 현재 아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요식업계에 발을 디딘 지는 벌써 16년째다. “요식업 창업을 하는 사람들의 70%는 망하고, 20%는 밥벌이 정도 하고, 10%는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윤 대표는 요식업계에서 나름 성공한 CEO다.

 

처음 요식업을 시작한 것은 한창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2002년이다. 윤 대표는 당시 매우 절박한 마음으로 요식업계에 첫발을 내밀었다. 이전에 큰돈을 모아 투자했던 의료사업에서 실패한 이후다.

 

처음에는 직장인으로 출발했다. 인천전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윤 대표는 1985년 린나이코리아에 입사해 생산팀에서 일했다. 주임으로 승진했던 그는 프레스 생산 설비에서 팔꿈치 아랫부분의 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결국 한쪽 팔을 잃고 말았다.

 

이후 총무부로 자리를 옮겨 차장으로 일하며 회장의 총애를 받았으나 회사의 CEO가 회장 아들로 교체되면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다행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식과 경매에 투자하면서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주식은 1억원으로 시작해 한때 15억원까지 수익금을 불렸으나 결국 원금만 회수하고 모두 털고 나왔다. 하지만 경매는 달랐다. 좋은 물건을 볼 수 있는 안목을 늘려 적지 않은 수익이 나왔다.

 

윤 대표의 자본 투자는 린나이코리아 재직 이전인 1998 IMF때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현금이 귀한 시기여서 회사에서 발행한 어음을 제때 막지 못해 부도로 인해 문을 닫는 회사가 즐비했다.

 

하지만 은행에서도 어음을 받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업 대표들은 거의 반값으로 어음을 할인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윤 대표는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좋은 기업을 골라 어음을 할인해 주고 만기에 원금을 되찾는 방법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

 

린나이코리아에서 퇴직한 이후 큰 형님이 이사로 재직 중이던 모 병원법인에 투자금을 댔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50:50으로 배분받기로 한 윤 대표는 병원법인 등기이사로 함께 일하게 됐다. 병원 운영은 잘 됐다. 모든 병실에는 환자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익금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했다. 오히려 윤 대표를 통해 인출되어 병원 운영에 쓰이던 자금의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운영자금을 한 푼도 가져간 일이 없던 그에게 병원에서는 횡령 등의 혐의를 씌웠고, 소송 전에 휘말리면서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동안 어음 할인과 주식투자, 경매 투자 등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이곳에서 모두 잃게 됐다. 매년 5억씩 5년간 투자한 금액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병원법인도 재단도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제 인생에서 팔을 절단당하는 사고 이후 가장 큰 아픔을 당한 시기였습니다.” 윤 대표의 말이다.

 

그래도 그냥 지낼 수는 없었던 윤 대표는 2007년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아 인천광역시 효성동에 ‘이바돔감자탕’을 창업했다. 실평수 87평 정도의 제법 큰 식당이었다. 약 3년 정도 운영하면서 흑자는 계속 났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윤 대표는 2010년 식당 근처에 ‘대감 숯불갈비’를 또 하나 열었고, 부평에 ‘구이구이오리야’도 창업했다. 결국 3개의 식당을 병행하는 모험을 단행했고 꽤 성공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이후 이바돔 감자탕은 직원에게 인계하고, 구이구이오리야는 동생에게 운영을 넘겼다.

 

이바돔감자탕에서 함께 일하던 부장급 직원과 함께 일산에 삼겹살 전문 식당인 ‘종로상회’를 창업했다. 이곳은 나중에 프랜차이즈로 발돋움했다. 가맹점이 120개로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를 운영할 계획이 없던 윤 대표는 프랜차이즈 운영을 공동 창업자에게 넘기고 본인이 창업했던 본사도 매각했다.

 

2014년에는 송도에 자리한 일명 함바식당을 운영했다. 기존 식당을 인계받을 당시에는 하루 고객 700명 정도였으니 꽤 큰 규모였다. 윤 대표가 운영을 맡은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본사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손님도 대폭 늘었다. 하루 1300여 명이 찾아올 정도였다. 약 15개월간 운영한 함바식당은 또 다른 주인에게 인계했다.

 

백세장어마을의 가능성을 보다

 

이후 부천 상동 웅진플레이도시 백세장어마을을 인수했다. 워낙 큰 자금을 들여야 했기 때문에 고민되었지만, 꼭 이곳을 인수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당시에는 모아 둔 돈을 모두 투자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모한 투자라고 말렸지만, 저는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큰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인수 이후 손님이 가장 많던 때에는 하루 매출이 3000만원 정도였습니다. 최대 30명에 이르던 직원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18명으로 줄었습니다. 손님도 예전보다는 적어졌고 매출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가 식당을 찾아간 날, 윤 대표는 매우 바쁘게 홀과 계산대를 오갔다. 직원들이 여름휴가로 많이 빠져서 손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도 이곳에서 함께 일한다.

 

윤 대표는 아무리 바빠도 운동시간을 하루 4시간가량 유지한다고 한다. 5시 30분에 기상해 아침 출근 전에 2시간가량 집 주변을 뛰거나 헬스클럽을 찾아 땀을 흘리는 일을 거의 매일 쉬지 않는다. 마라톤과 등산, 자전거, 헬스 등 모든 운동을 즐기고 있다.

 

오른쪽 팔 절단으로 의수를 착용하는 그가 최근에 빠진 운동이 바로 골프다. 왼손 하나로만 골프채를 잡고 스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이제 골프에 입문한 지 6개월 되었지만, 엊그제 다녀온 발안 발리오스CC 라운딩에서 86타를 기록했다고 한다.

 

거리는 내기 어려워도, 왼손만으로 86타

 

드라이버 거리를 내기는 어려워서 레이디티에서 티샷하지만, 아이언이나 어프로치, 퍼트 등에서 정확도가 꽤 높은 편이며, 특히 벙커샷은 자신이 있다고 한다.

 

윤 대표는 가장 보람 있는 일로 로터리클럽의 봉사활동을 꼽았다. 현재 3690지구, 3지역, 인천북부 RC 소속으로 10년째 몸담고 있다. 인천북부RC 회장과 지역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3690지구 임원으로 활동하며, 장학금 지급, 불우이웃돕기 등 봉사활동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식당을 운영 중인 아들과 출가한 딸에게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라’고 강조한다는 윤 대표는 앞으로의 기대와 소망에 대해 질문하자 “비록 냉담자지만 천주교인으로서 큰 욕심 없이 현재처럼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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