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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규·판례] “물도 제트분사” vs “용도 달라”…고압세척기 품목분류 분쟁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고압세척기(High Pressure Washer)의 품목분류를 두고 수입업체와 부산세관이 분쟁을 벌였다. 업체는 “고압의 물을 ‘제트(jet)’ 형태로 분사하므로 ‘제트분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반면, 세관은 “모래나 금속연마재를 뿜어 표면을 ‘가공’하는 산업용 장비와는 본질적 용도가 다르다”며 ‘기타 기기’로 맞섰다.

 

쟁점이 된 물품은 업체가 2017년 5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중국에서 들여온 고압세척기 23건이다. 동력모터와 피스톤식 플런저 펌프를 이용해 저압의 물을 최대 170바(bar) 수준까지 승압해 노즐로 분사하는 구조다. 주로 건설현장, 세차장, 건물 외벽, 가정 정원 등에서 물을 쏘아 오염물질을 세척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된다.

 

업체는 수입 신고 당시 이 기기를 ‘증기 또는 모래의 분사기와 이와 유사한 기타 제트분사기’(HSK 8424.30-9000호)로 분류해 한·중 FTA 협정관세율 0% 혜택을 받았다. 세관 역시 이를 그대로 수리했다.

 

그러나 2021년 9월 세관은 해당 기기의 실제 성격이 ‘그 밖의 기타기기’(HSK 8424.89-9000호)로 협정관세율 3.2~5.6%가 적용돼야 한다며 수정 신고할 것을 안내했다.

 

업체는 2022년 5~7월 세관 안내에 따라 HSK 8424.89-9000호로 수정 신고하고 관련 세금을 납부했다. 이후 업체는 “원래 신고한 제8424.30호가 맞다”며 관세 환급을 구하는 경정청구를 냈다. 세관이 이를 모두 거부하자, 업체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해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게 됐다.

 

◆ 고압세척기, 품목분류 쟁점은?

 

이번 분쟁의 핵심은 같은 분사 기기(관세율표 제8424호) 안에서 고압세척기를 제8424.30호의 ‘이와 유사한 제트분사기’로 볼지, 아니면 제8424.89호의 ‘그 밖의 기기’로 볼지다.

 

제8424.30호는 주로 모래나 연마재를 고압 분사해 물체 표면을 가공하는 장비가 분류된다. 반면 제8424.89호는 그 밖의 분사·살포용 기기를 포괄하는 ‘기타’ 분류다. 고압세척기의 '성격'이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관세 혜택의 명암이 엇갈리는 구조다.

 

◆ 업체 “물도 제트(jet)…‘유사 제트분사기’에 해당”

 

업체는 관세율표의 문언적 의미를 파고들었다. 제8424.30호 규정 어디에도 ‘액체인 물은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제트(jet)’는 좁은 구멍에서 증기나 액체가 연속 분출하는 현상을 뜻하는 만큼, 고압의 물을 분사하는 기계 역시 제트분사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다.

 

업체는 일반 수돗물(압력 3~4바)과 달리 최대 170바까지 승압해 쏘아내는 ‘강력한 물줄기’라는 점을 부각했다. 모래와 고압수를 함께 뿜어 녹을 벗겨내는 모래분사기(샌드블라스터)와 비교해도, 분사 매개체(모래 유무)만 다를 뿐 제트 분사라는 작동 원리와 세척 기능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주장했다.

 

무역 현장의 고충도 토로했다. 중국 세관은 한국과 달리 해당 물품을 제8424.30호로 신고해야만 수출 통관과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내주고 있어, 양국 세관의 엇갈린 잣대 탓에 수입업체들만 고스란히 혼란을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 세관 “물청소용 고압세척기, ‘블라스팅’과 본질 달라”

 

반면 세관은 단순히 “제트로 분사한다”는 작동 방식만으로 제8424.30호에 넣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세계관세기구(WCO)의 HS 해설서가 주요 근거가 됐다. 해설서상 제8424.30호는 모래나 금속연마재 등의 고압 제트를 이용해 금속 스케일을 벗겨내거나 유리·석재를 식각(에칭)하는 전문 ‘표면 가공’ 장비로 규정돼 있다.

 

반면 쟁점 물품은 카탈로그상 용도부터 명백한 ‘물청소용’이다. 금속 연마재를 쏘아내는 산업용 블라스팅 장비와는 애초에 체급과 용도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으므로, ‘그 밖의 기타 분사기’(제8424.89호)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 조세심판원 “용도 달라 기타 기기…가산세 ‘면제 거부’는 취소”

 

조세심판원은 품목분류 쟁점에서는 세관의 손을 들어줬다. 심판원은 “제트 분사는 제8424.30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HS 해설서 다른 그룹에서도 ‘수압총’이나 ‘워터제트 박피기’ 등 물 분사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쏘는 방식만으로 특정 세번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기능적 차이도 명확히 구분했다. 심판원은 제8424.30호 장비가 스케일 제거 및 식각에 쓰이는 반면, 고압세척기는 단순 찌든 때 세척용이므로 본질적 용도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봤다. 쟁점 물품은 ‘그 밖의 기기’인 제8424.89-9000호가 맞으며, 세관의 경정청구 거부 처분 역시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심판원은 가산세와 관련해서는 절차상 요건과 납세자의 귀책사유를 나누어 세관의 처분을 일부 뒤집었다.

 

수입신고 1건에 대한 가산세 심판청구는 사전 경정청구 누락으로 부적법하다며 ‘각하’했지만, 나머지 건에 대한 세관의 ‘가산세 면제신청 거부처분’은 잘못됐다며 취소 결정을 내렸다. 과세관청의 과거 행정 처리가 발목을 잡았다. 1996년 관세청이 이와 유사한 워터제트 분사기를 제8424.30호로 공개 분류했던 전례가 근거로 작용했다.

 

2023년 9월에 관세청이 관세품목분류위원회 결정을 근거로 해당 유사 물품의 품목번호를 제8424.89호로 변경 고시한 점도 납세자 쪽에 힘을 실어줬다. 심판원은 “사전심사에 장기간이 소요됐고 과거 관세청의 공개 분류 이력까지 존재해 수입업체에게 처음부터 해당 물품을 제8424.89호로 신고하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한편 업체 측이 제기한 신의성실 및 소급과세금지 원칙 위반 주장에 대해 심판원은 “관세청의 품목분류 사전회신은 내부 지침일 뿐, 일반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명령으로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참고 심판례: 부산세관-조심-202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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