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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드러나지 않는 직원도 감싸 안는 기업을 만들어야

온 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 회가 성장만 강조하고 내실은 소홀히 하였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청해 진해운의 2013년 감사보고서 상 안전교육을 위해 사용한 연수비는 54만1천원으로 직원 1인당의 안전교육비가 3500 원도 안 되었다.

이에 비해 청해진해운의 선박 자산은 2012 년 291억 원에서 2013년 479억원으로 증가했다. 190억원에 가까운 돈을 선박 매입비용으로 쓴 셈이다. 어느 회사나 다 성장을 중요시한다. 청해진해운도 예외 는 아니었을 것이다.

회사 돈으로 대주주의 사진을 구입하 고, 대주주에게 불필요한 컨설팅 비용, 상표권 사용료를 지 불한 비정상적인 회사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의 생리는 매 출과 이익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선박 자산을 늘려서 적 자를 개선하려 했다면 이는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여기서 나는 다른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회사에서는 매출을 늘리거나 경영진의 관 심사항을 처리하는 직원이 눈에 잘 띄고 승진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조사결과가 더 나와 봐야 알겠지만 청해진해운은 선박 매입이나 매출을 늘린 직원 또는 대주주에게 비정상적인 비용 지출을 기획하고 처리한 직원에게 승진이나 포상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안전교육 담당 직원, 선박 내 화물 결박업무를 처리하는 직원 등 실적과 무관한 업무를 하는 직원에게는 무관심하였을 것이다. 이는 청해진 해운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최근 들어 기업은 개인정 보보호를 강화한다. 그 이면에는 쉴 새 없이 터졌던 고객정보 유출사건이 있다.

2008년 옥션의 고객정보유출사건을 시작으로, 롯데카드, 국민카드, 농협카드사 등 금융기관, KT같은 대형 통신사에서도 고객정보가 유출되었다.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회사가 고객정보 담당 부서를 한직으로 보기 때문이다.[한국경제신문 2014.1.13, ‘보안규정은 철저한데…'안 지켜도 그만' 보안의식 곳곳에 구멍’ 참조]

경찰이나 소방공무원 내에서도 112, 119 신고센터 근무가 승진에는 도움되지 않고 한직으로 분류된다는 기사가 있다. [한겨레신문 2012.4.10, ‘전문가 112.119 센터 통합…전문 인력배치해야’ 참조]

2012년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 당시 112신고센터 담당자 는 신고를 한 여인에게 “거기 어디에요?”, “이건 혹시 부부 싸움 아냐?”라는 말만 하다 한 여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당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수원살인사건, 안일하게 대처한 국가가 살인자다!’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그로부터 2년 뒤 목포 해경은 세월호 침몰을 최초로 신고한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어서 여론의 빈축을 샀다. 이는 112나 119를 한직으로 생각하는 조직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업무가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면 일에 대한 열정 이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안전관리, 개인정보보호관리업무 외에도 사옥관리, 부가세신고, 계좌관리, 담보관리, 인허가 관리 업무 등 스포츠경기에 비유하면 공격보다 수비에 가까운 일이 수두룩하다.

이런 일들은 직원들이 아무리 성실하게 규정을 준수하며 일해도 회사의 모습은 현상유지에 불과하여 경영진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반면 회사에서 매출증가, 이익 증대와 관련된 업무를 하거나 경영진의 입맛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원은 승 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도 타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사람이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청해진해운에서 세월호의 화물 결박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규정대로 일처리를 완벽하게 할 경우 경영진은 그 직원에게 어떤 포상을 했을까?

평형수를 규정대로 채운 직원이 있다면 사장이나 선장은 그 직원에게 격려를 한 번이라도 했을까? 규정대로 철저하게 일한 것이 인사 기록에 반영되어 승진에 가산점이 부여되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과 이런 저런 개선 방안이 많이 나올 것이다.

정부에서는 백서를 만들어서 관련 공무원에게 배포도 할 것이다. 백서를 만든 직원에 대 한 포상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한직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기본에 충실한 직원에게 칭찬과 격려 없이 백서제작 등 보여주기를 잘 하는 직원에게만 포상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는 또 나올지 모른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제 때 납부해서 가산세 납부가 없었다면, 인허가 관리를 잘해서 취소되 지 않았다면, 하자담보가 없어서 채권을 정상적으로 회수했다면, 고객정보 관리를 잘해서 관련 사고가 없었다면 회사는 이렇게 수비를 잘한 직원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이 좋다.

이를 등한시하고 영업실적 초과 달 성한 직원 등에게만 포상을 한다면 회사 내의 세월호 사고가 안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박세준_직장인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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