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올해 3월 말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다수 기업들이 정기주총을 통해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다룰 예정이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는 2명 이상 이사 선임시 주당 의결권을 선출 이사 수만큼 부여하고 한 후보에 집중해서 투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장치 중 하나다.
그간 재계는 ▲경영권 위협 및 경영효율성 저해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및 헤지펀드 등 투기 자본의 악용 가능성 ▲‘1주당 1표 원칙’ 위배 등을 이유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반대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최근 이사회의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집중투표제 도입도 핫이슈로 떠올랐다.
여기에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 국내 증시 활성화를 핵심 목표로 삼은 여당이 산하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옛 코스피5000 위원회)를 설립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자산운용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한 원칙) 강화 등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대거 추진하면서 집중투표제 도입 논의도 활발해졌다.
이후 작년 8월 25일 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이른바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같은해 9월 9일 공포됨에 따라 집중투표제 도입은 현실화됐다.
‘2차 상법 개정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회사 및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인 상장회사 중 상근감사 대신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회사에서 감사위원회 위원 중 최소 2인을 분리선출토록 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다만 ‘2차 상법 개정안’은 기업 부담 등을 고려해 공포 후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따라서 올해 9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법 조항이 적용될 예정이다.
◇ 올해 9월 집중투표제 의무화 시행…기업들, 배제 조항 삭제 등 정관 개정 착수
올 하반기부터 집중투표제 도입이 확실시 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올 3월말 정기주총 시즌에 맞춰 다수의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집중투표제 도입 및 그간 유지했던 배제 조항 삭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먼저 오는 3월 17일 현대모비스는 정기주총을 열고 기존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은 상법 제382조의2에 따라 주주가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청구할 경우 도입해야 할 집중투표제를 정관을 통해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조항이다. 다수의 국내 기업들은 그간 적대적 M&A 방어 및 경영 안정을 이유로 해당 조항을 활용해왔다.
이어 3월 18일에는 삼성전기와 삼성전자가 각각 정기주총을 개최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과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안을 처리한다.
또 같은달 19일에는 삼성E&A, 에스원이 각자 정기주총을 열고 집중투표제와 관련된 정관 변경안을 상정한다. 3월 20일에는 풍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아, 농심 등의 기업도 정기주총을 통해 기존 집중투표제 관련 정관을 정비할 방침이다.
LG전자와 LGCNS는 각각 3월 23일과 24일 정기주총을 통해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없애는 안건을 다룬다.
이밖에 현대글로비스, 카카오, 녹십자, 대한전선, KCC, 엔씨소프트, 아모레퍼시픽, LS일렉트릭 등의 기업들도 3월말 정기주총을 열고 집중투표제 관련 정관 조항들을 손 볼 예정이다.
한편 한 재계 관계자는 “2차 상법 개정으로 인해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 해외투기자본 세력 등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올해 신규 이사를 선출해야할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 지분 확보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집중투표제가 본격 도입되는 올 9월 이후에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사 전원을 한 번에 선출하지 않고 임기를 분산시키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다”며 “더불어 중요 안건의 경우 법적 요건보다 더 높은 의결정족수를 요구하는 초다수 결의제 도입, 이사회 정원 축소, 우리사주조합 강화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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