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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처분시 사해행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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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이성로 법무사)  사무실을 방문하여 상담하는 손님들 중에 ‘사업을 하는데 요즘 채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곧 집행이 들어올 것 같은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라도 건지고 싶다. 집을 지키는 방법이 없는가’ 하며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나의 대답은 거의 ‘돈을 빌렸으면 재산이 있는 한 갚아야 하지요.’ 하고 만다. 상담하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극히 섭섭하고 불만스러울 수 있겠으나 법의 목적인 정의를 구현한다는 입장에 섰을 때 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 제406조 제1항에는 ‘채권자 취소권’이라 하여 ‘채권자가 채무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사상으로는 채무자가 재산이 없으면 아무리 판결문이 있다 하더라도 집행할 수 없는데 채무자가 이를 이용하여 앞으로 발생될 집행을 피하고자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하였을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채권자가 채권자 취소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기 이전 이미 채무자에 대해서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 , 채권이 성립하지 않았다하더라도 그 기초가 되는 법률관계가 발생되어 있고 장래에 이에 기해 채권이 성립되었다면 채권자 취소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때의 채권은 금전 채권에 한정되며 반드시 이행기가 도래할 필요는 없다. 이와 같이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가 채권자가 변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자신의 재산권을 처분하면 채권자 취소권이 성립된다.

 
이와 같이 채권자 취소권의 대상이 되는 채무자의 처분행위를 강학상으로 사해행위(詐害行爲)라고 하는데 사해행위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본다.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타인에게 무상으로 증여하는 행위 뿐 아니라 정당한 가격으로 판 경우, 소비하기 쉬운 금전으로 바꾸는 행위에 대해서 판례는 사해행위로 보고 있다.

 
여러 채권자가 있는 경우에 그 중에 자신이 아는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채권자에게만 변제하고 무자력 상태가 되는 경우도 사해행위가 된다. 어느 한 채권자에게만 물적 담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사해행위가 되며 특히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권을 포기하여 배우자가 전 재산을 가지게 한 경우도 사해행위로 본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볼 때 이미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채권자취소권은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거래의 안전에 지대한 위협을 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정당하게 매매대금을 지급하고 집을 샀는데 나중에 그 집의 전 소유자가 집을 매매하기 전에 빚을 많이 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매매계약이 취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타인의 부동산을 매수하는 사람들은 그 부동산의 가치나 그 부동산 자체의 권리관계 뿐 아니라 그 부동산의 소유자의 개인적인 채무까지 확인하고 부동산을 매입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요구이며 이를 관철하려 할 경우 아무도 부동산을 매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민법 제406조 제1항 규정의 단서에는 “그러나 그 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나 전득한 자가 그 행위 또는 전득 당시에 채무자를 해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무제한적인 채권자 취소권의 행사로 인해 거래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채권자 취소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단, 여기서는 법의 목적인 ‘정의 구현’은 잠시 놓아두고 가장 이기적인 채무자만을 위한 측면에서 논해보는 방법이다.

 
재산을 처분하되 채무자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처분하여야 한다. 채무자의 사정을 전혀 모른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채무자와 인척관계가 있거나 아니면 친구, 회사의 동료 등은 안 된다. 이들이 설사 정말로 채무자가 빚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관계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악의가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정상적인 가격을 받겠다고 고집 피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처분의 상대방을 구하기 어려워서 시기를 놓치는 수가 있으므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정상가격보다 낮추어 처분하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낮은 가격도 의심을 줄 수 있으므로 경계한다. 빚을 빌려준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재산이 있는 한 갚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서도 안 되면 떳떳한 마음으로 파산회생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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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로 올바로법무법인 대표

학 력 : 한양대 법대 졸업
이메일 : gbl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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