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목록

[전문가 칼럼] 모르는 것은 묻자

서양인들이 보았을 때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직설적이고 외향적인 그들의 눈에는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말수도 적은 동양인들이 그렇게 비치는 모양이다. 한국인의 경우 만남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며 저어하는데 그게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속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음흉하게 까지 비춰지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국의 호텔을 방문한 손님의 예를 들자면 서양인 손님들은 서비스에 불만이 있을 경우 그 시정을 요구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그 호텔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동양인 손님의 경우 설령 서비스에 불만이 있어도 절대로 그 불만을 내색하거나 호텔직원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마음 속에만 둔 채 다시는 그 호텔을 찾지 않는다.

더 안 좋은 것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그 호텔의 서비스의 문제점을 소문낸다고 하니 그 호텔로서는 서비스 개선의 기회도 잡아보지 못하고 그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약간 관점은 다르지만 미국 대학생들의 경우 학기 초 강의가 시작될 때 담당교수가 교과서를 제시하면 그 책의 대략적인 내용이며 관점 등을 아주 샅샅이 묻는다. 우리의 경우 교수는 제시하고 학생은 그저 제시된 그 책을 알아서 읽어보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런 질문을 받은 미국의 교수는 아무런 불쾌함도 없이 흔쾌히 그 질문에 대답해 주는데 그 덕에 미국학생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책에 대하여 알게 된 후 수업에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태도는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버르장머리 없이 보이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다른 모양이다.

새해에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은 묻도록 하자.

체면 때문에 혹은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괜시리 아는 체 하며 속 끓이지 말고 스스로 모르는 것은 묻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도움을 청하도록 하자. 우리가 모르면서도 묻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움청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상대방이 무시하거나 거부할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기 때문이며 도움을 청한다는 행위 자체가 의존적인 사람들이나 하는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에 "부탁하는 사람은 잠시 바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탁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동안 바보가 된다."라는 것이 있다.
 
주도적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 청하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사람은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보다는 무언가 가르침을 달라는 사람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 5분 동안 바보가 될 것인가 아니면 평생 동안 바보가 될 것인가. 선택은 자명하다.

모르는 것은 묻고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모른다고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그것은 의존적이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고 당당한 사람의 모습일 수 있다.
 
얼핏 보기에 주식투자는 뭔가 대단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작업처럼 보인다. 복잡해 보이는 각종 차트가 눈 앞에 펼쳐지고 난해한 전문용어까지 등장할라치면 듣는 이는 저절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부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려워만 보이는 차트는 그저 과거의 데이터를 수치화하여 보기 좋게 표시한 것일 뿐이고 미래 주가의 예측이라는 것도 이어령비어령식의 비논리적인 궤변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 경이나 케인즈 이론으로 유명한 탁월한 경제학자인 케인즈도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주식시장을 떠나야 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듯 여겨지지만 실상 절망적일 정도로 비이성적이며 막무가내인 존재이다. 일찌기 데즈먼드 모리스가 자신의 저서 <털 없는 원숭이>에서 증언했듯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그저 조금 이성적인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한낱 포유류일 뿐이다.
 
이토록 불합리한 인간들이 이글거리는 욕망을 좇아 한데 뒤엉켜 서로 부딪치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고 따라서 주식시장은 당연히 불합리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주식시장이란 곳이 기본적 지식만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단언컨대 주식시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투자 혹은 투기라는 것은 예측불가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불합리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직감이 아닌 직관에 의해 투자하는 것이다. 직관이란 사소한 정보조각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정보를 작게 조각낸 뒤 그 작은 조각을 활용하여 어떤 현상을 판단하는 능력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탁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그는 사람들이 정작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그 무엇을 만들어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내어놓은 물건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그 물건을 원하고 있음을 불현듯 깨닫곤 했다. 퍼스널 컴퓨터가 그렇고 아이팟, 아이폰이 그렇다. 아이폰이 눈 앞에 나타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마트폰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유추하는 데에 반드시 모든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장고 끝에 악수두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지선다형 문제를 마주했을 때 대개는 처음 판단한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구두닦이가 주식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치운 결과 저 혹독한 대공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케네디 대통령 부친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모두 직관의 효용성을 이야기한다. 훈련된 심리학자들은 부부의 대화를 녹화한 15분짜리 영상만 보고도 그 부부가 15년 후 여전히 혼인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를 95%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니 직관이 무슨 점쟁이의 요설처럼 비과학적으로 들리는데 직관과 직감을 엄연히 다르다. 직감이란 막연히 그럴 것 같은 감성 혹은 감정적 판단인 반면 직관은 그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이성적 판단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갑자기 떠오르"는 부분이 아니라 "그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다. 경험과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으면 직관이 아니라 직감인 것이다.

따라서 경제와 관련된 공부 뿐만 아니라 인간을 둘러 싼 많은 분면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직관이야말로 지극히 불합리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살기이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광산지점 이홍규 지점장

굿세이닷컴 베스트지점장. 이홍규 현대증권 광산지점장은 종목을 선정하는 탁월한 안목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투자패턴으로 지역투자자들의 깊은 신뢰를 얻고 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