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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부패추방의지 있나? 국민감사청구 대폭 축소운영

국감서 제도 활성화하라고 했더니 운영 축소 ‘거꾸로 행정’
과도한 물증 요구…저축은행 사태·가습기 살균제 건은 쓰레기통 行
규정 지키라 지적했더니 규정 완화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감사원이 정부부패방지를 위해 도입한 국민감사청구제도를 지나치게 까다롭게 운영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국민감사청구위원회 정례회의를 없애고, 접수 안건의 경중 판단을 조사단에 맡기는 등 제도운영을 대폭 축소했다.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뒷전으로 한 채 행정편의를 위해 축소 운영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감사원은 27일 ‘국민감사청구 부패행위신고 등 처리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공포하고, 즉각 시행에 나섰다. 

국민감사청구란 공공기관의 부패업무에 대해 국민이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하는 제도를 말한다. 20세 이상 성인 300명의 서명이 있어야 감사원에 청구의뢰를 할 수 있으며, 국민감사청구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만 감사에 착수할 수 있다.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는 감사원 제1사무차장, 제2사무차장, 공직감찰본부장 당연직 위원 3명과 감사원장이 위촉하는 외부 전문가 4인, 그리고 이 중 1인을 위원장으로 삼아 구성된다. 개의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이 돼야 하며, 의결은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진다. 

제도 시행 초기인 2009년, 감사원은 감사청구조사단을 감사청구조사국으로 확대·개편하고, 규칙을 개정해 위원장이 월 1회 정례회의를 열었으며, 필요시 수시로 임시회의를 열 수도 있었다. 모든 청구 내용은 위원회가 직접 살펴 봐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위원회 월 정례회의는 폐지되고 필요에 따라 위원회를 구성하는 임시회의 체제로 전환한다. 

청구가 들어와도 우선 감사청구조사단이 청구된 건 중 감사청구가 가능한 중대한 건만 걸러내 위원회 의결사안으로 올리게 된다. 경미하거나 국민감사청구가 필요 없는 사안은 위원회 서면의결, 즉 사인 하나로 끝나게 된다. 

사실상 불필요하게 위원회를 열지 않겠다는 취지다.  

“국민감사청구를 할 만한 건수가 없다”

감사원은 이번 개정 사유에 대해 국민감사청구가 별로 제기되질 않아 제도적 보완을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감사원의 말대로 국민감사청구가 저조한 것은 사실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새누리당 주광덕 의원에 따르면, 2012년~2016년 8월까지 접수되어 처리된 40건 중 실제 감사에 착수한 건은 단 다섯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각된 건들이 모두 의미는 건 아니었다. 청와대의 KBS 사장 선임 개입, 저축은행과 관련 금융 모피아 부패, 금융감독원의 제보자 보호 실패, 고위 공무원 성추행, 로스쿨 변호사의 감사원 채용 특혜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정부 부패 이슈들이 청구됐지만, 감사원 쓰레기통만 채우는 결과만 낳았다.

문제는 국민감사청구요건이다. 청구인 300명을 모으는 것도 난제지만, 청구인을 모아도 안건이 위원회 의결을 통과하려면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말 강동순 전 KBS 감사의 폭로로 논란이 된 청와대의 KBS 사장 선임 개입건의 경우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전문 언론인들은 면밀한 검토 하에 국민감사청구를 넣었다가 최근 기각결정을 받았다.

취재결과 기각사유는 황당했다. 

감사원은 청와대 개입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인호 KBS 이사장에게 질의했다. 

이 이사장은 “청와대 홍보수석과 통화해서 의견을 구할 수 있는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고, 감사원은 이를 토대로 당사자가 개입한 건 아니며, 입증할 별도의 물증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백한 물증이 없다면 ‘국민감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감사원의 기각요지였다. 그러나 폭로자인 강 전 감사에 대해선 아무런 질의도 하지 않았다. 

국감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매년 이 문제는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았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해 국정감사에서 “청구조건과 심사가 까다로워 접수건수가 저조하며 감사실시 인용률도 현저히 낮다”며 질타했다. 

지난 19일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도 “감사원이 공무원을 상대로 대야 할 엄격한 잣대를 국민들의 감사청구에 대고 있다”며 “국민감사청구의 청구요건 기준을 완화해 국민감사 실시를 늘리는 등 내실 있는 국민감사청구제 운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감사원이 부패입증의 책임을 국민에게 일부분 전가했다는 비판도 가능한 대목이다.  

절차적 정당성 높였다는 감사원, 내부 부패 처리절차 ‘축소’

또 하나의 심각한 사안은 감사원이 감사원 내부의 부패 처리절차도 완화했다는 것이다.

기존 규칙에는 감사원 감사관들의 부패행위에 대해선 1차적으로 감사원장이 감사청구내용을 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했었다. 국장 등 내부인에게 맡겨 둘 경우 자칫 ‘내식구 감싸기’가 될 수 있고, 또한 사정기관인 감사원의 부패는 좀 더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감사원장 판단사안을 위원회 의결 사안으로 격을 낮추었다. 위원회 의결 상정하는지 판단은 감사청구조사단이 판단한다. 

기존 규칙에도 감사원장이 사안에 따라 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는 내용은 있었지만, 개정안에서는 이를 위원회 의결사안으로 만들어 감사원장이 손을 댈 필요도 없게 했으며, 안건의 경중에 대한 판단도 감사청구조사단에 맡겼다. 감사원 측은 개정 요지에 이를 두고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하려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촌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엔 청구가 접수되면, 30일 이내 청구자들에게 위원회 의결결과를 알려줬었어야 했었다. 감사원 직원들이 조사 등을 이유로 늦장행정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해 국감에서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공개한 국민감사청구 관련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은 청구 접수 후 청구인들에게 30일까지 보내줘야 하는 결과통보를 실제론 78일이 지난 후에야 보내줬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스스로가 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당시 이 위원장은 규칙에 맞춰 통보기간을 줄이라고 감사원에 요청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감사원은 개정안을 통해 서면조사란 이유만 붙이면 해당 조사 기간만큼 통보기간을 추가로 늦출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 관계자는 “실효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익감사청구를 운영하고 있다”며 “행정편의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개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공익감사청구는 국민감사청구처럼 본법이 있는 것이 아닌 감사원 훈령 사안으로 부패가 아닌 규제를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는 것이기에 전혀 사안이 다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박범계·박주민 의원의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감사원의 공익감사청구 기각률은 50%에 달하며, 처리율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업무도 국민감사청구처럼 감사청구조사단 소관인데 여기서 쓰레기통을 채운 안건 중에선 악명 높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포함돼 있다. 기각사유는 물증 부족이다.

국민감사청구를 축소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관련 부서에 문의했으나 답을 주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최정길 정책국장은 “활성화는커녕 제도도입을 무색하게 하는 제도개악에 유감을 표시한다”며 “감사원은 국민의 부패에 대한 호소를 어처구니 없는 사유로 기각했으며,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패방지를 취지로 시작한 국민감사청구. 하지만 제도의 문은 넓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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