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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산책] 내 죄에 대한 남의 용서, 그리고 나의 용서…뮤지컬 <보이A>

잠재의식에 묻어둔 죄, ‘용서’는 쉽지만 ‘참회’는 어렵다…죽어야 가능할 수도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소년원에서 10여년 복역한 뒤 보호관찰관 테리의 도움으로 가석방 된 24세의 남자 잭(Jack)은 난생 처음 정상적인 세상살이에 뛰어들었다. 사실 잭이라는 이름도 신분 세탁을 위해 새로 만든 이름이다.

 

잭은 새 직장과 친구, 저축 등 간절했던 것들과 마주한다. 그러던 어느날, 잭은 직장친구와 떠난 여행길에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위험한 순간, 극적으로 한 아이를 구한다.

 

지역 언론을 통해 영웅으로 떠오른 잭. 그런데 동시에 ‘보이A’ 석방 소식과 아이를 구한 사람이 바로 그 ‘보이A’라는 뉴스가 지역사회를 혼돈에 빠뜨린다.

 

‘보이A’는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보호하고자 실명을 대신하는 호칭. 두 명의 미성년자가 동시에 기소됐다면 ‘보이A’와 ‘보이B’다. 3명의 소년범이라면 ‘보이C’가 추가되는 식이다. 어떤 사건의 ‘보이s’들은 주홍글씨처럼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상징한다.

 

아무튼 지역 주민들은 잭이 아이를 구했다는 점보다도 그가 ‘보이A’라는 점에 집착한다. 그를 이웃으로 인정했던 사람들은 차갑게 돌변한다. 온 세상이 잭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다.

 

뮤지컬은 얼핏 사회와 언론의 냉혹함을 고발하는 ‘부조리극’ 같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녹록지 않다.

 

 

 

 

가난, 부모와 학교의 무관심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두 소년은 동급생 여자애를 죽인다. 그녀가 극악한 언어로 자존감을 파괴하고 폐부에 고인 열등감을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층민 소년 잭의 유일한 친구였던 ‘친구 A’는 감옥에 가기 전 자살했다. 잭은 법적으로 ‘보이B’, 아니 ‘보이A’ 였다.

 

하지만 잭이 10년여 복역한 감옥에서 모범수로 가석방 될 수 있었던 것은 잭 자신이 ‘보이A’ 또는 ‘보이B’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판사의 판단과 무관하게 자신은 ‘친구 A’가 동급생 여자애를 죽이는 현장에 함께 있었을 뿐, 직접 죽인 건 아니라는 ‘자기암시’가 어린 잭을 지탱해준 것이다.

 

뮤지컬 연출자는 잭의 행위가 ‘살인방조죄’ 였는지 혹은 공범의 ‘살인죄’였는지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살인사건의 정황을 법적으로 따지는 일은 덤덤한 장치일 뿐이다. ‘살인방조’와 ‘살인’은 오로지 주인공 잭에게만 평생 천국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심리적 ‘사점(deadline)’ 이었다.

 

잭은 후반부에 노랫말 독백에서 ‘친구A=보이A’가 동급생 여자애를 죽일 때 통쾌하게 낄낄거리며 그 장면을 바라본 점을 고백한다. 그렇게 자신도 ‘살인자’임을 깨달았다고 아프게 관객에게 고백한다.

 

 

 

잭은 끊임없이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라”, “죽일만 한 사람을 죽인 것 뿐”이라며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친구 A’의 혼령의 도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당당히 맞서기로 한 순간, ‘친구 A’의 혼령을 죽인다. 자신이 진짜 살인죄를 저질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죄는 그저 방조가 아니라 진짜 죄, 그 자체였다. 다만 잭은 처음부터 자신의 죄를 용서할 준비가 돼 있었고, 실제 그래왔다. 법적으로 잭의 죄를 인정하는 타인들도 잭이 이웃에 살지않는다면 그를 용서할 준비가 돼 있었다.

 

잭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감사 편지를 받고, 자신의 죄와 자신에 대한 용서를 신랄하게 반추한다. 죄는 ‘실체’였고, 용서도 진짜였다. 하지만 죄와 용서 사이에 ‘참회’가 빠졌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잭은 자신을 추방하려는 지역 주민들, 오로지 자신과 같은 약자들 앞에서만 정의로운척 당당한 언론인들을 피해 은둔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기로 한다. 절벽이 있는 땅끝 마을(Land’s End)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이다.

 

영국 작가 조나단 트리겔(Jonathan Trigell)의 같은 이름 소설 <보이A>를 원작으로 박해림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창작 뮤지컬 얘기다.

 

원작 책 <보이A>에 적힌 잭의 마지막 대사는 영국 국영방송 <BBC>가 지난 2009년 8월9일자로 소개한 ‘유명한 마지막 말(Famous last words)’에 뽑혔다.

 

“그리고, 그가 예상한대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상승이 멈추는, 모든 것이 정지된 순간이 있다. 추락하지도, 그렇다고 날지도 않는 그런, 시간이 얼어버린 순간. 만화에서 만큼도 길지 않았다. 1초도 안되는 것 같다. 그러나 팔을 벌리고 맨발을 모은 상태로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And, like he suspected, there is a moment, when ascension has stopped, but before the drop, where everything pauses. Neither falling nor flying. An instant where time is frozen. It doesn't last as long as in the cartoons. It could be less than a second. But it's long enough to consider, with arms outstretched and bare feet together, if it might be better not to struggle anymore.”)

 

아둔한 기자는 이걸 찾아내고서야 뮤지컬의 결말을 알아챘다.

 

 

 

 

PS : 뮤지컬을 함께 본 관객이 얼추 100명. 기자를 뺀 99명 모두 여성 관객이었던 것 같다. 귀가길 대학로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누구나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자아보호 본능에 힘을 빌어 잠재의식 속에 슬쩍 묻어 둔 ‘죄’가 있다. 대개 진정한 참회는 죽음의 순간에 이뤄진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함부로 ‘참회'를 강권할 일이 아니다. 뮤지컬을 본 뒤 기자가 내린 작은 매듭이다. 일부 대사가 노랫말이라서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다. 만약 다른 ‘매듭’으로 보는 관객이라면 기자에게 편지 달라. 밥과 커피를 뫼시겠다. (어디서 개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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