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목록

‘보험복합점포도입 논란’에 대한 보험 현장 근무자의 격문(檄文)

(조세금융신문) 대한민국엔 40만 ‘보험설계사’가 있다

‘보험설계사’라는 호칭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FP, FC, 컨설턴트 등은 모두 ‘보험설계사’를 호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호칭의 다변화는 외자계 보험사들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외자계 보험사들의 이러한 호칭 차별화를 지켜본 순수 국내사들도 다투어 영어식 호칭을 작명하는 것이 한때 유행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신작명(新作名)이 유행하게 된 기저에는 ‘보험설계사’라는 호칭이 주는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면도 있었다.


전통적 ‘보험설계사’의 이미지는 억척아줌마 스타일(몸빼바지·뽀그리 파마)에 전문지식보다 연고판매에 주력하는, 간혹 아기 한 명쯤 업거나 데리고 다니는…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의지하고 살던, 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에겐 가슴 아리게 하는 ‘어머니의 상(象)’이 있다.


자신의 의식주는 언제나 뒤로 한 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자녀를 안고 업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늘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어머니. 여기에 아버지의 생활력 없거나, 기타 어려움이 조금씩 있는 가정에서 자란 경우라면 그 시절을 겪은 중년 남성들에겐 어머니란 단어만 들어도 ‘심쿵’하게 되는 노스탤지어, 아니 그 이상으로 가슴 한 켠에 늘 자리잡게 된다.


그 희생의 아이콘 어머니, 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 그들은 지금 보험회사(GA)에 있다. IMF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최악의 실업대란이 와서 이 땅의 가장들이 대거 거리로 내몰릴 때 가정을 지키고자 억척같이 뛰어들어 위기의 가정을 지켜낸 이들, 아기가 어리면 같이 출근하여 개척을 나가는 날도 있었다. 양손엔 봉사품 들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연고시장? 천만의 말씀, 대부분 ‘보험설계사’는 ‘데비트시장(1인 영업구역 할당)제도’에 따라 그야말로 무연고지역을 ‘돌입개척’으로 시장을 만들어 나간다. 너무 걸어 인대가 늘어나도, 연골이 닳아 걷기 불편해도 그녀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고? 그 이름은 ‘어머니’ 였기에…


‘K사’의 이민남 팀장은 달동네로 유명한 난곡과 봉천동 일대를 ‘데비트구역’으로, 옆 동료와 말 한번 섞을 여유도 없이, 간혹 들리는 성적 농담이나 비아냥을 응원가 삼아 열심히 달렸다. 어느 날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자녀가 그네에서 떨어져 장애를 입는 가슴 아픈 일까지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자기계발(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 영업구역을 비우지 않았다.


몇 해 전 그는 대한민국 우수 저축인으로 선정되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물론 가정을 아름답게 가꿔온 것 또한 당연한 귀결이다. 각 보험사마다 이 정도 인간승리의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보험 복합점포, 답은 현장(Field)에 있다!

GA(독립법인대리점, 여러 보험사와 제휴를 통해 보험상품을 파는 영업형태)에 근무하는 나는 담당 FP팀장과 법인계약(CEO플랜/가업상속플랜/단체계약/퇴직연금/화재보험 등)상담을 위해 종종 동행할 기회가 있다. 올해 지금까지 방문한 기업(오너)만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열심히 준비한 자료로 설명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은행이다. 퇴직연금 시장의 상당부분은 이미 은행권이 가져간 상태이다. 물론 주거래 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대출 후 구속성 예금(꺾기)을 교묘히 피해가는 방법으로 방카슈랑스가 이용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제 복합점포까지 허용하게 되면 ‘25%룰’(은행소유계열보험사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제도)은 물론이고 ‘보장성 보험판매금지조항’도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게 된다. 방카슈랑스 시행의 목적을 되짚어 보면 답은 나와있다. 제도의 도입 목적에 얼마나 부합했는가. 과연 사회적 기회비용은 줄어들었는가.


이 질문에 Yes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오히려 보험복합점포는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쪽의 논리는 원스톱 서비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절감(기회비용절감)을 내세우지 않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유교적 서열사회의 문화가 잔존하는 한국사회에서 대출받는 기업(개인)과 대출결정·집행하는 은행 중 누가 갑인가. 아니 수퍼 갑인가.


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이런 갑을 관계에서 가입하는 보험이 과연 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까. 옛 속담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란 말처럼 열심히 일하는 40만 우리 보험설계사들에게 지원은 해주지 못할망정 그 근원을 흔드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정책입안자들은 한번만 현장에 나가보라. 그리고 이야기하라. 지금이라도 금융영역 간 전문성을 인정하고, 한국적 문화와 특성(좁은 땅·최고의 IT환경)에 맞게 상호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60~70년대 우리가 빚진 영원한 노스탤지어, 지금 21세기의 그 어머니와 누이들이 일어나 달리게 하자. 춤추게 하자.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