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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칠장사

(조세금융신문) 경기도 안성에는 칠장사라는 작고 아담한 절이 있다. 하루에 버스가 서너 대밖에 안 다닐 정도로 외진 곳에 있는 이 절은 의외로 많은 일화를 품고 있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아들을 보고 싶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랑 등 모자 간 사랑 이야기도 묻어난다. 그 중 첫 번째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에 대한 야기를 하고자 한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 한 여인이 10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칠장사에 들어온다. 남루한 옷차림, 꾀죄죄한 얼굴, 닳고 닳은 신발…. 그 중에서도 압권은 어린 아이가 애꾸눈이라는 것이다. 아이 얼굴을 쳐다보니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걸식하러 온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일까? 주지스님은 이들의 알 듯 말 듯한 말투와 표정에서 해답을 못 찾는다. 그렇다고 부처님의 은덕을 받고자 찾아온 모자를 마냥 모른 체할 수 없는 법, 결국 하해와 같은 넓은 도량으로 모자가 이 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한다.


아이는 생각보다 악동이었다. 한쪽 눈이 없어 생활이 불편할 만도 했지만, 늘 활쏘기 연습을 하고 또래 아이들하고도 싸움박질을 멈추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원성이 잦았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하루는 아이를 불러 말하였다.


“제가 오늘은 왕자님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왕자라뇨? 어머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왕자님의 유모이고, 실제 어머님은 이 나라의 왕비셨습니다. 왕자님이 태어나셨을 때 국가에 이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여 왕께서는 왕자님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들은 어머님은 왕자님을 포대기에 싸서 처마 아래로 던졌는데 제가 받다 실수하여 손가락으로 왕자님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이미 왕자님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의 버림을 받은 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싸움을 많이 하면 왕자님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져, 마침내 왕자님과 저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 후 자신을 길러준 유모에게 큰 절을 하고 칠장사를 떠나 세달사로 향한다. 그리고 훗날 나라를 세워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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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이 아이는 바로 후삼국 시대에 가장 강성한 세력을 떨쳤던 후고구려의 왕 궁예다. 궁예의 어머니는 신라 왕의 후궁이었다. 유모에게 어린 아들을 던진 어머니는 무사하였을까? 사서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지만, 왕명을 거역한 어머니가 제 명에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죽음을 무릅쓰고 아이를 던졌는지 모른다. 아니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핏덩이가 온전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이 없어지는 것이 아까우리? 싶었을 것이다. 궁예의 어머니처럼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헌신과 희생 그 자체다.


우리는 아무리 멀리 계셔도 한 걸음에 달려가면 어머니를 뵐 수 있지만, 손 옆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연락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날 어머니의 사랑이 궁예 어머니의 사랑에 결코 못 미치는 것은 아닐 텐데.


칠장사를 돌아보는 내내 어머니를 목 놓아 부르짖으며 칠장사를 떠난 어린 아이의 모습이 상상되었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갓 태어난 핏덩이를 유모에게 던지며 오열하는 궁예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 본 글에서 일부는 필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습니다.

 

박세준 : 칼럼니스트 veraz77@naver.com
현) 대기업 근무 , 회사 내 채권관리 강사, 칼럼니스트
저서 《직장생존병법 41가지》
http://blog.naver.com/veraz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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