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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박스 도입, 과연 필요한가?

(조세금융신문)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IP)분야에서 금융 및 조세와 관련된 가장 뜨거운 이슈는 IP금융과 더불어, 일명 ‘특허박스’라고 불리는 IP관련 조세감면제도일 것이다.


특히 작년에 여러 매체를 통해 영국을 포함하여 몇몇 유럽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특허박스 제도의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허박스란 특허를 포함하는 IP의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의 매출 또는 이익 가운데 IP를 통해 발생한 부분에 대하여 일정 비율로 법인세 경감혜택을 주는 제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들로 하여금 R&D 활동의 동기를 부여하고 로열티가 발생하는 IP의 거래 및 라이센싱을 활발하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경제에 도움이 되고 지식재산중심의 산업구조로의 전환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에도 R&D와 관련된 조세감면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연구·인력개발비에 관한 세액공제라든가, 연구 및 인력개발을 위한 설비투자에 관한 공제를 규정하였다. 또한 같은 법 제11조에서는 연구를 위한 시설투자금액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규정하면서 특허나 실용신안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자산에 대해서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제 12조는 특허 등의 IP 또는 일정한 기술 비법을 제3자에게 이전하여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도 세액경감 혜택을 주고 있고, 중소기업은 특허권 등을 취득하는 경우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미 시행 중인 IP와 관련된 조세특례제도가 있음에도 일각에서 특허박스의 도입을 주장하는 데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현재 시행 중인 제도에서 IP에 관련된 사항들은 특허나 기술 비법(노하우) 등을 이전하는 데 관한 소득이 세금감면의 대상이다. 여기서 이전이란 노하우의 경우에는 비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전이지만, 특허 등은 특허권 전부 또는 지분의 명의가 변경되고 이를 특허청의 등록원부에 등록을 하는 절차가 수반된다.


통상 기술거래분야에서 칭하는 기술이전이란 IP소유권의 이전 외에도 특허기술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해당조문에서 규정한 형태가 특허권 등의 취득이나 대여인 점을 고려하면 그 지배권의 일시적 이전인 대여나 또는 항구적 이전인 양도에 한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특허권자들이 특허기술을 실시하려는 제3자에게 그 실시를 허락하는 형태의 라이센싱은 이전이 아니므로 해석상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반면 상당수 유럽국가들에서는 특허실시에 대한 허락의 대가로 서의 로열티에 대한 세금경감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마다 차이가 다양하지만 그 대상도 특허나 노하우 뿐 아니라 저작권, 영업비밀, 상호, 디자인이나 식물품종을 인정하는 국가도 있으며 제품가격에 포함된 로열티도 공제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R&D의 결과물에 대해 별도의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R&D 관련 조세특례제도들과 동일한 지향점을 갖는다고 볼 것이다.


한편 특허박스의 도입을 주장하는 진영의 논거는 대체로 특허기술의 상용화와 기술이전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특허기술의 상용화나 거래가 더딘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정신노동에 의한 무형의 창조물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치인식이 낮고, 따라서 남의 IP를 침해해서 안 걸리면 좋고 법원의 판결을 받더라도 비교적 배상액이 높지 않은 점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타인의 특허품을 베껴서 빨리 만들어 시장에 팔고 다음 아이템을 베끼는 것이 효과적인 환경에서 굳이 IP를 존중할 유인이 부족한 것이지, 로열티 소득에 대해서 일부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R&D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인지에 관한 상관성은 확신할 수 없다.


또한 특허박스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공급대가 중 상당 비율을 내재된 로열티로 분리하여 가능한 많은 제품과 서비스에 자사의 특허기술이 적용되었다며 세금감면을 신청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종래에 상대방으로부터 천원에 제품을 공급하던 회사가 제품가격과 로열티를 각각 팔백원과 이백원으로 분리하여 법인세의 감면을 신청할 수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고용이 창출되거나 R&D 투자가 늘어나는 동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생산과 매출이 그대로인데 특허박스 적용으로 인하여 법인세수만 줄어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특허박스 제도가 매우 긍정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여 기술거래가 촉진된다고 하더라도, 기술을 라이센싱하는 기업의 법인세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기술도입자들로부터 징수되는 기술료에 대한 부가가치세는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직접세인 법인세는 줄어들고 간접세인 부가가치세가 늘어난다는 점인데, 현재도 직접세에 비하여 높은 간접세 비율을 지적하는 우려가 큰 마당에 조세형평의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효과는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특허박스를 활용한 조세감면을 신청한 IP가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정말로 적용되었는지를 세무당국이 판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4대강 로봇물고기 사건에서는 88건의 특허 중 64건이나 로봇물고기와 관련 없는 특허를 연구개발성과라고 제출한 엉터리 보고를 연구관리전문기관도 파악하지 못하였다. 또한 청해진 해운이 유람선운행에는 권리범위가 미치지도 않는 엉터리 상표를 사용하는 대가로 故유병언 회장에게 로열티로 지급한사례를 볼 때, 변리사의 눈으로 보면 가치가 제로인 특허를 헐값에 매입하여 특허박스 제도에 활용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특허 등에 대한 감정은 특허에 관한 법률적 판단으로서 변리사법 제2조의 고유업무에 해당하는데, 건건이 변리사의 감정을 요구한다면 정작 기업의 입장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특허박스를 시행 중인 국가들은 아일랜드,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같은 대표적인 조세회피국가들이거나 이들 국가로 자국민의 자본이 흘러갈 우려가 있는 주변의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다.


반면 특허박스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로서는 대표적으로 유럽과 미주의 R&D 강호 독일과 미국이다. 굳이 별도의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 임금수준이 높음에도 국가의 프리미엄과 잘 갖춰진 R&D 선순환 구조로 인하여 자본과 아이디어, 그리고 인재가 몰려들고 경제는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R&D의 진흥은 단편적인 세제 인센티브와의 상관성은 입증되지 않은 반면 문화나 사회 및 사법 시스템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임은 명확하다. 따라서 특허박스의 도입에 있어서는 정밀한 세수 시뮬레이션과 그 효과에 대한 면밀한 사전 검토, 그리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보완책들이 먼저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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