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 교향곡에서 ‘파파 하이든’의 교향악 단원들에 대한 사랑과 리더십을 느껴본다. 연초에는 어느 조직이건 새로운 리더가 세워지기 마련이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특히 무엇을 가장 우선시 하여야 할까?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을 통해서 리더로서의 자세를 한 수 배워보기로 하자. 하이든은 1766년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정 관현악단 부악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에스테르하지가문이라 함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에서 거의 국왕에 버금가는 대가문이었다. 한창 잘 나갈 때에는 부리는 사람만 최대 50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이든은 이러한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소속되어 행사 때마다 음악을 준비하고 연주하는 궁정악단의 악장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서 하이든에게 여러 장르의 작곡을 하도록 많은 과제를 내주곤 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서 극장이 딸린 거대한 궁전을 짓고 매년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그가 애지중지하는 하이든의 악단. 자연히 후작의 긴 여름휴가에 동행해야만 하는 악단의 연주자들은 매년 여름을 포함한 약6개월간의 긴 기간동안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베토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친구 페르디낭의 급보를 전해들은 베토벤은 비통한 심정에 빠졌다. 베토벤이 생존하던 시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일대 변혁기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된 시기였는데, 이후 나폴레옹 전쟁(1799~1814) 와중에 빈도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왕족과 귀족이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 도트와 친해지며 나폴레옹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신봉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 게 된 희대의 영웅이었다. 전제군주의 폐해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자유의 정신을 간직한 나폴레옹. 그를 너무나 신봉하던 베토벤이었기에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찬미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