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국세청이 국내 이커머스 1위 쿠팡을 상대로 고강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에는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과 역외 탈세 혐의를 추적하는 국제거래조사국이 동시에 투입됐다.
재계와 세무 전문가들은 국세청의 양대 핵심 부서가 함께 움직인 것을 두고, 이번 조사가 단순한 회계 장부 검사를 넘어 한국 자회사와 미국 모회사(Coupang Inc.) 간의 ‘자금 흐름’ 전반을 검증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 쟁점은 ‘이전가격’…美 본사 비용 적정했나
2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와 물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에 조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회계 자료를 일괄 확보했다.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된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다.
이번 조사의 성격은 ‘조사4국’과 ‘국제거래조사국’의 공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통상 조사4국은 비자금이나 횡령을 캐내지만, 국제거래조사국의 가세는 ‘은닉’에서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으로 쟁점이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이전가격은 다국적 기업 계열사 간 거래 가격을 의미한다. 쿠팡 한국 법인이 미국 모회사에 브랜드 사용료, 경영 자문료, IT 시스템 사용료 등을 지급할 때 적용하는 가격이 대표적이다.
국세청은 쿠팡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줄이기 위해 본사 지급 수수료(비용)를 과도하게 책정했는지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비용을 높게 잡으면 한국 법인의 이익이 줄어 법인세가 감소하고, 자금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특히 쿠팡이 수년간의 적자를 끊고 본격적인 흑자 궤도에 오른 시점이라는 점도 조사의 배경으로 꼽힌다.
◆ CFS 매출 3.3조가 내부거래…자금 흐름의 ‘길목’
국세청이 본사와 함께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를 1차 타깃으로 삼은 점도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2016년 설립된 CFS는 물류센터 운영을 전담하며 그룹 내부 자금이 거쳐 가는 핵심 길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FS의 2024년 매출 4조3738억 원 중 약 77%인 3조3913억 원이 특수관계자(계열사) 간 거래에서 발생했다. 국세청은 이 거대한 내부거래 과정에서 정상 가격보다 높은 수수료가 책정됐는지, 이를 통해 미국 본사로 소득이 부당하게 이전됐는지를 집중 검증할 것으로 보인다. 수조 원이 오가는 길목에서 일종의 '통행세'가 부당하게 징수됐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 “창고와 배송은 한 몸”…조사 확대 불가피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사가 배송 전담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로 확대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창고’와 ‘배송’은 회계 장부상 수익과 비용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물류의 흐름은 ‘CFS(창고) → CLS(배송)’으로 이어진다. CFS가 CLS에 물건을 넘기며 비용을 청구하고, CLS는 이를 받아 수익을 낸다. 실제 CFS는 지난해 CLS로부터 1293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동시에 5106억 원의 비용을 지급했다. 자금 흐름의 전체 그림을 맞추기 위해서는 돈을 받아 간 CLS의 장부를 열어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류 현장에서 “창고(CFS)를 털면 배송(CLS)이 나오고, 배송을 털면 본사가 나온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세무조사에 특검까지…‘사면초가’ 몰린 쿠팡
문제는 배송 자회사 CLS가 이미 사법 리스크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의 압박과 별개로 최근 출범한 ‘상설특검’이 쿠팡의 노동 관련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다. 쟁점은 ‘퇴직금 쪼개기 계약’ 의혹과 ‘취업제한 블랙리스트’ 논란이다. 모두 현장 인력 운용 주체인 CLS와 직결된 사안이다. 국세청은 ‘돈의 흐름’을, 특검과 경찰은 ‘인력 관리’의 위법성을 파헤치며 쿠팡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150명 규모의 특별 세무조사에 특검 수사까지 겹친 것은 쿠팡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미국 본사로 흘러가는 로열티의 적정성부터 국내 현장 인력 관리 문제까지, 쿠팡의 사업 구조 전반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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