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정부와 금융권은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관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PF 익스포저와 연체율 등 주요 지표가 안정 흐름을 보이면서,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연착륙’ 평가가 건설 현장에서도 그대로 체감되고 있는지를 두고는 시각이 엇갈린다. 통계상 리스크는 낮아졌지만, 중견·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자금 조달 환경과 사업 추진 여건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수치와 체감 사이의 괴리는 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 정부·금융권이 말하는 ‘연착륙’, 무엇을 근거로 하나
금융당국은 PF 익스포저와 연체율, 유의·부실 우려 여신 비중 등 핵심 지표가 정점을 지나 완만한 안정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금융권 전체 PF 잔액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신규 PF 취급도 일부 회복되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을 흔들 수 있는 급격한 충격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평가다.
다수 언론이 ‘연착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PF 부실이 금융권 전체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이 상당 부분 차단됐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금융권 내부 자료를 보면 PF 익스포저는 올해 9월 말 기준 177조9000억원으로 감소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유의·부실 우려 사업장으로 분류됐던 약 16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장도 경공매나 재구조화를 통해 상당 부분 정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PF 대출 연체율 역시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지표는 금융권 건전성 관리 관점에서 산출된 ‘평균값’이라는 점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연체율이나 익스포저 감소는 상당 부분 정리·구조조정이 완료된 사업장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의 난이도나 현장의 체감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 통계는 안정, 현장은 왜 여전히 어렵나
현장에서 느끼는 PF 환경은 공식 지표와 달리 여전히 ‘경색’에 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브릿지론에서 본PF로의 전환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금융권의 자금 공급 기준 역시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졌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PF 심사 과정에서 사업성 못지않게 시공사의 재무 건전성, 책임준공 범위, 추가 보증 여부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자금 조달 과정에서 건설사에 요구되는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는 대형 건설사 실무진의 체감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A업체 관계자는 “PF가 연착륙 국면에 들어섰다는 표현은 정부나 금융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지, 현장에서 체감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금리 부담과 리파이낸싱에 대한 고민을 여전히 크게 안고 있고, 분양이 지연되거나 연기되는 현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브릿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가는 절차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준은 한층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사업장 컨디션에 따라 본PF로 넘어가는 문턱이 높아졌고, 시공사의 도급 조건이나 대주의 요구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 더 까다로워졌다”고 덧붙였다.
◇ 리스크는 줄었지만, 할 수 있는 곳은 줄었다
PF 리스크의 현재 위치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해소’가 아니라 ‘선별’이다. 연체율 하락과 익스포저 축소는 위험 사업장이 상당 부분 시장에서 정리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신규 PF는 대형사나 우량 사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중소형 사업이나 지방 사업장은 금융 접근성이 여전히 낮다.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평균 리스크는 낮아졌지만, 실제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주체의 폭은 오히려 좁아졌다.
이에 대해 PF 구조를 오래 지켜본 건설업계 B관계자는 “PF가 문제 되는 것은 돈을 빌려줬는데 회수가 안 될 때인데, 지금은 아예 사업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될 사업만 선별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총량 기준으로 보면 PF 규모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방 사업장의 위축은 두드러진다. 수도권 정비사업이나 일부 우량 사업을 제외하면 분양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많아, 중견·중소 건설사들은 수주 환경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자체 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일수록 체감 리스크는 더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 금융권 내부에서도 남아 있는 PF의 후폭풍
이러한 흐름은 PF 환경을 ‘회복 국면’보다는 ‘정리 국면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과 맞닿아 있다. 금융·건설업계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아직 회복 단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과거 문제 됐던 사업들은 상당 부분 정리됐지만, 새로운 사업이 활발히 늘어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역시 과거 PF 충격 이후 충당금 부담과 자산 구조 조정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자금 공급은 총량 확대보다는 선별과 조건 강화 쪽으로 흐르고 있고, 그 부담은 상대적으로 현장에 더 많이 집중되고 있다.
제도 측면의 과제도 지적된다. 이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시행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단계적으로 20%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시행사 단독으로 이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며 “현실과 괴리가 큰 부분에 대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연착륙은 하나의 과정일 뿐, 결론은 아니다. 금융시스템 차원의 급격한 충격은 피했지만, 그 이후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정비사업, 지방 사업장, 중소형 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구조 조정이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치상 안정과 달리,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수적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연착륙 이후의 과제는 단순한 안정 유지가 아니라, 언제 어떤 주체가 다시 사업에 나설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수치상 안정과 현장 체감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는, 정책과 금융이 ‘관리’ 이후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PF 시장은 ‘수치 안정’ 이후의 구조를 묻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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