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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누구에게 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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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_ 작가
(조세금융신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누 구나 어린 시절 위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 갑자기 귀가 당나귀처럼 길어졌다. 왕후를 포함하여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머리 크기를 재야하는 두장이(왕이나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던 복두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하던 사람)만 이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문왕은 복두장이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한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고, 한평생 비밀을 간직한 복두장이는 늙어서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말한다. 그 후 가슴앓이의 후유증인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를 털어놓자마자 얼마 안 되어 죽는다.

위 이야기에 나오는 복두장이는 참 불쌍한 사람이다. 한 평생 자신만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속앓이를 하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 오죽이나 없었으면 갈대밭에 가서 이야기를 할까?

그런데 오늘날 직장인 중에는 의외로 복두장이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직장인을 하다 보면 자신만 아는 비밀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회사의 중요한 일을 맡으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나 구조조정 실무 담당, 사내 비자금을 관리하다 보면 동료들한테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임금님 귀처럼 상사에 대한 은밀한 결점이나 개인적 치부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세치 혀의 가벼움을 느낀다. 그런데 입에는 자물쇠를 채우라니 이 또한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툭툭 털어놓고 싶지만, 자신이 소문의 진원지로 오인될까 봐 함부로 입을 놀릴 수도 없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경문왕의 복두장이처럼 평생 비밀을 안고 산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매우 가혹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동물인데 이를 억지로 막으면 자신도 모르게 속병이 생긴다.

이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만의 비밀을 평생 지켜줄 친구 한 명은 반드시 만드는 것이 좋다. 내가 만일 기혼자라면 배우자가 가까운 직장 동료보다 더 좋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 배우자와 사이가 나쁘거나 나쁘지는 않더라도 회사 일의 미주알 고주알 일일이 얘기하기 어려운 사이가 된다면 직장생활은 외롭고 힘들어진다.

하지만 정말 불가피하게 배우자에게 털어놓기 어렵다거나 아직 미혼자라면 반드시 회사에서 한 명의 절친한 동료를 만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속내를 털어 놓을 동료가 여러 명있으면 그 사람들은 믿을만한 대상이 아니다. 더 나아가 여러 명에게 얘기하면 비밀이 새어 나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만의 비밀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카메라 앞에서는 당당하고 밝고 정돈된 이미지를 드러내지만 대중들에게는 말 못할 고통으로 약을 먹거나 병원을 찾는 연예계 스타들이 의외로 많다.

마찬가지로 지위 고하를 막론한 모든 직장인들은 회사 내에서는 정돈된 이미지를 보여야 하지만 퇴근 후의 커피숍이나 술자리에서 만큼은 가벼운 자신의 입을 무겁게 하다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상의 반영으로 SNS에는 자신만의 비밀을 ‘XXX 옆 대나무 숲’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글을 쏟아내는 장소가 생겼다.

‘우울증이 패션이 된 한국사회’라는 말이 들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랫동안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일본식 장기불황의 그림자가 우리 앞에 드리운 가운데 정부의 정년 연장 법안 통과와는 무관하게 감원의 회오리는 계속된다.

이는 금융계에 있는 사람들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대상을 한 명 만들자.

물론 최적의 대상은 배우자이지만, 이러 저런 이유로 배우자가 대상이 될 수 없다면 반드시 회사 내에서 심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동료 한 명을 만들자.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을 대상조차 없어서 SNS에서 익명으로 떠들기보다는 절친한 동료 한 명과 나누는 커피 한잔, 술 한 잔이 회사에서 장기근속할 수 있는 버팀목일 것이다.

 

박세준 _ 작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중고교 시절 역사가의 꿈을 꾸었으나, 밥벌이를 하느라 남편과 아버지 노릇을 하느라 꿈을 아직까지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도 그 꿈은 진행형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회사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충실히 살고 있다. 잊혔던 어릴 적 꿈을 되살리기 위하여 30대 및 40을 갓 지난 예비 마흔들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하여 틈틈이 원고를 썼고, 그 결과로 2014년 첫 저서 《직장생존병법 41가지》를 출간하였다. 현재 회사에서는 관리부서의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며 사내 강사로서 ‘채권관리 실무’ 강의 활동도 하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회사 내에서 주류와 비주류 생활을 두루 경험하였기에 누구보다도 직장 생활에 대해서 전달할 이야기 거리가 많은 편이다.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기대되고 희망에 부푼다는 저자는 요즘 40대와는 달리 마음이 늙지 않는 중년으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회사생활과 더불어 잡지에 칼럼 기고와 블로그 등을 통해서 지속적인 집필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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