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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 없이 유행쫓다가는 낭패본다

(조세금융신문)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어 본 일 있는가. 혹은 반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아마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공교롭게도 일 년에 2~3번 정도 이런 경험을 한다.


창업 상담을 하다보면 지나온 세월이, 고생한 기억이 되살아나 처음 보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경우다. 황택수(가명) 사장도 그랬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팬 강한 인상의 황 사장은 이런저런 사업 이야기를 하다 과거 사업 실패 경험을 털어놓으며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제가 사업을 하다 세 번을 실패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돈만 까먹고 빚만 남았어요.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번에 창업해서 다시 한 번 살아볼랍니다. 선생님, 도와주십시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재기해서 성공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저… 정말 한강 갈렵니다.”


황 사장의 애절한 목소리만큼이나 내 마음도 답답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궁리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좀 더 나누며 상담하다 보니 황 사장의 사업 실패에는 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황 사장의 퇴직 후 첫 사업은 DVD방이었다.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이들에게 먹혀들면서 한때 DVD방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유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건전한 영업형태가 문제되었고, 인터넷의 확산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는 환경이 급속도로 형성되면서 장사 안 되는 DVD방이 슬슬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다.


황 사장은 바로 사업이 저물고 있는 그때 대로변에 있는 대형 DVD방을 권리금 많이 주고 인수했다. 사그라드는 트렌드는 어쩔 수 없다. 그러고는 얼마 못 가서 본전도 못 건지고 두 손 들고 말았다.


두 번째 아이템은 찜닭 전문점이었다. 찜닭 음식점이 잘된다 하니 덜컥 체인점에 가맹하여 음식점을 창업한 것이다. 그런데 황 사장은 음식도 할 줄 모르고, 식당 운영 경험도 없었다. 그저 체인 본사만 믿고 운명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찜닭의 유행이 사그라들면서 황 사장의 사업도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아이템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은 특별한 운영 노하우도 없고 유행도 안 타는 사업이었다. 다행히 처음에는 매출이 괜찮았다. 하지만 영업방식이 문제였다. 불법영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 단속에 걸려 한동안 영업을 할 수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쌓여있던 문제들까지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노래방도 빚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한 황사장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선택한 아이템은 곱창집이었다. 곱창은 유행을 타지 않고 불법영업을 할 일도 없는 아이템이라 마음이 놓였다. 이런저런 상담을 하고 서류안내까지 마친 후 현장실사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가게를 직접 보고 나니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애당초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는 작고 소박하면서 정감 어린 곱창집이었다. 본인이 직접 조리하고 운영하며 고객과 눈 맞추고 교감하는 사람냄새 나는 그런 곱창집 말이다. 마침 서민 분위기의 작은 음식점에 대한 욕구가 늘고있던 때라 소박한 곱창집이라면 이런 트렌드에도 적합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황 사장의 가게는 중대형 매장이었다. 규모도 크고 종업원도 많았다. 규모가 좀 큰 것 아니냐는 물음에 황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큰 매장을 운영해야 돈을 빨리 벌 수 있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고 종업원을 여유 있게 채용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제법 큰 매장 운영과 인건비 지출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목을 조여올 수 있기 때문에 자칫 경영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정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있을지 걱정이었다. 돈은 네발 달린 동물이라서 두발 달린 사람이 쫓아가서는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잡을 듯 해도 금세 도망가고 빠르고 민첩해서 여간해선 따라잡기 힘들다.


잡는 방법은 단 하나!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잡는 방법이다. 지나치게 흘러가는 유행이나 돈만 쫓다보면 사업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창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트렌드를 따르되 나만의 장사철학을 가지고 사업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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