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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경제 삼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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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렬 _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조세금융신문) 흔히들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3류’라는 말을 한다. 작금의 정치계를 보면 이 말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온다. 6.4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벌써 진흙탕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놓은 일이라도 있으면 좀 참아주련만 도대체 새해 들어 국회가 열리기나 했나 싶을 정도로 상대방 탓만 하고 민생법안은 먼지만 앉힌 채 처박아 두고 있다. 정말 세금이 아깝다.

선거 때면 국민의 발바닥이라도 핥아 줄 양 굽신거리다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조선시대의 수령방백으로 돌변하는 작태는 여전하다.


시대가 변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은 변함이 없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것이 국민 한 사람으로서의 심정이다.


과연 일류 정치란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나 있을까?


민주화가 되면 나아지겠지, 지방자치가되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 좋아지겠지,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수많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왔지만 정치가 나아지는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치와 경제의 격차가 더 벌어졌으면 벌어졌지 좁아지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조적으로 경제와 정치의 관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는 지구촌으로 묶여 하나의 시장이 된 지 오래다. 자본 이동에서 국경이 없어지고 설계와 생산, 유통과 판매가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에 들어가고 원자재가 인도네시아의 삼림에서 실어져 나오는 것이 현실의 경제시스템이다.


반면에 정치는 태생적으로 이 좁은 영토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 정치가가 다른 나라에 가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손바닥만한 국토도 넓다고 조각조각 나누어서 여당야당 땅따먹기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으리라.


경제는 로켓트의 속도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 정치는 이 땅에 갇혀서 꼼짝할 수 없다보니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이것이 일류 경제 삼류 정치의 근본적 이유이다.


세계경제가 긴밀해질수록 우리만의 법 체계나 정책을 펴기가 점점 어렵게 된다. 자본이 빛의 속도로 옮겨 다니고, 해외자본 유치가 경제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상황에서 이미 시장권력은 정치권력을 앞서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시장의 주인인 다국적 기업은 오로지 자기의 이윤추구를 위해 각국의 정치적·법적 보호 울타리를 걷어내고 있다.


시장 논리에 국적이나 민족주의가 있을리 없다.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물결이 온 세계를 뒤엎은 후, 시장권력이 각국의 재정주권을 밀어내기 시작하였고, 국민의 복리후생은 시장 논리앞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나아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그나마 우리 국민의 복리후생을 위한 재정주권의 마지막 보루는 세금이다. 세금은 가장 고유한 내치이기 때문에 인정사정없는 시장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세금마저도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시녀처럼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 늦기 전에 기업 경쟁은 시장논리에 맡기되 세금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는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기본권과 복리후생을 지켜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과 굳건한 선진 경제로의 도약을 위한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박일렬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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