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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명 헬기, 한동훈 헬기, 이재용 헬기…누구를 비난하시겠습니까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치명상을 입은 야당 대표가 의료헬기를 이용한 것을 두고 특혜라는 시각이 있다.

 

치명상은 생명과 관련된 일이고, 생명은 원초적 문제다.

 

원초적 문제를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역지사지다.

 

예를 들어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만, 내 가족이, 내 자녀가 치명적 부상을 입었다고 가정하자.

 

헬기로 병원 이송을 할 수 있다면, 어느 부모가, 어느 자녀가 하지 말라고 할 것인가.

 

운 좋게 헬기 태워 보냈는데, ‘저거 누구 끈 써서 한 게 틀림없어, 내가 알아’, 누가 이렇게 비아냥댄다면 멱살을 붙잡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야당 대표는 의전서열 7위인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서열 동위이다.

 

이 역시 있어서는 안 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헬기로 이송됐다고 해보자.

 

그 때도 ‘권력이 참 좋네’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재용 헬기는 또 어떤가. 당신은 비난할 수 있는가.

 

나는 못 하겠다.

 

나는 불편해하는 심정의 원천을 이해한다.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 불안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야당 대표 헬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 불안감의 원천은 우리 응급의료시스템의 빈약함이다.

 

응급헬기와 외상의료진이 턱 없이 부족해 헬기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

 

사람 살리는 일인데도 응급헬기 소음 민원을 넣어 이용을 막는 것.

 

생명의 위기에서 빈부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생명 구호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불안감의 정체다.

 

이국종 교수가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을 맡고 있던 시절.

 

경기도지사들 가운데 닥터헬기를 마련해 준 건 이재명 지사뿐이었다.

 

지금 언론이나 여론이 물어야 할 질문은 이런 거다.

 

왜 닥터헬기는 충분히 보급이 안 되는 겁니까.

 

왜 우리는 외상외과 의료진들에게 충분한 자원과 병상을 내주지 않는 겁니까.

 

왜 우리는 응급치료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겁니까.

 

왜 우리 응급의료 시스템은 이토록 차가운 겁니까.

 

 

정치와 언론은 투쟁의 공간이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인간다움을 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가축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야당 대표라서, 여당 비대위원장이라서, 재벌이라서가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라면 헬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

 

그렇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게 인간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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