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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의료 대란' 오나...전공의 수천 집단사표에도 정부 강경태세

세브란스·대전성모 등 무더기 사직, 20일엔 근무중단 예고...경찰청장 "구속수사 검토"
수술 절반 줄어들며 환자들 '발만 동동'…"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천명이 19일 수도권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사직서를 무더기로 제출하고, 일부는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현장 붕괴가 표면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내리면서 '법대로' 원칙을 강조했고, 경찰청장은 주동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검토하겠다며 엄정 수사할 방침이다. 또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고발 방침을 정하고, 의대증원 찬성 목소리를 모을 '촛불집회'를 열겠다는 입장이다.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뿐만 아니라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의 대규모 집단사직이 현실화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예고했던 대로 이날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잇따르면서 1천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전공의협은 빅5 전공의 대표와 논의한 결과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공의협은 20일 정오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0∼40% 상당인 160여명이, 서울성모병원은 290명 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고, 서울아산병원 역시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578명 중 상당수가 사직 의사를 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공의협에서 예고했던 날보다 하루 전날부터 상당수 전공의가 근무를 중단한 세브란스병원은 600여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고, 서울대병원은 과별로 제출한 사직서 등을 집계하고 있는 중이다. 구체적인 숫자는 병원마다 집계차가 있으나, 서울에서만 최소 1천명은 훌쩍 넘길 것이 확실시 된다.

 

지방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들 사직 행렬이 이어졌다. 경기도에서는 서울대병원의 분원인 분당서울대병원 소속 전공의 110여명, 아주대병원 전공의 13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천에서는 인하대병원이 100명, 가천대길병원 71명, 인천성모병원 60명 등이 사직 의사를 표명했다.

 

전북대병원도 전공의 189명, 원광대병원 126명, 전남대병원에서 224명, 조선대병원에선 10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강원지역도 강원대병원 64명, 원주세브란스병원 97명, 강릉아산병원 19명 등 전공의들 사직이 이어졌다.

 

경남은 양산부산대병원 138명, 진주경상국립대병원 121명,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71명, 창원국립경상대병원 21명 등 4개 병원 전공의 351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울산에서는 울산대병원 25명이, 대구에서는 영남대병원에서 65명이 사직서를 내면서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대전성모병원 47명, 대전을지대병원 42명 등 대전 지역도 전공의들이 사직을 표했고, 제주도는 제주대병원 전공의 73명, 한라병원 소속 전공의 13명 중 상당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를 모두 합치면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단호하게 "증원폭 축소는 없다"고 밝히고, 의협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등 집행부 2명에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이들은 의사들의 '집단행동 교사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행정처분 대상이 됐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첫 사례인데,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현장을 지켜달라고 당부하면서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에 대해서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며 '충격적', '참담함' 등의 표현을 쓰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 복지부는 "더 나은 여건에서 의사의 꿈을 키우고 과중한 근로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과 수련을 받도록 이번엔 반드시 개선하겠다"면서 업무개시(복귀)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의사면허 정지 등 조치하고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조치를 '의사에 대한 도전'이라며 '의대생과 전공의들 처벌시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 의협에 대해 "국민의 생명을 협박하는 반인도적 발언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며, 이러한 인식이 참으로 충격적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증원 폭과 관련한 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이날부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환자 피해 사례를 상담해주고 법률구조공단과 연계해 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의료계 집단행동이 고발됐을 때 정해진 절차 내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할 것"이라며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출석 불응 의사가 확인되는 개별 의료인에 대해선 체포영장을, 전체 사안을 주동하는 이들에 대해선 검찰 협의를 거쳐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 발언에 "의사들을 겁박하지 말라"고 응수한 의협 비상대책위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우리 의사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를 하고 있다"며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는 정부의 압박에 더 이상 희망이 없어 의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 여지도 있는데, 20일 밤 MBC '100분 토론'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의대 증원 찬성 측은 유정민 복지부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과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가, 반대 측은 이동욱 경기도 의사협회장과 정재훈 가천의대 길병원(예방의학교실) 교수가 각각 나선다.

 

전공의 등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을 결집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집단 진료중단 행위를 '담합'으로 보고 22일께 집단 진료 거부에 동참하는 전공의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규탄하기 위한 범국민행동인 '국민 촛불행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조는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중단을 막고 진료를 정상화하기 위한 범국민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료 현장의 혼란은 벌써 시작됐다. 일부 병원에서는 특히 전공의들이 일찌감치 현장을 떠나면서 암수술, 출산, 디스크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의 전공의들이 이날부터 진료를 중단하면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전체 과의 수술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루 200∼220건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다. 이 병원은 20일이면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오전 현재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0∼40% 정도가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위중한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광주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환자 박모(65) 씨는 병원 측이 20일 잡혀있는 수술을 취소했다고 한다. 박씨는 "내일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지난해 7월부터 예약해서 수술을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전해졌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하면서 수술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특히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 불리는 '전임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할 경우 의료 현장 시스템이 붕괴되는 파국을 맞아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일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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